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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나는 주머니 Mar 10. 2023

기억의 시작에 대하여

언젠가의 나를 위해 기억을 골라두었다

기억의 시작에 대해 생각한다.


나의 기억의 시작은 언제일까.

단편적으로 머릿속에 남아 있는 첫 잔상은 일인용 유모차를 세 살 터울 동생과 함께 타고 동네를 산책했던 네 살의 이미지이다. 초록이 검게 느껴질 정도로 우거진 나무들과 맨들 거리는 자갈 따위도 너르게 펼쳐져 있다. 유모차를 밀었던 사람이 엄마인지 아빠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젠가 엄마에게 이 기억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는데, 엄마는

- 글쎄. 아마 아닐 텐데? 네가 네 살 경이면 선진이는 한 살 이었을 텐데, 그렇게 어린 둘을 한 유모차에 태우는 건 너무 위험해서 그랬을 리가 없어. 자갈 깔린 공원도 근방에 없었고. 꿈꾼 거 아니야?”

라고 대답했다. 그렇지만 나는 나의 기억을 분명히 믿고 있다. 유모차에 같이 타고 있던 동생의 살이 쫀득 거렸던 것 같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반면, 내가 겪은 첫 번째 사건에 대한 기억은 믿음의 영역이 아닌 아주 명백한 과거의 영역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여섯 살의 유치원생이었고 겨울이었다. 그때 한글을 배우는 학습지를 하고 있었는데, 학습지 선생님이 우리 집에 목도리를 두고 가셨다. 작은 동네였기 때문에 학습지 선생님의 다음 행선지는 오래 궁리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바로 앞 빌라 2층의 지영 언니네 집이었다. 엄마는 지영 언니네 집으로 선생님 목도리를 가져다 드리라고 심부름을 시키셨고, 목도리를 들고 언니네 집으로 간 나는 한참 문 앞을 서성이다 문 앞 아주 잘 보이는 곳에 목도리를 두고 와버렸다. 왜인지 그때, 잘 알지 못하는 지영 언니네 집 초인종을 누르는 행위가 나에게는 너무도 두려웠다.

목도리는 언니네 집 앞에 몇 분이나 존재하고 있었을까.

10분 뒤 선생님께서 목도리를 찾으러 오셨고, 나는 엄마가 선생님께 새 목도리를 사드리겠다고 사과하시는 모습을 방안에 숨어 문틈 사이로 지켜보며 서성댔다.

그때 마침 퇴근하신 아빠가 엄마에게 방금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내가 숨어있는 방 안으로 들어오셨다. 왜 문 앞에 목도리를 두고 왔냐고 묻지 않으셨다. 아빠는 그저 그 다정하고 커다란 손으로 나를 번쩍 들어 아빠 목에 태우고 둥실둥실 노래를 불러주셨다. ‘우리 강아지, 이쁜 강아지, 세상에서 제일로 이쁜 우리 강아지’




아이가 세네 살이 될 무렵부터 ’오늘이 우리 아이의 첫 기억이 되어버리면 어쩌지‘ 하고 염려의 밤을 보낸 날들이 많았다. 그런 날들은 대부분 나의 체력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했던 날. 아이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못했다거나, 평소의 나답지 않게 혼을 냈다거나, 혹은 아이가 많이 울었던 날들이다.

그것이 꽤 많이 억울하기도 했던 것도 같다.

그러다가 한 심리학자의 인터뷰 영상에서 어린 나이의 기억은 ‘그 시절의 분위기’로 결정이 된다는 의견을 들었다. 하루가 아니라 시절. 찰나가 아니라 찰나들의 꾸러미.


아마 우리 아빠는 내가 기억이 나지 않는 순간부터 아주 오랜 날 동안 나를 목에 태우고 노래를 불러주셨을 것이다. 내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도, 밤에 잠을 잘 때에도. 이유식을 먹을 때에도, 감기에 걸렸을 때에도. 당신의 마음이 기쁘고 편안했던 날에도, 오늘 하루 참 힘들었지,라고 말하기도 버거운 치사하고 아니꼬운 날들에도. ‘우리 강아지, 이쁜 강아지, 세상에서 제일로 이쁜 우리 강아지’하며 그저 그 다정하고 커다란 손으로 나를 번쩍 들어, 나를 구름 위에 둥실둥실 떠 있게 만들어 주셨을 것이다.


그 찰나들의 꾸러미가 모여 내가 되었다.



기억의 시작에 대하여 생각한다.

어쩌면 기억의 시작은 무의식 속의 내가 나를 위해 고르고 고른 빛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기억은 나를 지키는 것. 나를 나로 온전히 살게 만드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우리 아빠가 나에게 그러셨듯, 무수한 찰나들 동안 최선을 다해 아이를 나의 방식대로 사랑해 주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아빠의 찰나들이 나에게 닿았듯, 나의 찰나들도 나의 아이에게 가 닿고 있기를.

그리하여 먼 후일 어떤 날, 나의 아이의 마음이 막막한 어떤 날, 문득 떠오를 첫 기억이 아이의 마음에 빛이 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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