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날에 만난 다정한 남자

by 아론의책

<수아버전>


바르셀로나 람블라스 거리는 꽃 향기가 가득한 거리였다. 관광객들과 시민들이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서 쉬어가는 장소였다. 어느날 그 향기도 그 여유도 사라져 버렸다. 끔찍한 사고 였다. 그날 나의 우주가 사라져 버렸다.


“으악!”

“살려주세요.”


폭죽처럼 비명이 터져 흐르고 사람들은 미끄러지듯 람블라스 거리를 내 달렸다. 무섭도록 달려오는 차량과 총성으로 람블러스 거리는 아비규환이 되었다. 이미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람과 차에 치인 사람들이 엉켜 있었다. 아버지는 나와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사력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그런데 갑자기 아버지의 손이 느껴지지 않았다.


“여보!”

차량은 어머니를 덮치고 어머니를 향해 달려가던 내 아버지를 밟고 갔다. 머리 속이 까매졌다. 정지된 뇌와는 달리 눈은 달려오는 테러차량을 불타오르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도망쳐!”

누군가 내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좁은 골목틈 사이를 다람쥐처럼 미끄러지듯 통과했다. 그리고 커다란 철문을 열고 어두운 장소로 들어갔다.


“놀라지마. 널 지켜주려고 데려온거야.”

황금빛 물결의 웨이브진 머리칼과 하얀 피부의 오똑한 콧날을 가진 여성이 흔들리지 않는 민트색 눈동자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지금 나가면 죽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나를 그녀가 붙잡으며 말했다. 나가야 한다는 마음과 두려운 마음이 내 안에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못가 나는 그곳에 주저 앉아 숨죽여 울었다. 울려퍼지는 총소리와 비명소리에 몸과 마음은 따로 반응했다. 무서운 시간이 도시를 집어 삼켰다.


그날 이후로 람블라스는 내게 소리로 남았다. 폭죽처럼 터지던 비명, 넘어지는 사람들 가운데 쏟아져 나왔던 “아직 살아 있어요.”란 소리가 선명하다. 그 소리속에서 부모님의 손을 놓쳤고, 내 우주를 잃어버렸다.


“나는 에스메랄다야. 집이 어디야?”

“나는 수아. 난 집이 없어.”




1년전 봄날, 바르셀로나 람블라스거리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그날 부모님을 잃었다.그리고 그날 나를 잃었다.


“우리 집에 가자.”

“응, 고마워.”

이상하게도 왜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고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내 손을 잡아준 건 에스메랄다 뿐이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았던 집에 갈 수 없었다. 무서운 그리움이 내 삶을 질식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일면식도 없었던 에스메랄다에 집에 살게 되었다. 마음이 추수려질 때까지만 살려고 했는데, 벌써 1년이 지나 버렸다.


사람들은 “시간이 약’이라고 했지만, 어떤 상처는 시간이 지나도 낫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깊은 곳으로만 가라 앉는다. 나는 결국 가라앉는 속도를 견디지 못해 약을 먹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꼭 약을 먹어야 합니다.”

“네.”

하얀 가운을 입고 걱정스레 바라보는 의사에게 잠겨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날부터 매일 우울증 약을 먹는다. 죽음의 소리가 귓가에 들리기전에 약을 먹어야만 했다.


내 직업은 사진사다. 웃고 사진을 찍고 신혼부부를 예쁘게 담아내는 일을 한다. 웃픈 현실이다. 내 우주를 잃어버린채, 남의 우주를 이어준다. 행복한 그들을 보며 내 안에서는 무서운 문장이 떠오른다.


‘오늘도 살아야 하나.’



내 이름은 수아,

스페인 아버지와 한국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난 스페인 사람도 한국인도 아닌 이방인이다. 바르셀로나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사랑한 장소이고 내가 태어난 장소이다. 아빠는 첫눈에 엄마에게 반했고, 매일 같이 장미를 사서 그녀를 찾아갔다. 엄마는 파란눈의 외국인을 밀어냈지만, 아빠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다. 어머니를 세상 그 누구보다 다정하고 따뜻하게 바라보던 눈빛을 잊지 못한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를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아빠가 좋았다. 가난했지만 두 사람과 함께여서 행복했다. 엄마, 아빠는 매일 꽃시장에가서 꽃을 사고 람블라스거리에서 꽃을 팔았다. 그런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자주 람블라스 거리를 찾아갔다. 그날처럼.


“약 먹었어?”

“응, 에스메랄다 일어났니?”

“오늘은 출근하는 날 아니잖아?”

“응, 조금 걷고 싶어서.”

에스메랄다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수상한 놈이 다가오면 연락해. 넌 이쁘니까.”


에스메랄다의 농담을 미소로 받아치고 길을 나섰다. 이 도시는 밝고 따뜻하다. 햇빛이 벽을 타고 천천히 흐른다. 그래서 사람들도 서두르지 않는다. 그게 참 잔인하게 보인다.


‘내 시간만 멈춘 것 같다.’


그라시아 거리에 갔다. 조용한 거리를 혼자 걸었다.카메라도 들지 않은 채 무작정 골목으로 들어갔다. 정말 이상하게도, 죽음을 향해 가는 그 순간이 너무나 평온했다. 이곳에서 내가 생을 끝내도 누구도 알지 못할 것 같은 묘한 기시감마저 들었다. 에스메랄다에게 미안하지만, 나의 세상은 부모님의 죽음과 함께 종말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때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각사각’


‘난 죽어야 하는데, 이 고요함과 적막함을 깨는 소리는 뭐지?’ 소리를 피해 다른 골목으로 들어서려던 그때 더 크게 소리가 들려왔다.


‘사각사각’

세상에서 제일 작고 사소한 소리가 나를 붙잡았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지구를 떠나려는 마지막 순간을 방해하는 존재를. 주먹을 바르쥐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었다. 소리가 나는 장소에는 타일에 비친 꽃을 그리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부모님의 손을 놓친 그날 이후로 나를 붙잡은 것은 없었다. 죽음은 나의 유일한 안식처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사각거리는 소리가 내 마음을 붙잡았다. 자세히 다가가 살펴보니 그는 한국 사람 같았다. 우리 엄마와 닮아 보였다.


“한국 사람이세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먼저 나왔다. 내 목소리에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우리 엄마를 닮은 남자아이는 갈색눈동자였다. 놀란 듯 멈춘 얼굴 속 눈망울은 이상하리 만큼 투명했다. 그 투명함이 나를 안심시켰다. 거짓말을 못할 얼굴이었다.


“올라.”


그는 쌩뚱맞게 “올라”라는 인사를 내게 건넸다. 나는 분명 한국어로 말했는데도 말이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 남자 아이 덕분에 부모님을 잃고나서 처음으로 웃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처음 만난 그가 어색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상하리 만큼 편안하게 느껴졌다. 이 감정이 무엇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말했다.


“커피 한잔 할래요?”


그 순간 그는 마치 심장이 몸 밖으로 뛰쳐나가는 사람처럼 가슴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 순간 나는 확신했다. ‘이 사람도 뭔가를 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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