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자라는 아이, 아래로 자라는 엄마
아이가 학교에서 다쳐서 왔다. 눈 바로 위쪽이다.
급식실 가는 길 친구 팔꿈치에 실수로 부딪혔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날카로운 것에 긁히거나 찧은 자국이란 말이지. 너무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면서 전혀 아프지 않다는 아이에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상처들이 빨갛게 줄지어 딱지 형태로 변해서 올라온 것을 보고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아이를 봐주시는 엄마에게 아이 하원할 때 같은 반 친구가 보이면 슬쩍 물어봐 달라 부탁을 하고 출근을 했다.
오후에 엄마에게 메시지가 왔다.
’이거 연필로 찍은 거래. 00가 그랬대. 오늘 아파서 보건실 갔었대. 00가 진이한테 진이 물건 달라고 했는데 싫다 했다고 그랬대. 선생님한테 말해야 해.‘
심장이 내려앉았다.
머리카락도 귀한 내 아이다. 엉덩이에 작은 점도 없어질까 아쉬운 곱디고운 내 아이다.
손톱을 잘라줄 때도 행여나 아플까 손톱이 이만치 남도록 자른다.
연필로 찍었다니. 연필로 찍었다니.
무슨 정신으로 일을 마쳤는지 모른다.
당장 선생님한테 전화하라는 신랑에게 우선 진이 이야기를 들어보겠다고 했다.
집에 가는 길에 ‘학교폭력 대처법’을 검색했다. ‘오은영 학교폭력’도 검색했다.
내가 이런 검색어를 입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엄마가 집에 일찍 와서 좋다고 방방 뛰는 아이를 데리고 앉았다.
- 진아, 엄마는 진이가 무슨 말을 해도 믿어. 그게 거짓말이라도 믿어. 거짓말인걸 알면서도 믿을 거야.
- 응.
- 그런데 진이가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 이유는, 진이가 생각하는 커다란 일이 엄마랑 아빠가 들으면 아주 간단하고 작은 일이 될 수도 있어서 그래. 그리고 반대로, 진이가 생각했을 때 아주 작은 일이 엄마랑 아빠가 들었을 때 아주 커다란 일 일수도 있어서 그래. 이해할 수 있겠어?
- 응. 근데 그런 말을 왜 해?
- 진이, 여기(상처) 왜 다쳤어? 친구 팔꿈치에 부딪히면 멍이 들어 보통은. 엄마 생각은 뾰족한 것에 긁힌 것 같은데 아닌가?
- 정말 솔직하게 말해도 돼? 엄마 궁금해하니까 정말 소~올 찍 하게 말한다!
00(다른반 친구)라고 있는데, 걔가 원래 친구들 것을 잘 뺏어. 근데 방과후에서 내가 만든 시나모롤 키링을 자꾸 달라고 하잖아. 그래서 내가 싫다고 했지? 내가 만든 거고 내 거라고. 근데도 자꾸 달라고 달라고 뺏으려 하잖아. 근데 지난번에 00가 나한테 준 소원쿠폰이 생각난 거야. 그래서 내가 00한테 ‘그럼, 네가 준 소원쿠폰 지금 쓸게. 네가 키링 안 가져가는 게 내 소원이야.‘라고 했지. 그랬더니 걔가 화내면서 그 소원 말고 다른 소원을 빌래!
그래서 내가 ’그래 그럼. 네가 내 키링을 가져갔다가 곧바로 다시 돌려주는 게 내 소원이야.‘라고 했더니 소리를 지르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안되겠다! 선생님한테 말씀드려야겠다.‘라고 하니까 연필로~~ (흉내 내면서 찍찍찍)
- 진아. 이건 선생님한테 말씀을 드려야 하는 거야.
- 내가 벌써 말씀드렸는데? 선생님께서 다음 방과 후 때 같이 가주겠다고 그때도 00가 비슷한 행동을 보이면 지도해 주시겠다고 걱정 말라고 하셨어.
- 너무 잘했어 진아. 그런데 왜 어제 엄마한테는 말 안 했던 거야?
- 선생님이 00한테 말씀하시는 건 지도하는 거지만, 엄마가 00한테 말하는 건 혼내고 화내는 게 되잖아. 00 그래도 내 친군데. 그건 싫지.
아. 내려앉았던 심장을 나의 아기가 살금 들어 약수로 닦아 주는구나.
그때 저기서 건빵을 먹고 있던 도가 궁금했는지 다가왔다.
- 도야, 도도 00 알아?
- 알지? 00은 화만 내서 잘 알지. 나랑은 세계문화체험을 같이 해.
- 정말? 그럼 도한테도 화냈어?
- 아니? 전혀. 나한테는 절대 화를 못 내지.
- 어머.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어?
- 아주 쉬워. 그냥, 가까이 가지를 않으면 돼.
아. 나의 아기가 약수로 닦아 말끔해진 심장을 따뜻한 바람에 말려 다시 넣어주는구나.
아기가 자랐다.
유치원 시절 모든 것을 양보한다는 지적을 받은 진이었다. 초등학교를 입학하며 진이에게 가장 많이 했던 당부가 ‘진이가 싫으면 양보하지 마’였지만 실제로 행해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나의 아기가 스스로 이만치 자랐다.
사람은 아래로도 위로도 자랄 수 있다고 한다.
아기들은 위로 부지런히 자라고 있는데 나는 아래로만 또 아래로만 자라고 있는 것 같아 염치가 없다.
또한, 몹시 비겁하다. 사실 00가 내 아이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란 사실에 쉽게 안도했다. 정말이지 부끄럽고 창피하다.
이제 시작에 불과한 아이들의 학교 생활이 무탈하기를 바란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상황들에 부단한 운이 따라주길 바란다.
어떻게 토테미즘 시대처럼 독수리 뼈에 조개껍데기와 깃털을 달아서 아기 목에 걸어줘 볼까…
그게 아니면 네 잎클로버를 따다가 아이 옷소매에 붉은 실로 몰래 꿰매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