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는 사랑입니다)
처음 인스타를 시작할 때 친구가 말했다. "인스타에는 법칙이 있어." 친구의 은근한 말투 때문이었는지, 나도 인스타에서 많은 팔로워를 거느리고 싶어서였는지, 친구의 말을 집중해 들었다. 해시태그나 포스팅을 하는 방법 같은 것들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다른 사람 글에 좋아요를 누르라는 것. 특히 나처럼 글을 위주로 올리는 계정에 미친듯이 좋아요를 누르라고 했다.
친구의 말은 적어도 내게는 정답이었다. 인스타그램 계정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고, 그때 함께 진행했던 브런치 계정도 성장이 빨랐다. 팔로워 수가 쌓일수록, 내 글에 좋아요가 계속될수록 나는 다른 사람들 글에 미친듯이 좋아요를 눌렀다. 사람들이 댓글을 쓰면 답글을 달고, 어떨 때는 상대방의 글을 읽고 댓글을 달기도 했다.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내 취향이 아닌 글을 읽는 것. 좋지 않은 글에 잘 읽었다고 댓글을 다는 것. 하고 싶은 말 대신 보기 좋은 말을 몇 번이나 고르다 답글을 다는 것. 무엇 하나 개운한 것이 없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글은 힘이 없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진심의 문제가 아니라, 보답을 바라는 접근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체감한 듯하다.
현재는 인스타그램 계정도, 브런치 계정도 삭제한 상태다. 어느 순간부터 그 부끄러움이 감당할 수 없는 정도로 커졌던 것 같다. 상대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좋아요를 누르고, 차마 솔직하게 말할 수 없어 빙빙 돌려 좋은 말만 고르던 그 순간이 내게는 무겁게만 다가왔다.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것보다, 내가 사람들 관심에 끌려다니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무심코 누른 좋아요를 보고 어떤 것을 느꼈을 이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걸 양심이라 부를 수 있을까.
다시 시작한 브런치 계정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들이 내 글을 보고 있다는 시선만으로도 내 글이 흔들린다는 것을 체감한 탓이다. 그런데, 정말 우습게도,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누군가 내 글을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금 좋아요의 세계로 이끌었다. 최신 글에서 마음에 드는 제목들을 골라 몇몇 글에 좋아요를 눌렀다. 내가 용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그 글을 정말로 읽어내는 것이었다. 마음이 가지 않더라도 끝까지 읽어내기. 꾸역꾸역. 억지로. 마음이 조금이라도 간 글에 댓글을 쓰려다가 말았다. 그 댓글이 진실하겠지만 정직할 수는 없는 탓이다.
고작 좋아요 하나에 뭐 이렇게까지 의미를 부여하는지 싶다가도, 이게 내 어쩔 수 없는 모습인가 싶다가도, 또다시 타인의 시선에 갇힌 내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왜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이 글쓰기를 붙잡고 살아가는가. 나는 언제쯤 타인이라는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한 친구가 내 글엔 '구원'이란 단어가 많이 들어가 재밌다고 말했다. 그 친구가 정말 **핵심을 찔렀다** 나는 정말이지 구제불능이고, 온갖 수단으로 나를 구원하고자 했지만, 그 가능성이 닿은 것은 오직 글쓰기뿐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글쓰기로 무언가를 토해내 개운해진 내 모습일 것이다. 어쩌면 글쓰기의 묘미는 결과보다 과정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면서 나에 대해 생각하고,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관계 맺고 있는 세계에 대해 생각하니까. 그 생각들이 어떤 형태로든 뭉치려다가 다시 나의 손톱을 생각한다. 이번엔 거스러미를 생각했다가, 그 빈자리에 피가 울컥 솟아나는 장면을 생각한다. 그 고통 속에 내가 있었다.
나는 정말이지 지독하게도 오직 나만을 생각한다. 그 사실이 씁쓸하다가도, 성경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란 말이 위안이 됐다. 나를 지독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은 누군가를 지독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뜻일 테니까. 너무 낭만적인 생각일까? 나에게도 이 생각이 순진하다는 자각 정도는 있다. 나를 사랑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면에서 다른 일이니까. 애초에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여기까지 생각하니 모든 생각이 바보처럼 느껴진다. 아무 의미도 없는 생각처럼 느껴진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나를 지독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믿어야겠다. 그 형태는 조금 다를지 몰라도, 분명히 사랑이다.
나를 향한 암적인 사랑이 너를 사랑할 수 있는 씨앗이 되기를 바라며. 아주 가끔씩은 다른 사람의 글에도 좋아요를 눌러야겠다. 꼼꼼하게, 한 글자씩 음미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