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나는 주머니 Mar 03. 2023

나의 아이가 입학하던 날

천천히 날아가렴 나의 아기 새야

내 품 안에서 포로롱 거리던 나의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아직까지 꿈속에서 사자를 만나고, 날아다니는 카펫을 타며, 눈송이 아이스크림을 먹는 나의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다.


산타클로스의 발자국에 의심 없이 기뻐하며, 하늘 위에 떠있는 별 중 하나가 우리 곁을 떠난 강아지 콩알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나의 아이가,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디뎠다.


입학 몇 주 전에 휴대폰 어플을 통하여 가정에서 준비해야 되는 입학 준비물들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반 편성도 입학식 안내도 어플을 통해서이다. 모든 안내를 연회색 종이의 가정통신문으로 받았었던 시대의 사람이라 어플을 다운로드하여서 회원가입을 하고 인증번호를 받는 일련의 과정들이 조금 어색했다. 가입 목적 선택에 ’선생님’, ‘학생’, ‘학부모’ 중 학부모를 선택하는 나의 모습도 아직 쑥스럽다.


아이는 1학년 2반이 되었다. 번호도 벌써 배정을 받았다. 나의 아이는 17번.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좋아하는 아이는 반 편성 소식을 듣자마자 울상이다.

- 힝 나는 3반이 되고 싶었는데.

- 신기한 거 알려줄까? 사실 엄마도 1학년때 2반이었어. 1학년 2반! 엄마는 1학년 2반에서 엄청 재밌었거든? 근데 우리 도진이도 1학년 2반이 된 거야. 아마 도진이도 엄마처럼 즐거운 일 잔뜩 있을걸?

- 진짜? 엄마도 1학년 2반이었어? 재밌었어? 그럼 엄마랑 나랑 똑같네! 쌍둥이네?


살금살금 아이를 달래 놓으니 입학을 앞둔 아이에게 무언가 특별하고 알찬 단도리를 해줘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슬금슬금 피어오른다.




사실 아이가 처음 유치원에 갈 때 아이에게 했던 나의 부탁 겸 조언은 이러했다.

많이 웃고, 많이 양보하기.

- 도진이 오늘 하루도 많~이 웃고, 많~이 양보하는 하루! 사랑해!


우리 집의 등원 인사는 늘 그랬다.

그런데 작년 유치원 상담기간에 아이의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가 양보를 많이 하는 것을 고쳐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 어머님, 아이의 마음에 가득 차서 그것이 넘쳐서 하는 행동이 양보여야 해요. 마음에 가득 차지 않았는데 넘겨주는 건 빼앗기는 거예요. 도진이는 양보하지 않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 같아요.


맞다. 나의 아이는 순했다. 착하고, 배려심이 많고, 다툼을 싫어하는 아이였다.

이런 아이를 만나게 된 것도 나의 복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아이를 선한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잘 이끌고 있구나 자부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나의 아이가 마음속에서는 계속 빼앗기고 있었다니.

물론 아이의 타고난 성향이 이유일 수도 있었지만, 엄마의 역할을 맡고 있는 내가 아이의 생각이 자라기 전에 아이의 행동에 울타리를 친 것이 아닌가 깊숙이 되묻게 되었다.


마음에 가득 차지 않았는데 넘겨주는 건 빼앗기는 거예요.


선생님의 이 말씀은 아주 오랫동안 내 머릿속 가장 중요한 부분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이에게 그 어떤 것도 심어주지 않으리라 다짐하였으나, 그것이 마음처럼 되나.

그렇지만 내 꿈은 쿨하고 돈 많은 시어머니가 아니던가. 뭔가 아이 마음에 한 번에 산뜻하고 쿨하게 탁! 와닿는 멘트 없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답은 나오지 않고.


이럴 때 내가 자주 쓰는 기법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 구체적으로 상상을 해보는 상상기법이다.

학교를 그리고 교실을 그리고 그 안에 작은 나의 아이를 넣어본다. 내가 바라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아이가 웃는다. 아주 활짝 웃는다.

그래. 그걸로 되었다. 충분하다.


- 도진아, 학교 가서 재~~밌게 놀아! 그것만 실컷 하면 돼~

- 친구들이랑?

- 친구들이랑 놀아도 되고, 혼자 놀아도 되고, 도진이 맘대로 해.

- 선생님이랑 놀아도 돼?

- 그럼! 선생님이랑 놀아도 당연히 되지. 도진이 하고 싶은 대로 해. 친구가 안 사귀어지면 억지로 사귀려 하지 마. 천천히 해 천천히.

- 그럼, 작은 멍멍이는 데리고 가도 돼?

(작은 멍멍이는 아이가 두 살 때부터 함께한 애착 인형이다)


이런, 여기서 막혀버렸네.


- 아 작은 멍멍이는 (갑자기 막 증거를 보여주려 어플에 나와있는 장난감 소지 금지 문구를 급히 찾는다) 이것 봐봐. 선생님이 장난감을 학교에 가지고 오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지? 작은 멍멍이는 집에서 큰 멍멍이랑 같이 도진이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흑. 멋지고 싶었는데 또 글렀다.


- 근데, 이제 우리 아기 초등학교 들어가니까 아기라고 부르지 말아야겠다. 엄마도 오늘부터 연습해야겠어.

- 싫어~ 아기라고 불러줘 엄마. 엄마 아기가 좋아.


아, 예쁘고 예쁜 나의 아기.




입학식 외전


입학식은 무사히 마무리가 되었다.

식을 마치고 반별로 모여 처음 만난 날을 기념하며 단체사진을 찍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봤다.

우리 아이와 옆에 서 있는 눈이 반달처럼 예쁜 여자아이가 마주 보고 조잘거린다. 쑥스러움이 많은 아이인데 기특하네. 그러다 뒤늦게 자리를 찾은 한 남자아이가 우리 아이와 여자 아이 가운데에 선다.

이 모습을 카메라로 담는다.


집에 돌아와서 아이에게 아까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 도진아 아까 이 여자 친구랑 무슨 이야기했어?

- 응! 우리 목에 두 개의 목걸이가 걸려있다고 이야기했지~

(입학 기념으로 학교에서 나누어준 사탕 목걸이와 아이들 이름을 적은 이름표 목걸이다.)

- 목걸이가 두 개라서 신이 났구나!

- 아니 엄마 그게 아니구, 우리가 같은 목걸이를 같이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 거야.

(같은 목걸이를 같이 하고 있다고? 뭐야 이거. 복선이야?)

- 아 그렇구나. 그럼 아까 나중에 온 남자 친구랑도 이야기 나눠봤어? 그쪽 보고 있던데?

- 아니 엄마. 나는 그 남자 친구를 본 적이 없어. 계속 그 여자 친구를 보고 있었어.


나의 품에서 포로롱 거리던 작은 새가 날아가는 소리였다.



작가의 이전글 하트 하나에 무너지다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