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기쁨과 슬픔
무엇을 하든 끈기가 없는 편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여서 꾸준하게 써 내는 일이 내게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데도 글을 쓰고 싶으니 몇 번이고 글을 썼다 지운다. 대개는 하나의 글이 끝나기도 전에, 그러니까 머릿속에서 계획만 반복하다 끝이 난다. 이런 주제로 글을 쓰면 재밌을 거야, 이것도 재밌을 거고, 저것도 재밌을 거야. 한 친구가 내게 비밀을 알려주는 것처럼 슬며시 “ADHD가 의심되니 병원에 가 봐”라고 했는데, 지금이라도 가 봐야 할까?
이번에는 다이어트를 소재로 글을 쓰기로 했다. 사실 내 머릿속에 있는 글은 다이어트로 한정하기는 어려운 소재이긴 하다. 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식욕을 다룬 이야기이기도 했고, 내 삶과도 맞닿은 것은 분명하지만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이야기이기도 했으니까. 물론 내 마음이 그렇다는 이야기이고, 일단 비만한 내 몸의 지방을 날려버리는 일이 먼저니까, 유명 에세이 시리즈의 이름처럼, 아무튼,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점에서 제목에 다이어트를 넣기로 했다.
시리즈의 소재를 정하고 나면 자연스레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래서 뭘 쓰고 싶은 거야?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데?’ 문장으로만 보면 건조하기 이를 데 없지만, 꽤나 상냥하게 묻는 편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다. 저번 시리즈를 쓸 때도 느꼈지만, 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는 시리즈 중반 정도에나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글을 쓰면 길을 잃기 마련이니, 적당히 타협한 선에서 주제를 정해야 한다. 그게 무엇이어야 할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세상에 너무 많아 동어 반복처럼 느껴질 때, 별 시답잖은 변명이나 징징거림이 글에 서려 있다고 판단이 들 때, 혹은 이미 너무 많이 생각한 주제라 막상 글을 쓰기가 재미가 없을 때.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기합(ㅎㅎ)으로 이겨낼 수 있지만, 마지막 이유는 영 성가시다. 이미 내 안에서 정리된 사실들을 사관처럼 그저 기록하는 일이 지겨운 탓이다. 글의 느낌이 교조적으로 변하는 것은 덤. 글을 쓰는 사람에게도 재미가 없는 글을 독자는 재밌게 읽을 수 있을까?
웬만하면 과거의 일을 끄집어내 글을 쓰고 싶지 않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지금, 현재의 나를 자극하는 일들이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내가 소재로 삼은 시리즈는 꽤 재미있을 것 같으면서도 지루할 것 같기도 하다. 내 몸에 관하여, 내 출렁이는 살들에 대해서는 이미 생각한 바가 꽤 있는 탓이다. 물론 다이어트를 하면서 새롭게 깨닫는 바가 있겠으나 그 양이 미미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 시리즈가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낼 만큼 길고 긴 서사가 필요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는 건 덤.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죽였다가 다시금 살려냈다가 온통 정해진 것이 없이 출렁이다가 문득 생각했다. ‘나는 언제나 이런 식이 아니었던가.’ 썼다, 지웠다, 다시, 썼다, 지웠다. 어쩌면 ADHD가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ADHD라고 단정해 내게 면죄부를 주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뭐가 됐든 내가 선택하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내가 하는 걱정 같은 건 별 의미가 없다. 쓰다 보면 모두 해결이 될 문제들이니까. 쓰다 보면 내가 하고 싶은 말도 자연스레 찾게 될 것이고, 쓰다 보면 이 소재가 책 한 권이 될 수 있을 정도로 무르익을 수 있는지도 알게 된다. 내가 해야 하는 건 그저 글쓰기를 시작하는 일일 뿐이다. 재미가 없다거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모르겠다거나 징징거리는 글은 쓰고 싶지 않다거나 이런 걱정들은 모두 부차적일 뿐이다. 경험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일단 글을 쓰는 것이 정답이다.
이제 답이 나왔으니 글쓰기에 매진하고 내 글이 책이 되고 많은 사람이 읽고.. 그랬으면 좋겠지만 일이 그리 쉽게 풀리지 않는다는 것 또한 안다. 나는 또다시 실패를 반복할 것이고, 이번엔 왜 실패했는지 살펴보다가 결국 두려워서 이 모든 일을 미루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ADHD에 관심을 가져 제미나이에게 한참을 물어보다가 유튜브에서 ‘당신이 미루는 이유는 OOO 때문입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한참 동안 시청할 것이다. 그러다 지쳐서, 또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야식으로 치킨을 시켜 먹을 것이다.
그 모든 일들을 반복하기 전에 이 글을 쓴다. 나에겐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며 이 글을 쓰는 일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 온갖 변명들로 얼룩진 내 삶에 티도 나지 않는 변명 하나를 추가하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아무 의미 없는 삶에 티도 나지 않는 하나의 의미를 더하기 위해서. 다음 시리즈는 아무튼, 다이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