출산 휴가를 떠나며
6시 10분 즈음 눈을 떴다.
늘 그렇듯 침대 옆 한잔의 물을 마시고, 씻고, 발바닥 간질이기로 남편을 깨웠다.
평소보다 꼼꼼히 로션을 두들기고 오랫동안 립스틱을 발랐다.
남편이 바래다주는 차 안에서 FM 91.9 광고 속 익숙한 목소리를 흉내 내며 성대모사 놀이를 했다.
서초 나들목 부근은 오늘도 어김없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있다는 뉴스를 들었다.
오랜만에 정문으로 출근을 했고 엘리베이터가 마침 로비에 멈추어 있었다.
집무실을 정리하고 컴퓨터를 켜 여섯 통의 업무 메일과 두 통의 스팸 메일을 읽었다.
평소처럼 열 두 잔의 아침 회의용 커피를 주문을 하며 두유라테를 마실지 고구마라테를 마실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오늘은 왜인지 두 잔을 다 마셔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 두 잔을 모두 주문해 버렸다.
내려갈 때는 중앙 엘리베이터를 올라올 때는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탔다. 픽업한 커피를 회의실에 세팅했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내 음료를 들고 자리로 돌아와 기어코 ,
울어버렸다. 음료 뚜껑 위에 쓰여 있는
우리 앎삶님꺼 (하트) 고구마 (하트) 두유 (하트)
이곳엔 내가 너무 많이 남아있다.
눈물이 날까 봐 하품도 꾸욱 참고 있었는데.
하트 하나에 무너지다니.
일 년 뒤 다시 돌아온 이 자리에, 내가 아직 남아 있을까.
갈 수도 없고 가지 않을 수도 없어 그저 마음이 축축한
오늘은, 출산 휴가 떠나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