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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나는 주머니 Jul 11. 2023

동네 친구 오레오

고양이의 눈에는 달이 떠있다

지난 주말 마트에 반려묘 코너에 갔다.

연어가 좋을까 닭고기가 좋을까 아님 참치? 별거 아닌데 괜히 고민되네 이거. 하며 한참을 망설이고 있으니 어김없이 마트 점원이 오신다.


- 고양이 키우시나 봐요.

- 아, 키우지는 않는데 매일 놀러 와요.

- 아 친구가 키우시는구나.

- 그건 아니고, 고양이 혼자 놀러 와요. 아 요새는 아기들이랑 같이 오는구나. 와서 먹고 놀고 자고 해요.

- 엥? (의아함) 그럼 일단은 키우시는 거 맞네요!

- 음… 키우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오고 싶을 때 오고 가고 싶을 때 가서…

- (무시) 에이 키우시는 거예요. 고양이 종류가 뭐예요? 종류마다 좋아하는 게 조금씩 달라서 추천해 드릴게요.

- 음…약간 얼룩말? 느낌인데 조금 호랑이? 무늬 같기도 하고, 되게 귀엽게 생겼는데 아기는 여우랑 토끼처럼 생겼고요. 아 여기 사진.

- 코리안 숏컷이네요.

- 오! 종 이름이 그랬군요!

- 그냥 길고양이라고요.

- 아닌데… 그냥 길고양이 아닌데… 엄청 귀여운데… 토끼 같은데… (세상 억울)



동네 친구 오레오를 처음 만난 건 지난 2월이다.

2월답지 않게 해가 따뜻하고 바람이 나긋한 겨울의 어느 날, 내 닫아두었던 화단 문을 열어보니 고양이 한 마리가 앉아있었다. 물론 고양이는 나와 눈을 마주치기 무섭게 달아나 버렸고, 달아나는 고양이의 뒷모습을 보며 ‘저 고양이는 꼬리가 잘렸네’라고 생각했다. 고양이가 많은 동네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넘어갔는데.

봄이 되고 화단 문을 열어 놓는 일이 일상화되면서 꼬리 잘린 고양이는 본격적으로 우리 삶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오랜 세월 강아지를 키웠다. 17년은 갈색 푸들을, 8년을 포메라니안을 키우며 거의 온 평생을 강아지와 함께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아지의 다정함과 따뜻함 그리고 그들이 주는 다채로운 위안들을 잘 알고 있다. 강아지 두 마리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하였으나, 마음 한 구석에는 다시 무언가를 키워도 우리 아이들 같은 강아지일 것임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고양이는 아니었다. 왠지 모를 두려움이 있었다. 손톱과 이빨을 숨기고 있을 것 같았다. 강아지에게 있는 웃는 표정이 고양이에게는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고양이에게는 두 개의 표정이 있었다. 무표정하거나, 화를 내거나. 나는 나를 보면 달려와주는 강아지가 좋았다. 나를 보면 도망가는 고양이를 보면 외면받고 있는 것 같아 겸연쩍어졌다. 동그란 마음을 주면 그 마음을 온전히 받지 않고 손톱으로 터트려 무효로 만들어 버릴 것만 같았다.




꼬리 잘린 고양이는 우리 집 화단에 앉아 있다가 우리가 화단으로 나가면 저 멀리로 도망갔다.

‘도망갈 거면 도대체 왜 여기 있는 거지?’ 고양이에 대해 무지했던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양이의 습성이었다. 고양이는 아주 멀리 갈 것처럼 뒤도 안 돌아보고 가다가도 우리가 잠시 딴짓을 하다 쳐다보면 아까 그 자리에 고요히 앉아 있었다.

한동안 그런 날들이 계속되었다.

고양이는 우리가 없기를 바라는 것 같다가도, 우리가 있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기묘한 아이였다.

우리는 고양이가 화단에 앉아있으면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 안에서 가만히 바라보게 되었다. 검은색과 흰색의 털이 섞여 있는 아이에게 오레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얀색 장화를 신은 것 같은 발이 귀여웠다. 오레오의 꼬리는 잘린 것이 아니라 엄마 뱃속에서 영양분을 받지 못해 자라지 못한 것임을 알았다. 가여웠다.


오레오가 눈을 깜빡이는 모습을 오래도록 바라보게 되었다. 천천히 깜빡이는 눈 속에는 눈동자가 달처럼 떠 있었다.
오레오의 눈 속의 달은 낮에는 초승달이었다가 밤에는 보름달이 되었다.


저렇게 작은 입으로 어떻게 먹는 거지? 먹을 게 있을까? 살금 걱정의 마음이 들었다.

‘멸치를 한번 줘볼까?’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사람이 먹는 멸치는 염분이 많아서 고양이들에게 좋지 않으며, 길고양이들은 먹을 것도 부족하지만 그보다 신선한 물이 더 부족하다는 정보를 봤다.

그릇에 물을 담아 오레오에게 내어주었다. 오레오는 저만치 물러섰다가 우리가 이만치 물러나니 다시 돌아와 물을 마셨다. 그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오레오는 지금

웃고 있다.




지금 우리 집엔 고양이 사료와 고양이 간식, 고양이 장난감이 한가득이다.

우리 집엔 고양이가 없다. 하지만, 창을 열면 언제나 그 자리에 우리 친구 오레오가 있다. 오레오가 우리를 친구로 선택해 주었고, 우리는 친구가 되어주기로 기꺼이 마음을 굳혔다.


비 오는 날이면 물을 싫어해 오지 못하는 오레오가 신경 쓰여 머릿속에 오레오가 둥둥 떠다닌다. 잠깐 비가 그쳐 문을 열어보면 어김없이 앉아있는 오레오. 우리 오레오.

가끔 우리가 이사를 가게 되는 날을 상상해본다. 우리가 없는 창 밖에서 우리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오레오를 떠올리면 마음이 겉잡을 수 없이 요동친다.


동네 친구 오레오.


어느 날 갑자기 노크 없이 우리 정원으로 들어온 오레오.

마음대로 왔다가 마음대로 밥 먹고 마음대로 잠도 잤다가 마음대로 가는 오레오.

온 세상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지만 자유의 일부를 우리의 곁과 바꾸어준 오레오.

마음대로 하는 오레오.

그리고, 나뉘어진 마음의 결 한켠에 우리가 있는 오레오.


오레오, 너 마음대로 가도 돼.

하지만 너무 늦지 않게 영영 들러주기로 약속해.

오레오. 우리 오레오.


번외.

SNS에 오레오 관련 사진을 올리면 많은 분들이 궁금해한다. “마당냥이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요?”

나는 대답한다. 다가오기 전까지 다가가지 마세요. 오랜 시간이 걸릴 테지만 분명히 그날이 옵니다. 키울 수는 없겠지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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