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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가 상담소를 찾았다. 사연은 딸이 가만히 있다가도 소리를 지르며 집 안에 있는 물건을 때려 부순다는 거였다. 또 아빠만 보면 죽일 듯이 덤벼 아빠가 집을 나갔다고 했다. 내담자(딸)는 이십대 초반으로 앳된 모습이었다. 원장님은 내담자와 단둘이 상담을 시작했다. 감각검사지, 환경프로파일, 에니어그램, 공격성향검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내담자는 분노조절장애를 앓고 있었고, 가정환경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빠를 전혀 신뢰하지 못하고 있네요?”
“네, 쓰레기라고 생각해요.”
내담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그녀는 과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담자는 어린 시절부터 최근 몇 년까지 부유하게 살았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고 있어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랐다. 하지만 늘 의구심이 있었다. 왜 자신의 성이 아빠 성이 아니라 엄마의 성으로 되어 있느냐는 것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직접 엄마에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내담자는 엄마의 이야기에 큰 충격을 받았다. 사실 아빠는 미국에 본 가정이 있었고, 사업차 한국에 왔다가 엄마를 만난 후 같이 살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엄마가 임신해 아이를 낳은 게 바로 자신이었다.
그래서 아빠랑 같이 살고 있지만, 아빠의 성을 쓸 수 없는 거라고 했다. 충격이었다. 한마디로 엄마와 아빠가 불륜을 저질러 새 가정을 차렸고, 그들의 자식이 바로 자신이라는 말이었다. 아빠가 미국으로 출장만 가면 엄마가 왜 그렇게 의부증 환자처럼 행동하는지 비로소 이해되었다. 불안하니까 아빠를 달달 볶으면서 의심했던 거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뒤로 내담자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부모님을 더러운 존재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태어난 자신도 더럽고 불결하다고 생각했다. 또 만약 이 사실을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얼마나 비난받을 일이며 수치스럽고 창피한 일인지 불안에 떨었다. 친구들을 멀리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내담자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아빠가 하던 사업이 무너져 버렸다. 엄마가 일하고 아빠는 집에서 놀게 되는 상황이 되었다. 가뜩이나 아빠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내담자는 그런 아빠의 모습이 너무나 보기 싫었다. 특히 허풍을 떠는 게 짜증났다. 조금만 있으면 떼돈을 번다느니, 근사한 집으로 다시 이사할 계획이라느니, 멋진 차를 사준다느니 현실과 동떨어진 말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담자는 아빠가 집에서 전화 통화를 하는 걸 우연히 엿들었다. 그리고 평범한 전화가 아니라는 걸 눈치 챘다. 알고 보니 아빠는 다단계에 빠져있었고, 심지어 그쪽에 있는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그때부터 아빠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다. 아빠에게 욕을 해대며, 네가 인간이냐는 둥, 늙은이 새끼라는 둥, 나도 여자로 보이냐며 욕을 해댔다.
내담자의 분노는 학교에서도 이어졌다. 수업 중에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거나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쳐 교무실로 불려가는 일이 허다했다. 또 남녀 학생이 같이 붙어있는 꼴을 보지 못했다.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조금이라도 장난을 치면, 변태 같은 것들이 뭐하는 거냐며 소리쳤다. 여학생에게도 남자에게 미쳤냐며 극단적인 욕을 해댔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은 내담자를 싫어하기 시작했고, 선생님들에게도 찍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내담자는 집에 들어오면 소리를 지르며 물건을 집어 던졌다. 이 세상에 혼자 있는 기분이었고, 아무도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역사 선생님이 그녀에게 관심을 가져주었다.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녀의 입장을 헤아려주었다. 내담자는 역사 선생님에게서 위로를 받았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갑자기 역사 선생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그 이유는 역사 선생님이 자기가 바라던 아버지상과 너무나도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 부도덕하지 않고 가치관도 정확하고 무엇보다 따듯했다.
내담자는 상담 중 울먹이며 원장님에게 말했다.
“그 선생님이 진짜 우리 아버지인데… 어떻게 저를 데려가겠어요. 다른 여자랑 결혼해서 애까지 낳았는데요….”
한마디로 그녀는 역사 선생님을 진짜 아버지라고 여기고 있었다. 아버지가 보고 싶다며 구슬프게 울었다. 원장님은 그 이야기를 듣고 내담자가 조현병 초기증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행인 점은 역사 선생님을 자기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것 외에는 다른 문제점은 없다는 거였다. 원장님은 내담자를 위로한 뒤 친아버지와는 어떻게 지냈는지 물었다. 그러자 내담자는 그런 쓰레기는 눈에 안 띄었으면 좋겠다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내담자는 그 후로 학교에 갔다가 집에만 오면 난장판을 만들었다.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며 하루도 평온할 날이 없었다. 또 길에서도 커플이 안고 있거나 애정행각을 벌이면 창녀 같은 것들이라며 욕까지 했다. 경찰서에 간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경찰이 무슨 일이냐 물으면 내담자는 커플들을 향해 쟤네 창녀라고 말했다. 커플이 우리가 왜 창녀냐고 따지면, 길바닥에서 그런 애정행각을 하는데 그게 창녀가 아니면 뭐냐며 반박하고 모욕을 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경찰서에 들락날락하는 일이 많아지자, 내담자 아빠도 참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이냐며 딸의 뺨을 때렸다. 그게 그녀를 더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그때부터 내담자는 악귀가 되었다. “개새끼야.” “네가 나를 왜 때려.” “네가 내 아빠야? 너는 인생 패륜아야!”라며 아빠에게 욕하고 덤볐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며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가면 갈수록 딸이 망가지니 죽을 노릇이었다.
그렇게 아빠가 딸을 때린 후부터 그녀는 쿵쿵거리면서 집을 활보하기 시작했다. 집에 들어오면서부터 문을 세차게 닫고, 일부러 쾅쾅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 모습에 아빠가 한마디 하면, 째려보며, “또 패게?!”라며 대꾸했다. 아빠는, “이 병신 같은 년이 돌았냐.”며 욕을 했다. 그러자 딸은 눈이 뒤집혔다. 아빠에게 덤비며 때리라고 도발했다. 가족 상담을 했을 때 아빠는 그때 딸을 정말 죽여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내담자가 이렇게 변한 이유는 부모로 인해 자신의 미래가 불투명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에니어그램 검사 결과 도전가이자 완벽주의자에 성취가로 나타났는데, 목표도 뚜렷하고 하고자 하는 의지도 강했다. 그런데 신분 때문에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분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에 입학하지 않고,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꿈도 접게 되었다. 그리고 집에서 늘 아빠와 싸움을 했다.
딸을 도저히 컨트롤할 수준이 되지 않자 가족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딸은 3개월 동안 병원생활을 한 후 퇴원을 했다. 하지만 증상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만 되었다. 감히 나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냐며 다 죽여 버리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딸은 엄마에게 폭언을 일삼고, 아빠만 보면 칼을 들고 덤벼들었다. 아빠가 놀라 방문을 걸어 잠갔고, 내담자는 마구잡이로 칼을 휘두르며 위험천만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 보니 아빠는 결국 집을 나가 혼자 살게 되었다. 하지만 나갔다고 해서 끝이 아니었다. 내담자는 아빠가 집 근처에 산다는 걸 눈치채자마자 아빠가 있는 집까지 쫓아갔다. 살림살이를 다 박살내고 나서야, 아빠는 더 멀리 이사 갔다. 딸은 정신병원에 다녀온 뒤로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엄마는 도저히 이대로 살 수 없어 딸을 심리상담소에 데려온 것이다.
원장님은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내담자를 위로했다.
“지금 말하는 걸 들어보니까, 다은 씨는 아주 정확하고 확실한 스타일이네요.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데도 부모님 때문에 이루지 못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좌절감이 컸겠어요.”
“…이제 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내담자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부모님이 다은 씨한테 잘못했다고 사과한 적은 있나요?”
“없어요.”
“아직도 사과를 안 했어요? 아주 양심이 없는 부모네. 이제 내가 도와줄게요. 다은 씨가 다시 일어 설수 있도록 힘을 드릴 테니까 믿고 따라오세요.”
내담자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원장님은 첫 상담 때 내담자가 분노를 터트리는 원인을 파악한 뒤 상담을 마쳤다.
나는 원장님이 내담자를 상담하는 걸 보면서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바로 전 상담사례였던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도 똑같이 불특정 다수에게 분노가 이어진다는 점이었다.
[사례10]의 내담자가 사람들이 무시하는 발언에 분노를 일으켰다면, 이번 내담자는 남자가 여자에게 관심을 주거나, 서로 애정행각을 하는 걸 보면 분노를 참지 못했다.
자기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일임에도 마치 자기 일처럼 일반화했다. 그러다 보니 궁금한 점이 있었다. 뉴스를 보면 간간이 분노를 참지 못해 불특정 다수를 폭행하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이런 사람들도 분노조절장애가 있어서 그런 건지 알고 싶었다. 이에 대해 묻자 원장님이 대답했다.
“그런 사람들을 다 분노조절장애라고는 할 수 없어.”
“왜요?”
“반사회성도 있을 수 있고, 피해의식도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을 두고 다 분노조절장애가 있어서 그렇다고는 말하기가 힘들었다. 예를 들어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냥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자기를 이상하게 쳐다봤다며 폭행을 하는 예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폭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얼마 전 뉴스에서 보복운전에 대한 영상을 보여줬다. 고속도로에서 차 앞을 막더니 덩치가 큰 남자 세 명이 야구 방망이를 들고 내렸다. 그리고 피해자에게 나오라며 방망이를 휘두르는데 말 그대로 조폭이었다.
나는 원장님에게 이 부분에 관해 물었다. 조폭들은 감정조절을 못하고 폭력을 자주 쓰는데, 이 사람들도 분노조절장애가 맞느냐고. 원장님이 대답했다.
“무조건 폭력을 행사한다고 분노조절장애로 보면 안 돼. 특히 조폭은 반사회성 인격장애에 가까워.”
“어떤 면이요?”
“일단 그런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에너지가 강해. 기가 세다고 표현할 수도 있고. 그런 사람들은 특징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부모로부터 억압을 받지 않아.”
“억압을 받지 않는다고요?”
“응. 부모가 부당한 행동을 하면, 그냥 막 부딪히는 거야. 갈등이 일어나고 싸우고 난장판이 돼. 그래도 부모가 나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계속 싸움이 반복되는 거야. 그러다 결국 포기를 해. 아이 씨 이렇게 살 필요가 없다. 그냥 삐뚤어지자. 이렇게. 그래서 에너지가 강한 사람들은 학교에서는 애들을 괴롭히고, 조폭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 거야.”
“그럼 반사회성은 언제 일어나게 되는 건가요?”
“조폭생활을 할 때나, 이미 그전에 가치관에 변화가 생겨. 조폭도 반사회성이 일어나야 하는 거지, 그렇지 않고서는 그런 곳에 몸을 담진 않아.”
또 원장님은 분노조절장애를 치료하지 않으면, 반사회성 인격장애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병이 그렇듯 치료하지 않으면 더 안 좋은 쪽으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노조절장애는 반사회성 인격장애로만 발전하는 것인가?
그것에 관해 묻자 원장님이 대답했다.
“사이코패스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어.”
“어떻게요?”
“그러니까 성격이 소심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강하지도 않은 중간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있단 말이야, 너처럼.”
원장님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 사람들이 부모에게 부당한 일을 겪으면, 부모에 대한 분노가 이제 불특정 다수로 변해서 사이코패스가 되는 거야.”
“조폭이랑은 어떻게 다른데요?”
원장님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말했다.
“음… 그러니까 조폭은 화나는 일이 발생하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바로 분노를 드러내고 폭력을 쓰잖아? 이건 정당방위라고 말하면서.”
“네.”
“그런데 사이코패스는 조폭처럼 직접적으로 자기 힘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계획적으로 과시해. 계획을 통해 내가 저것을 어떻게 죽일까. 치밀한 준비를 하는 거지. 그리고 사람을 죽이든 피해를 주든 하는 거야.”
“아….”
나는 공감 간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흔히들 연쇄살인범이나 사이코패스 들을 보면, 이웃 주민들이 하나같이 평범하다고 인터뷰한 걸 봤기 때문이었다. 아주 내성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활발한 것도 아니고, 평범하게 이웃들과 인사를 하는 사이. 이웃 주민들은 하나같이 입 모아 말한다. 그런 사람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고. 연쇄살인범과 사이코패스들은 정말로 성향이 딱 중간쯤 되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이해된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원장님이 주의시켰다.
“그렇다고 또 분노조절장애가 모두 반사회성 인격장애나 사이코패스로 발전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면 안 돼.”
“왜요?”
“꼭 성향만 가지고 나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그렇게밖에 될 수 없는 특별한 상황이나 환경적 요인이 있어. 그게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 하나하나 직접적으로 설명하기에는 힘들어.”
한마디로 분노조절장애로 인해 반사회성 인격장애로 발전을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피해의식이나 피해망상까지 함께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원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분노조절장애가 발전하면?
① 가장 대표적으로 반사회성 인격장애와 사이코패스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② 성향이 강하면 조폭과 같은 반사회성 인격장애로, 성향이 중간이면 사이코패스로 발전한다.
③ 또한 특별한 상황이나 환경적인 요인에 따라 다른 증상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 예컨대 피해의식이나 피해망상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냥 지나가다가 우연히 눈을 마주쳤을 뿐인데, 저 사람이 날 무시했다며 분노를 일으키는 경우이다.
*이후 이야기는 도서 <벼랑 끝, 상담>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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