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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아론 Oct 26. 2020

[사례10] ‘분노조절장애’ 칼로 친구를 찌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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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11] 칼로 친구를 찌른 남자



예약된 시간이 되자 상담소 벨이 울렸다. 문을 열어주자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안색이 어둡고 수염이 거뭇거뭇한 게 한눈에 봐도 근심이 두터워 보였다. 나는 그를 상담실로 안내했다. 그가 자리에 앉자 원장님이 물었다.

“그래, 어떻게 오셨어요?” 

“친구를 칼로 찔렀습니다.”

나는 차를 내어주다 깜짝 놀랐다. 원장님과 눈이 마주쳤고 잠시 뒤에 서 있었다.

“친구를 칼로 찌르셨다고요? 어떻게 하다 그러셨어요?”

“몇 달 전에 술 먹고 그랬습니다. 기억이 하나도 안 나고… 정신 차려보니까 친구가 칼에 찔려 있었어요.”

“그리고 어떻게 됐나요?”

“재판까지 받았는데… 심리치료를 하라는 판결을 받아서 오게 됐습니다.” 

내담자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멈췄던 걸음을 옮겨 내담자에게 차를 내어줬다. 그는 멍하니 앉아 있는 채였다. 원장님이 적막을 깨고 말했다.

“좋아요, 일단 검사지부터 해봐요. 그리고 상담을 하면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됐는지,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긴장 푸시고 편하게 하세요.”

“네.”

내담자가 한 검사지는 감각검사지, 환경프로파일 검사지, 분노조절장애 검사지였다. 내담자는 검사지에 모두 체크를 한 후 원장님에게 건넸다. 원장님은 분노조절장애 검사지부터 확인했다.

“내 안에 잠재된 화가 많다고 하셨네요?” 

“네.”

“사소한 것에도 분노가 일어나고요?” 

“네….”

“분노가 크게 일어나면 기억이 나지 않나요?” 

“네….”


내담자는 원장님의 물음에 모두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원장님은 나머지 항목들은 질문 없이 훑어본 뒤 내담자를 보고 입을 뗐다.


“지금 검사지 결과로는 분노조절장애 증상이 있으세요. 화가 나면 화를 다스리지 못하는 상태세요. 그런 경험을 평소에 많이 하시나요?”

“네…. 저도 제가 분노조절장애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그렇군요.”

원장님은 이번에 환경프로파일 검사지를 확인했다. 내담자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질문했다

“부모님이 이혼하셨나요?” 

“네, 오래됐습니다.”

“엄마를 측은하게 보는 경향이 있네요?” 

“네, 힘들게 사셔서요.”

“어떤 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말씀해 보시겠어요?” 

내담자는 메마른 침을 삼키며 과거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하고 내담자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어머니는 작은 식당을 운영했는데, 내담자는 중학생 때부터 어머니를 도왔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 빼고는 어머니와 사이도 좋았다. 하지만 내담자가 어머니를 도와주면서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바로 손님들이 어머니에게 함부로 하는 것이었다. 하대하는 손님이 있는가 하면, 어머니를 무시하고 반말을 하는 손님, 괜한 꼬투리를 잡아 음식값을 지불하지 않는 손님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매일 엄마한테 집적거리는 손님도 있었고, 취객이 난동을 부려 가게가 난장판이 된 적도 있었다. 그런 경험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내담자의 가슴 속에 서서히 분노의 감정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 그 감정을 억눌렀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엄마는 내가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담자가 폭발하는 사건이 터졌다. 늘 반말을 찍찍해대는 손님이 있었는데, 엄마를 하대하자 상을 엎어버린 것이었다. 손님이 무슨 짓거리냐고 하자 내담자는 쌍욕을 했다. 그리고 주방에서 칼을 가지고 와 그를 찌르려고 했다. 손님은 놀라 혼비백산하며 도망쳤다. 내담자는 그때부터 손님이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화를 내고 그들을 물리쳤다.


이게 내담자가 분노조절장애에 걸리게 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화를 내는 게 행동패턴이 된 것이다. 내담자는 손님뿐만이 아니라 친구나 지인과 갈등이 있을 때도 분노를 참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수가 틀리면 이성을 잃고 물건부터 때려 부쉈다. 또 식당이나 술집에 갔는데 손님이 직원을 하대하거나 예의 없이 굴면, 마치 자기 일처럼 분노했다. 네가 뭔데 사람을 무시하느냐며 옆 테이블에 있는 사람을 폭행해 경찰서에 간 적도 많았다.


이렇듯 한번 분노가 일어나면 이성을 잃고 사람과 물건을 작살냈는데, 문제는 정신이 돌아오면 아예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면 그는 상대방에게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같은 사고가 발생했고, 그는 그때마다 비관과 자책을 했다. 왜 화를 참지 못하고 물건을 부수고 사람을 때리는지 스스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그는 20대 후반이 되었다. 사귀던 여자 친구와 결혼을 했다. 신혼생활은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아내와 갈등이 일어날 때면 여전히 분노를 참지 못했다. 이성을 잃은 채로 집에 있는 온갖 물건들을 때려 부수고 심지어 아내까지 폭행했다. 아내는 이혼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이유는 그가 정신을 차리면 자기가 어떤 짓을 했는지 아무 기억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마치 필름이 끊겼다가 돌아온 사람처럼 그는 아내에게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고 싹싹 빌었다. 그때마다 아내는 어이가 없었다.


몇 달 뒤, 그는 아내와 함께 한 식당에 들렀다. 음식을 주문하고 앉아 있는데 그가 계속 옆 테이블을 힐끗거렸다. 아내가 왜 그러냐고 묻자,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몇 분 뒤, 그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옆 테이블에 있는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는 네가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길래 사람을 무시하느냐며 쌍욕을 해댔다. 주먹으로 남자를 가격하려고 하자, 다른 일행이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아내는 급작스러운 상황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가 화를 낸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옆 테이블 남자 중 한 명이 상대방에게 면박을 줬기 때문이었다. 그 소리를 들은 내담자는 순간 이성을 잃어 면박을 준 사람의 멱살을 잡았다. 결국 남자를 폭행해 경찰서에 끌려갔다. 그리고 경찰서에서는 죽을죄를 지었다며 사죄했다. 그는 경찰에게 저 남자는 아무 죄가 없고 자기가 혼자 때렸다며 모두 자기 잘못이라고 했다. 연신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결국 피해자도 어이없어 하며 그를 용서했다.


경찰서에서 나와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아내가 대뜸 내담자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그가 뭔가 하고 보자, 조금 전 식당에서 싸운 장면이 촬영돼 있었다. 내담자가 항상 화를 내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자, 아내가 휴대폰으로 촬영을 했던 것이었다.

그는 식당에서 한 자신의 행동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의 멱살을 쥐고 흔들더니, 말리는 사람을 뒤로한 채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그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또 터지고 말았다. 친구와 단둘이 술을 먹다 말싸움을 시작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친구가 칼에 찔려 쓰러져 있었다.


정신을 차린 내담자는 자기가 저지른 일에 당황했고, 결국 경찰이 출동해 그를 체포했다. 그리고 재판까지. 친구는 내담자를 용서했지만, 재판에서 심리치료를 받으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렇게 상담소에 오게 되었다.


“그래서… 심리치료를 받았다는 증명서가 있어야 합니다.”

내담자는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원장님은 증명서는 얼마든지 작성해서 줄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내담자가 왜 분노조절장애에 걸렸는지 원인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이야기 들어보니까, 원인은 학창 시절에 있네요.” 

“학창 시절이요?”

내담자는 고개를 들어 원장님을 쳐다봤다.

“네, 학창 시절부터 엄마 가게 일을 도와주셨다고 했죠?” 

“네.”

원장님은 손가락을 펼치며 말했다.

“첫째. 그때, 손님들에게 엄마가 부당한 일을 당하는 걸 보면서 분노가 쌓이기 시작했고, 둘째. 그 분노를 표출하면서 손님과 계속 싸우다 보니까, 그게 패턴화 되고 말았어요.”

“패턴화요?”

“쉽게 말하면 화내는 게 습관이 됐다는 말이에요.”

“아… 그렇군요.”

내담자는 이해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보통 어떤 행동을 계속하다 보면 그것이 습관이 된다. 이를테면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부터 켠다던가, 회사에 출근하면서 커피를 마신다던가, 자주 쓰는 언어나 행동이 있다. 이렇듯 행동 패턴이란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몸에 배어 있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화를 잘 참는 사람은 언제나 참았기에 화가 나도 참게 되는 것이고, 화를 줄곧 내던 사람은 그것이 행동 패턴이 돼서 화를 분출하게 되는 것이다.

“제가 치료될 수는 있는 건가요…?”

내담자가 불안해 묻자 원장님이 대답했다.

“네, 분노조절장애 있으셨던 분들 치료받고 사회생활 잘하고 있어요. 승현 씨도 상담을 통해 변화되겠다는 의지를 다지세요. 그러면 상담을 받는 시간과 돈도 절약할 수 있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내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치료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한 줄기 희망을 얻고 상담을 마쳤다.



Q&A 이성을 잃으면 기억을 하지 못하는 이유



내담자가 떠난 후에 나는 원장님이 계신 상담실로 들어갔다. 분노조절장애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분노조절장애는 정확히 어떨 때 일어나는 거예요?” 

“화를 참지 못할 때 일어나는 건데, 내담자마다 화를 참지 못하는 포인트가 있어.”

“포인트요?”

“예를 들면… 내가 말하는 거에 토를 단다던가, 가만히 있는데 날 놀린다던가, 내가 싫어하는 행동이나 말을 했다던가, 어떤 걸 내가 하려고 하는데 못하게 한다던가, 등등 굉장히 다양해. 딱 하나로 꼬집을 수가 없어.”

그러니까 분노조절을 못하게 된 원인이 무엇이냐에 따라 화를 내게 되는 계기도 달라진다는 말이었다.

“그러면 오늘 상담 받은 내담자는 어떤 포인트에서 분노조절을 못하게 된 거예요?”

“학생 때부터 엄마가 손님에게 무시를 당하는 걸 자주 봤잖아? 그래서 무시를 하는 것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어.”

“근데, 자기를 무시한 것도 아닌데, 옆 테이블 사람을 폭행한 건 왜 그런 거예요?”

“가게에서 엄마를 도와주면서 엄마가 무시당하는 걸 자주 봤잖아? 그래서 주변 사람이 무시하는 언행을 하면, 엄마가 떠오르면서 분노가 일어나는 거야.”


예를 들어 내 옆에서 어떤 사람들이 욕을 신랄하게 하면 비호감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내담자도 그런 경우였다. 꼭 자기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타인을 무시하는 언어나 행동을 하면, 엄마가 연상되면서 비호감을 넘어 분노의 대상자가 된다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내담자는 왜 분노를 할 때 이성을 잃어버리는 것일까? 그것에 대해 원장님이 대답했다.

“엄마가 무시당하는 걸 보면서 감정이 억눌렸잖아? 이렇게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면, 그 감정들이 무의식 속에 빠져서, 덫에 걸리게 돼.”

“아, 무의식의 덫 그거네요.”

“그래. 그 상태에서 감정이 더는 참지 못하고 폭발하게 되면, 의식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거야.”

“그럴 때 기억을 하지 못하는 거예요?”

“응. 무의식이 의식을 배제해 버리고 분노를 일으키니까 기억을 못하지.”

“아….”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입을 뗐다.

“그러면, 분노조절장애에 걸린 사람들은 화낼 때 다 이성을 잃는 거예요?”

“분노를 표출하지 못하고 장시간 억눌려 있던 사람들만 그래. 단기간에 분노를 터트린 사람들은, 이성을 잃지 않아. 화를 내는 게 패턴화 돼서 분노조절장애에 걸리는 거지.”

“그렇구나….”


나는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내담자가, 무의식이라는 깊은 내면까지 들어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 분노라는 감정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다 다르다는 이야기였다. 예컨대 의식에 분노를 두고 있는 사람은 분노를 해도 모든 일을 기억하지만, 무의식에 덫에 걸린 분노는 순식간에 폭발해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나는 분노조절장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 분노조절장애 정리


① 원인은 내담자가 겪은 ‘부정적 환경’에 있다.

② 내담자마다 분노를 터트리는 ‘포인트’가 있다. 이는 내담자가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다르다.

③ 분노조절장애는 ‘이성을 잃는 분노’와 ‘이성이 있는 분노’로 나뉜다. 

④ 이성을 잃는 분노는, 장기간 ‘무의식의 덫에 감정이 억눌려’ 있을 때 나타난다. 더는 참지 못해 감정이 폭발하면 ‘무의식이 이성을 배제’해 기억을 못한다. 

⑤ 이성이 있는 분노는, ‘억눌려 있던 감정을 짧은 기간 안에 터트리는 사람’을 말한다. 분노를 자주 하다 보니 패턴화가 되어, 분노조절을 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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