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작가로 만든 건 열등감이었다

by 아론의책

교통사고를 당했다.

허리를 다쳐서 회사를 다닐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난, 백수가 되었다.


병원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슬픔과 교차하는 기쁨속에 미소를 지었다.


'지긋지긋한 공장 생활을 이제 그만 둘 수 있겠구나.'


어쩌면, 난 간절히 공장을 그만둘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내 안의 내가 간절히 원하던 진실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에게 백수의 삶은 냉혹했다.


신체적으로,

경제적으로,

나는 자유인이 아니었다.


세상은 어제와 같았고 시간은 똑같이 흐르고 있었지만, 나만 혼자 달라져 있었다.

크로노스의 세계는 동일했지만, 카이로스의 세계는 달라져 있었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고,

또 다른 생각은 불안과 걱정으로 가득차 어두운 먹구름을 미래를 향해 퍼붓는다.


'왜 내 삶은 RPG게임에 하드버전일까?'

'나는 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까?'


몸이 아프니 운동조차 할 수 없었다. 그 흔한 계단오르기도 팔굽혀펴기도 내겐 사치었다. 그저 조금씩 병원 통로를 걷는 것만이 나를 잡아먹기 위해 다가오는 어두운 생각을 밀어낼 수 있는 유일한 처방전이었다.


의사의 처방전은 내겐 필요치 않았다. 그가 말하는대로 약을 먹고, 재활을 받아도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내 몸과 마음이 필요했던 건 휴식이었다.


공장의 기계처럼 매일 똑같이 톱니바퀴처럼 굴러가는 하나의 도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왜 살아야는지, 무엇을 가치있게 하기 위해 태어났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날이 찾아온 것이었다. 그것이 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처방전이었다.



의사가 내리지 못한 처방전을 니체가 내게 내렸다.


"인간에게는 방황하는 밤이 있을 것이다.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로 혁명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읽기는 무의미하지 않다."


병원 구석에 박혀있던 낡아 빠진 책 한권에서 읽었던 문장이 머리속에 벼락처럼 쏟아졌다. 그날 이후로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어졌다. 공장에서 찾지 못한 나의 삶의 이유와 가치를 찾고 싶어서 그랬는지 모른다.



나이 마흔에, 처음으로 블로그를 했다. 하얀 도화지위에 초침처럼 번쩍이는 검은 물체는 그 어떤 생각도 써내려가지 못하는 나를 무심히 바라보는 것 같았다.


'미친거 아닌가. 도대체 왜 나는 글을 쓰려고 하는거지?'


나 스스로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냥 살고 싶어서 책을 읽었고, '백수'라는 말보다 '블로거'라는 말이 듣고 싶어 글을 썼다. 열등감을 씻어 내기 위해 글을 썼다.


'사람들이 뭐하세요?'라고 물어 보면,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든 나를 포장하고 싶었다. 백수라는 나의 오점을 블로거라는 이름으로 예쁘게 포장하고 싶었다. 그게 글을 쓴 이유였다.


그래서 인플루언서 블로거들의 글을 흉내냈다. 그들과 비슷한 형태로 문단정리를 하고, 비슷한 소재와 사진을 배열해가면서 제법 글을 잘 쓰는 척 보이려 애를 썼다.


1년동안 끊임없이 글을 썼다. 그 덕분에 전자책도 쓰고, 종이책도 쓰면서 남들이 말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표면적인 결과와는 달리 나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있었다.




나는 1년동안 자유하지 못했다. 그저 다른 사람을 흉내내는 아류에 불과했다. 네임드 블로거들과 작가들의 어깨에 올라가서 마치 내가 그들인양 글을 썼던 아마추어였다.


1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은 내가 아니라 나의 열등감이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백수가 싫어서 글을 썼던 것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종이책을 출간한 것이었다.


'작가라고 하면, 있어보이니까.'

'적어도 백수라고 말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이런 허접한 생각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열등감으로 1년넘게 글을 써준 나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때는 글쓰기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어둠으로 가득찬 병실에서 바라 본 천장이 무서웠고, 옥상에서 바라본 지상의 세계는 너무나 가깝게 느껴져 나도 모르게 떨어지고 싶었다.


나를 살린 건 열등감이었다. 작가가 된 것은 부산물에 불과하다. 사실 난 작가가 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죽음이 무서워서 글쓰기로 도망친것 뿐이었다.


나는 항상 그랬다. 취업 실패를 해외봉사로 포장했고, 스페인 가이드로 포장했다. 나는 나를 포장함으로 나의 열등감을 감추려 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글을 쓴지 700일이넘었다. 그 시간들을 통해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글쓰기가 헛되지 않음을 않았다.


괴테는 말했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


그의 말이 나의 경우에도 포함이 된다고 믿고 싶다. 비록 열등감을 벗어나기 위한 글쓰기였지만, 나는 간절히 살고 싶었다. 그 마음도 노력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나의 글의 시작은 열등감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순수하게 문학을 사랑하게 되었다.


책을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그 시대와 그 인물이 사는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단어와 접속사 대사와 상상과 찰나의 감정마저 내 안에 담고 싶어졌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고 있으면, 나는 그와 사랑에 빠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의 문장, 그의 문체, 그의 감정을 자간과 행간을 통해 모두 느끼고 싶은 열망이 나를 감싼다.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아류가 나의 글을 쓸 수 있는 진짜 작가라는 사실을.


나만의 감정과 생각을 담은 글을 쓸 수 있는 진짜 작가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는 오늘이 행복하다.

이제는 열등감으로 글을 쓰지 않고 싶다. 남을 흉내내고 유명해지려고 하는 목적으로 글을 쓰고 싶지도 않다.


그저 문학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글을 쓰고 싶다. 내가 존경하는 작가들처럼. 내 글에서 사랑과 희망이 피어오르기를 바란다.


내 글쓰기의 시작은 열등감이었지만, 앞으로의 글쓰기는 사랑이 되기를 바란다.


나의 이 마음을 글을 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100일 글쓰기를 시작했다.

내가 방황했던 1년을 나처럼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누군가의 아류가 아니라 Only One이다."


이 말을 전하고 싶어 블로그 100일 글쓰기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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