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써야 하는데 누워만 있는 화요일 오후
먹고 사는 일이 마뜩잖은 나에게 재택으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는 꽤 소중하다. 이번에도 일감을 받을 때는 자신 있게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처음 일을 받았을 땐 내 생각보다 많은 양이라서 역시 돈을 버는 게 쉽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는 일보다 작업에 열중할 땐,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기도 했다. 권진아의 노래처럼. 뭔가 단단히.
글을 쓰지 못하는 것보다 잘못된 것은, 내가 금방 할 수 있는 일도 계속 미룬다는 점일 거다. 한동안 미루는 일이 지긋지긋해서 어떻게 하면 미루지 않고 일을 곧장 시작할 수 있는지 알아봤다. 세상엔 나처럼 일을 미루는 것이 당연한 사람이 있었고, 그들을 위한 해결책도 충분히 제공된 것처럼 보였다. 하나를 붙잡고, 내가 어떻게든 일을 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노력은 분명 가치 있었겠으나 지금의 나에게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그 사실이 이제야 아쉽게 느껴진다.
글을 쓰지 못하는 것도, 일을 계속 미루기 때문일 것이다. 1시간이면 해낼 일을 기어코 미루고 미루다 마감이 1시간 남았을 때 시작한다.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를 뻔히 해결할 수 있는데도 외면하며 해결하지 않는다. 글을 쓰는 일이 내게 고통이기 때문일 것이다. 무작정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닌데, 나는 5살 난 아이처럼 내 눈을 가린 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늉을 한다.
열정에 차 글을 쓰고, 부업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돈을 벌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무엇보다 나에게 인정받으며 살아가는 삶을 꿈꾼다. 그리고 동시에 생명이 다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병을 떠올리고, 전쟁을 떠올리다 굶주림을 떠올린다. 역사책에선 10만 대군을 쉽게도 표현하던데, 나는 도통 이 10만이란 숫자가 가늠되지 않는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전교생이 1,000명은 됐을까? 내가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는 친구는 기껏해야 100명 안팎일 텐데. 그러면 10만은 어떤 숫자일까.
통계를 찾아보니 2024년엔 14,872명이 자살했다고 한다. 14,872. 내가 평생을 살아오며 대화한 사람이 14,872명이 될까. 마음을 쓰며 친절을 건넸던 사람은 1,487명은 될까. 저 많은 사람 중에 나를 스쳐 지나간 사람도 있었을까. 내가 친절을 베풀었다면 죽지 않고 다시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할 사람은 있었을까. 내 글이 어떤 사람에게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했을까. 아니면 그 반대가 되기도 했을까.
글을 쓰면 쓸수록 불행해지는 느낌이다. 외면했어야만 할 것들을 직면했다가 감당할 수 없어 다시 고개를 돌리는 탓이다. 목구멍에 음식을 쑤셔 넣는 일도 한가한 일처럼 느껴지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일에 환멸을 느낀다. 그렇게 살아서 무엇 하려고. 누구의 고통도 닿지 않는 채로 살다가, 제 몸에 감기라도 걸리면 온갖 고통을 그제야 진정으로 느끼는 주제에. 누구를 위한답시고, 글을 쓰나. 그 글이 누구에게 가닿을 수 있겠나.
다시 일을 시작한다. 한편으로는 어떤 글을 쓸지 궁리하면서. 또 나만 살아남았다는 일말의 죄책감과 오늘 하루 내가 마주친 사람들은 고작 100명도 되지 않을 것이란 사실에 충격을 받으면서. 이렇게 좁은 세상의 일을 써도 되는 걸까, 그런 순진한 생각을 하면서도 다시 오늘은 무엇을 쓸지 고민한다. 내 글이 아무것도 아니란 사실에도, 그 누구에게도 닿을 수 없을 것이란 사실에도, 어떻게든 글을 써 본다. 조금만, 조금만 더 미룬 후에. 그때 다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