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나는 주머니 Mar 08. 2023

엄마라는 형용사

곶감을 만들 때 가장 어려운 일은 ‘곶감용 감을 주문하는 행동’이다.

곶감을 만드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실로, 마음을 먹는 것, 그것이 쉽지가 않은 것이다.


요즘, 손에서 놓지 못하고 열심히 노력은 하지만 성과는 거두지 못하는 여러 가지의 일들로 마음이 한창 바빴다.

며칠 전에 아가들과 예전 사진을 들춰보다가 재작년 할로윈에 아가들에게 만들어 주었던 잭 오 랜턴 사진을 만났다.

“엄마! 이거 호박, 엄마가 아까 만들어줬지?”

(아가들은 아직 시제 구분을 잘 못해서 지금이 아닌 예전은 다 ‘아까’라고 표현을 한다. 1분 전도 아까, 어제도 아까, 1년 전도 아까)

아가들과 함께한 두 번의 가을, 두 번의 잭 오 랜턴을 만들어줬는데, 기억해 주기를 바랐지만 정말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말랑거리던 24개월의 가을을 기억하다니.

“와! 우리 아가들 엄마가 호박 파줬던 거 기억나?”

“응! 엄마 호박 또 보고 싶다. 나 호박이 좋아해”

“아구 엄마가 이번에는 호박을 깜빡하고 못 파줬네. 미안해~”

“왜 못 파줬어?”

“응? 엄마가 바빴어”

“왜 바빴어?”

“글쎄... 왜 바빴을까...”

왜 바빴어,라는 말이, 엄마 우리 호박 파줄 시간도 없을 정도로 왜 그렇게 바빴어? 라고 들리는, 어쩔 수 없는 직장인 엄마의 자격지심.

한참 마음이 아팠다.


아가들이 잠을 자고 있는 시간에, 여러 가지를 만든다.

곶감을 만들고, 요거트를 만들고, 빵을 만들고, 색연필 꽂이를 만들고, 잭 오 랜턴을 만들고, 그래놀라를 만든다.

아가들은 내가 만든 것들에게 다 ‘엄마’라는 형용사를 붙인다.

이거 엄마 곶감. 이거 엄마 요거트. 이거 엄마 빵. 이거 엄마 까까.

내가 함께 있지 못하는 순간들에 ‘엄마’란 형용사로 함께 있어줄 것들을 생각한다. 그러면, 어려운 것도 하나도 어렵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아이가 입학하던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