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죽든가, 글을 쓰며 살아가든가

글을 쓰지 않으면 자아가 비대해져 스스로를 잡아먹는 유형

by 아롬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 질척이는 것일 수도 있고, 생각하지 않는 삶을 반성하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오랫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은 아니었고, 생각하지 않는 삶을 늘 반성하는데도 그랬다.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은 있으나 자의로든, 타의로든 억눌러 살아왔다. 누군가의 글을 보고 ‘이 글은 별로’라거나 ‘이 글은 진심이 없다’거나 ‘이 글은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고 속으로 생각하는 일만 많아졌다. 내 영혼이 글쓰기를 원하는데, 내 글이 나에게 ‘별로’라고 평가받을까 봐 겁이 났던가? 그것도 아니면 깊은 생각에 잠겨 이대로 삶을 끝내버릴까 겁이 났던가?


글쓰기는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평소에는 이것저것 갈팡질팡하고 고민만 가득한데, 글을 쓰는 순간, 그런 잡념들은 흩어지고, 다시금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내가 보는 것, 내가 믿는 것, 내가 꿈꾸는 것들을. 글을 쓰다 보니 글쓰기가 어려웠던 이유가 하나 생각난다. 이 개인적이고도 잡스러운 나의 이야기가 어떤 유익함을 품고 있을까. 나의 글엔 유익함이 단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닐까. 말이 길어지고, 글이 감정적으로 변하고, 어떻게든 이유를 찾아내려고 해서, 그래서, 사람들을 속여 내고, 마침내 나까지 속여 내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감각 하나로만 자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하나 생각났다. 지독한 자기연민. 글쓰기는 모든 집중을 나로 바꾸는 일이다. 나에 대해 숙고하고 또 숙고하다 보면 내가 안쓰러워지는 지점이 있다. 그때, 나에게 말을 건네고, 괜찮다고 말해주면 좋으련만, 나는 그 지위를 끝까지 놓지 않으려고 한다. 안쓰러운 나, 불쌍한 나, 사연 있는 나. 그런 나들은 나에게 위안을 준다. 이미 망가져 있으니 괜찮다고, 너는 이제 더 떨어질 곳도 없으니 그곳에서 실컷 자기를 혐오하다 그렇게 죽어버리면 된다고. 그런 말들이 위안이 되다 보면,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나를 기꺼이 밀어버릴 때가 있다. 고통 속에 있는 나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어찌 보면 생각에 잠기는 일은 위대하면서도 위태롭다. 그 생각이 무언가를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그 생각이 나를 좀먹는 구석이 있는 탓이다. 물론 나처럼 꼬인 인간이 그리 많지는 않겠으나, 생각이란 것의 속성이 그런 것도 같다. 세상은 상호작용하는 곳인데, 생각에 잠기는 일은 나로 침잠하는 일이니까. 그런데도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은 삶의 곳곳에서 불쑥 솟구쳐오른다. 무시하기에는 너무나 큰. 그러니 써야만 한다. 조금만, 하나씩만,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글을 쓰며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