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진짜 이유

by 아론의책

"글쓰기 할 만해?"

"어렵지 않아?"


글쓰기를 시작하고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다.

그 말이 귓가에 메아리처럼 퍼지고 내 심장에 닿을 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나는 언제부터 글쓰기가 쉬워졌을까...'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문장을 필사하고, 유명한 블로거들의 아이디어를 흉내냈다. 마치 내가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카소가 된 것처럼 말이다.


그는 나에게 이러한 말로 글쓰기의 불을 지폈다.


'훌륭한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


피카소는 세잔의 사과를 훔치고 원근감을 파괴하여 '아비뇽의 처녀들'을 세상에 탄생시켰다. 그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마티스를 앞지르고 싶은 욕망의 부산물이었다.


피카소의 친구는 피카소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마티스를 무리하게 따라잡으려다 선을 넘었군."


그의 친구들은 재능있던 피카소가 무너진 모습을 씁슬하게 바라보고 자리를 떠났다. 피카소 역시 호기롭게 친구들에게 보여주었던 그림을 화실 한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무려 10년이나...




1906년 <아비뇽의 처녀들>이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그림은 3가지가 파괴되었다.


1.원근감의 파괴

2.아름다움의 파괴

3.회화의 파괴


당시에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무리 피카소와 절친한 친구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회화에는 원근감이 존재해야 했고, 여인은 아름다워야 했으며, 회화에는 균형과 조화가 반드시 있어야 했다.

그 3가지 중 그 어떤 것도 아비뇽의 처녀들에 존재하지 않았다.


친구들의 분노는 당연했다. 자신들이 지금까지 믿어왔던 회화의 정의를 깨어버린 피카소를 인정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를 인정한 순간, 그 동안 자신들이 믿어왔던 신념이 깨어질까 두려웠지 않았을까.




헤밍웨이는 어떠한가?


"헤밍웨이는 한 물간 작가에 불과해"


그는 <노인과 바다>가 출간되기 전까지, 혹평에 시달렸다. 무려 10년동안이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후에 그는 세간에 혹평에 시달리는 자신을 달래기 위해 끝없이 술을 마셨다.


부어지는 술은 그의 마음을 치유하지 못했고, 유일하게 그가 사랑했던 여인이 그의 글에 뮤즈가 되어주었다.

그는 <노인과 바다>집필 이후에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말을 하였다.


"그 책은 몇 주 만에 썼죠. 한 여자를 위해 썼습니다. 그 여자는 내 안에 그런 게 남아 있다고 생각지 않았죠. 하지만 내 모든 책들 뒤에는 그 여자가 있었어요.(1958년 '에스콰이어'지 인터뷰 중)


패혈증과 알코올중독으로 생의 끝을 향해 달려가던 헤밍웨이에게 사랑했던 여인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난 그의 인터뷰를 읽기전까지, 그저 바다를 배경으로 한 소년과 노인의 우정이야기인줄 알았다.


헤밍웨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이것이였을까.

'수많은 전쟁과 풍파를 온몸으로 살아오면서 파멸당할지언정, 패배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고 그가 사랑했던 여인에게 말하고 싶었던 노인의 절규가 아니었을까.'



대다수가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왜 써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고

둘째는, 잘 쓰려고 하기 때문이고

셋째는, 인정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중에 글쓰기가 어려운 진짜 이유를 하나만 찾는 다면, 그것은 잘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남들을 의식해서 글을 쓰기 때문이다.


"초고는 쓰레기다."


헤밍웨이가 한 말이다. 그와 같이 담백하고 힘있는 문체를 쓰는 작가도 자신의 초고를 쓰레기라고 불렀다. 나는 그의 말에 용기를 얻었고, 내 자신의 글이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가기로 마음 먹었다.


어짜피 초고는 쓰레기니까, 그냥 아무 말 대잔치 같아도 끝까지 써보자는 마음이 내가 글을 쓰는 원동력이다. 화려한 문체나, 섬세한 비유나, 그림같이 그려지는 세심한 어휘따위는 내겐 없다. 하지만, 오늘도 쓴다.


초고는 쓰레기니까. 부족해도 쓴다. 내가 바라 본 세상을 마음이 쓰려고 할 때, 온힘을 다해 집중해서 쓴다. 어색하고 내용의 앞뒤가 맞지 않고 맞춤법이 틀려도 신경쓰지 않는다. 진심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하다고 믿기에.


나와 같이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독자들과 작가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어짜피 초고는 쓰레기니까'하는 마음으로 힘차게 글을 써나갔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엉성한 내 글을 보고 비판할까 두려워서 멈추지 말았으면 좋겠다.


피카소도, 헤밍웨이도 천재로 불렸지만, 실상은 끝없는 혹평에 시달린 범인이었다. 범인 이던 그들이 천재로 불리게 된 이유는, 사람들이 그들을 천재로 불러서가 아니라 그들이 끝까지 자신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글쓰기에서 필요한 정신이 바로 이것이다. 피카소 정신, 헤밍웨이 정신이 필요하다. 쓰레기 같은 글, 아무말 대잔치같은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자신을 믿어야 한다. 지금 내 진심을 다해 쓰고자 하는 것들을 끝까지 토해내야 한다.


그 진심이 퇴고를 거치며 독자와 만날 수 있는 문체로 변형되기 때문이다. 형태가 사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는 사실이 형태가 된다. 처음 쓴 초고는 분명 허접하고 남들에게 보여주지 못할 정도로 안드로메다 같은 글일지라도 포기하지 말자.


글쓰기는 글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내려 놓고 그 진심이 독자에게 닿기까지 끊임 없이 고쳐쓰면서 나의 세계를 너의 세계로 확장하여 우리라는 우주가 되는 과정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시선따위 신경쓰지 말고 당신의 온 마음을 다해 써라. 쓰레기 같은 초고를 계속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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