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넘기고 나면 새로운 것을 배우는 속도보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청년 때는 세상이 넓어 보였다. 그래서 늘 밖을 향해 달려갔다. 좋은 글감도, 기회도, 사람도 어딘가 외부에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마흔이 넘어 알게 되었다. 글감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이미 지나온 나의 시간 속에 차고 넘치도록 쌓여 있다는 것을.
글쓰기에서 가장 좋은 글감 찾기 방법은 나를 이해하는 일이다. 내가 실패했던 순간, 괜히 작아졌던 날,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밤새 뒤척이던 기억.
반대로, 처음으로 인정받았던 날,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는 음식을 먹었던 시간, 일에 몰입해 시간이 사라졌던 순간.
이 모든 장면은 이미 충분한 글감이다.
우리는 사건을 점처럼 기억한다. 그저 스쳐 지나간 하루로 여긴다. 하지만 하나하나 적어보기 시작하면 그 점들이 선이 된다.
점을 선으로 잇는 핵심은 질문이다.
“나는 왜 그때 그렇게 화가 났을까.”
“나는 왜 그 사람의 말에 그렇게 오래 흔들렸을까.”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몰입했을까.”
질문을 던지고 기록을 이어가다 보면, 나라는 사람의 결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흔 이후의 글쓰기는 새로운 경험을 쫓는 일이 아니라, 이미 겪은 시간을 해석하는 일에 가깝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배운 인내, 동료와의 갈등에서 배운 거리감, 연인과의 이별에서 배운 선택의 무게.
그 감정들을 솔직하게 적는 순간, 글은 꾸미지 않아도 깊어진다.
글감은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다. 내부에서 길어 올리는 것이다.
메타인지가 높아진다는 것은 세상을 더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정확히 바라보는 일이다. 과거를 돌아보지 않으면 우리는 같은 선택을 반복한다. 같은 후회를 하고 같은 말로 상처를 낸다.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실수가 역사속에 반복되듯이.
기록은 다르다. 기록은 나를 멈춰 세운다. 그리고 생각하게 만든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나는 이런 상황에서 흔들리는구나.”
그 깨달음 하나가 앞으로의 선택을 바꾼다.
마르지 않는 글감을 찾고 싶다면 하루 10분, 과거의 나를 적어보면 된다.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한 줄이면 충분하다.
“그날 나는 서운했다.”
“그때 나는 자랑스러웠다.”
이 한줄이, 하나의 글로 연결된다. 그날 왜 서운했는지, 누가 서운하게 했는지,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 그 시간을 통해 무얼 느끼고 배웠는지 떠올리게 된다. 이것이 나의 시선에서 너의 시선으로 독자의 시선에서 작가의 시선으로 변화시킨다. 전지적 작가의 시점은 과거를 돌아보며 연결된다.
한 줄이 쌓이면 한 사람의 서사가 된다. 그것이 글의 본질이다. 글의 생명력은 나를 기록하는 사유에서 부터 시작한다.
니체는 말했다.
"너는 안이하게 살고자 하는가? 그렇다면 항상 군중 속에 머물러 있으라. 그리고 군중에 섞여 너 자신을 잃어버리라."
글감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자신을 모르기 때문이다. 항상 군중 속에 머물며 다른 사람의 글에서 글감을 찾아내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군중에 섞여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 왜 글을 쓰는지도 모른채 글을 쓰는 관성적인 삶을 살게 된다.
마흔 이후의 글은 화려하지 않아도 된다. 진실하면 된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시간을 통과해 온 사람들이다. 이 사실을 믿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실패와 절망적인 상황들이야 말로 인생을 가장 성숙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서 배우고 느낀 감정은 자기 자신 밖에 모른다. 그것이 Only One이다.
남을 따라하는 아류로는 본질의 글쓰기는 불가능하다. 나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과거의 나와 만나 대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메타인지는 세상을 보는 눈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눈이다. 내가 무엇을 사랑했고 내가 무엇을 기뻐했고, 내가 무엇에 몰입했는지 생각해보자.
좋은 글은, 글을 많이 쓰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많이 쓰면 글의 질이 좋아진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들의 글이 어제의 글과 달라진 것을 하나도 발견할 수 없었다. 많이 쓰면 글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똑같은 글만 계속 반복해서 생산해 낼 뿐이다.
진짜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의 핵심은 생각이다. 생각이 깊어지지 않으면, 글은 절대 깊어질 수 없다. 왜냐하며 글은 생각을 담은 그릇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글이 본질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이 본질이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말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가 한 말에 자간과 행간의 의미를 사유해보자. 그는 책을 읽기에, 글을 쓰기에 존재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끊임없이 생각하기에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음을 밝혔다. 이것이 글쓰기에 핵심이다.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제와 똑같은 글만을 계속 쓰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글을 많이 쓰면 글이 좋아진다는 것은 착각이다. 사실은, 내가 왜 글을 쓰는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 나는 글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본질에 근접한 사유가 먼저이고 이 사유를 깊이 탐구하는 사색의 과정이 동반된 글쓰기가 좋은글을 가져온다.
요즘 SNS 전성시대여서 정말로 많은 글들이 보인다. 그래서 걱정이다. 책을 읽지 않고 깊이 사유하지 않은 글들이 홍수처럼 범람한다. 그런 글들이 수 많은 독자들에게 잘못된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글쓰기의 본질에는 관심이 없고 글쓰기의 부산물만을 탐하는 자들이 가득하다. 그런 글들은 남을 흉내낼 수 있지만 자기만의 철학과 신념을 담은 글은 쓸 수 없다. 영원히 아류로 남을 글들이다.
글의 본질은 글쓰기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이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의 본질은 과거의 내가 살았던 기록을 정리하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 마르지 않는 글감이 내부에서 샘솟는다.
이제는 밖을 더 찾기보다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야 할 때이다. 남들을 흉내내는 아류가 아니라 내 안의 본질을 탐구하는 Only One이 되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가 찾던 이야기는 멀리 있던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불러주기를 기다리던 나의 시간 속에 있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