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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아론 Oct 17. 2021

[사례 17] ‘가스 라이팅’을 하는 여자 친구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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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서로의 환경 알아보기



저녁 8시. 예약된 시간이 되자, 내담자와 여자 친구가 상담소에 왔다. 원장님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이쪽에 앉으세요.”
 두 사람은 굳은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일주일 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예의상 물은 말이었다. 원장님은 두 사람이 싸웠을 거라고 예감했다. 상담을 한 번 받고 교정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담자가 입을 열었다.

“여자 친구가 약속을 어겼습니다.”

“어떤 약속을 어겼나요?”

“텐트에 억지로 들어오려고 한 것도 모자라 다 부숴버렸어요.”

원장님의 시선이 여자 친구에게 향했다.

“혜미 씨. 남자 친구가 한 얘기가 모두 맞아요?”

여자 친구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왜 약속을 어긴 거예요?”

여자 친구가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대답했다.

“그냥… 남자 친구가 자꾸 저를 거부하는 느낌이 들어서요….”

“거부하는 느낌이 아니라, 거부하고 있는 거 맞아요. 그런데 남자 친구가 처음부터 혜미 씨를 거부했나요?”

“아니요….”

여자 친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요. 남자 친구는 처음에 혜미 씨를 사랑했어요. 그런데 왜 지금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된 거죠? 혜미 씨가 강압적이고, 지배하려 들고, 무시하고 폭력적이니까 거부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이런 남자 친구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고, 거부했다고 또 감정적으로 행동했어요. 맞나요?”

“네….”

“그럼 상담하기 전에 먼저 남자 친구한테 사과하세요.”

“미안… 잘못했어….”

여자 친구가 고개를 푹 숙이고 말했다. 


원장님이 남자 친구를 바라보고 말했다.

“저는 진호 씨가 왜 텐트에 들어가 있으려고 하는지 공감해요. 그동안 여자 친구에게 당한 게 있으니까 마음의 문을 열기가 힘들어서 그런 거라는 걸요. 그런데 여자 친구 입장도 생각해봤으면 해요. 여자 친구가 텐트에 억지로 들어오고, 부순 건, 남자 친구를 괴롭히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남자 친구한테 사랑받고 싶은데, 나를 거부하고 받아주지 않으니까 그런 폭력적인 행동을 한 거예요.”

“그럼, 제가 무조건 받아줘야 하는 건가요?”

원장님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그러면 절대 안 되죠. 이번에는 여자 친구가 약속을 어겼고 잘못한 것도 맞아요. 다만 여자 친구가 왜 이런 행동을 한 건지 ‘긍정적 의도’를 알았으면 해서 말한 거예요. 그래야 진호 씨도 여자 친구가 하는 행동이 조금이라도 이해가 갈 테니까요.”


원장님은 말을 마친 후, 분위기 환기 차원에서 손뼉을 한번 쳤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도구를 건네주었다. ‘나이테로 알아보는 내 인생’이었다.


“자, 오늘은 두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서로 알아보는 시간을 가질 거예요. 나무의 나이테에 좋았던 시기는 노란색으로, 상처가 된 시기는 검은색으로 칠해 보세요.”

두 사람은 나이테에 색을 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돌아가면서 말했다. 그 결과 내담자는 특별한 상처가 없었다. 부모님과 잘 지내고,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 가장 힘든 건 여자 친구와의 관계뿐이었다.


반면 여자 친구는 5살부터 현재까지 좋았던 시절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의 부부싸움으로 인해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엄마는 매일 아빠랑 싸우기만 하면 자기를 앉혀놓고 하소연을 했다고 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에게 매일 울며 신세 한탄을 하니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또 초등학교 때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고 했다. 수학 시험을 봤을 때였다. 점수가 95점이 나와 엄마에게 바로 시험지를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자기가 반에서 1등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시험지를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다.


그리고 하는 말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걸 점수라고 가져왔냐면서 죽어버리고 싶다고 했다. 심지어 울기까지 했다. 그때 그녀는 너무 어이없고 황당했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자신이 공부를 못하면 죽어버릴 수도 있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가 악착같이 공부를 한 건 그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그녀는 성장하는 내내 엄마의 눈치를 봤다. 만약 엄마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시키는 걸 하지 않으면, 엄마가 시도 때도 없이 죽고 싶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평생을 그렇게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하며 살았다. 이 감정을 풀 때가 없어서 중학교 때부터 자해를 했다. 이후 성인이 되어 엄마라는 족쇄에서 풀려났을 때는 자유를 얻은 기분이었다.


“엄마 때문에 정말 많이 힘들었겠어요. 지금도 엄마랑 연락 안 하고 지내는 거죠?”

“네, 지금 생각으로는 당분간 아예 연락을 끊고 싶어요.”

“그래요. 그게 혜미 씨가 선택한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그렇게 하세요.”

원장님은 여자 친구의 선택을 지지한 뒤 내담자를 바라봤다.

“어때요, 진호 씨? 여자 친구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살아온 환경을 보니까, 많이 다르죠?”

“네.”

내담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진호 씨는 평범한 가정에서,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자란 사람이에요. 그런데 여자 친구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매일 싸우고, 나를 힘들게 하는 가정에서 자랐어요. 부모님한테 사랑이라는 걸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은 사랑에 대한 욕구 충족이 되지 않아서, 다른 것에서부터 찾으려 해요. 무엇으로? 남자 친구로부터. 그래서 남자 친구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거예요. 연락도 자주 하고, 바빠도 카톡을 해줬으면 하고, 일도 그만두고 함께 살았으면 좋겠고, 언제나 나만 바라봐줬으면 하는 거예요. 사랑에 대한 욕구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게 너무 강하면 남자 친구 입장에서는 어떻게 느껴지겠어요?”

원장님이 대답해 보라며 여자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망설이더니 입을 뗐다.

“숨 막힐 거 같아요.”

“바로 그거예요. 저는 혜미 씨가 왜 남자 친구한테 애정을 갈구한 건지 다 알아요. 알기 때문에 크게 나무라지 않는 거예요. 혜미 씨의 모든 행동과 감정이 이해가 가니까요.”

“……”


여자 친구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내 감정을 인정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애정결핍이 문제라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다른 남자와 사귈 때에도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그때 남자들은 다 자신을 욕하며 떠났다. 하지만 지금 남자 친구는 달랐다. 해달라는 건 모두 받아주었다. 그래서 더 사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보니 남자 친구가 망가져 있었다. 망가져 있어서 왜 바보같이 행동하냐며 더 화를 내고 때렸다. 텐트를 치고 혼자 그 안에 들어가 있겠다고 했을 때도 어이가 없었다. 속으로 저런 멍청한 애가 다 있냐고 욕했다. 그런데 원인을 알았다. 자신이 남자 친구에게 강압적으로 애정을 갈구하는 건, 모두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상황이 지금처럼 악화된 것이었다.


“이제 왜 남자 친구 텐트 안에 들어가면 안 되는지 아시겠어요?”

“네….”

“그래요. 일방적인 사랑은 사랑이 아니에요. 사랑이라는 건 서로 주고받는 거예요.”


여자 친구는 흐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억지로 남자 친구를 집에 오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연락하는 것도 닦달하지 않고 기다려 보겠다고 약속했다. 원장님은 잘 생각했다며 그녀를 칭찬했다. 내담자를 보고 말했다.


“여기서 가장 힘들었던 사람은 진호 씨가 맞아요. 그동안 여자 친구가 원하는 거 요구하는 거 다 맞춰주느라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런데 진호 씨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느냐? 그건 아니에요. 지난번 감각검사를 했을 때 청각이 2개 나왔더라고요. 그러다 보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논리적으로 잘하지 못해요. 딱 봤을 때 아니다 싶은 건 아니라고 정확히 말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까 이 상황까지 끌고 온 거예요. 그러니까 앞으로 여자 친구가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생각이 들면, 정확하게 의견을 표현하세요. 그래야 나중에 사회생활을 할 때도 정확한 사람이 될 수 있어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상담시간이 끝나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로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Q&A 가스라이팅을 하는 이유와 당하는 이유



가스라이팅은 부모로부터 시작된다.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정신적 학대를 받은 자녀가 결핍이 생겨 가스라이팅을 한다. 자신의 욕구 충족을 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사례처럼 여자 친구와 같은 사람을 만나면 모두 가스라이팅을 당하게 되는 걸까?


그건 아니다. 불합리한 일이 생기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자기주장을 확실히 하는 사람은 가스라이팅에 당하지 않는다. 아닌 건 아니라고 정확히 말하기 때문이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은 불합리함을 알면서도 맞춰주는 사람이다.


특히 청각이 떨어지는 사람이 가스라이팅을 당할 확률이 높은데, 말을 논리적으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당하다는 걸 알면서도 대응하는 능력이 떨어져 그냥 상대방의 의견에 따라간다. 그래서 우리는 연애를 할 때 반드시 이 점을 알아야 한다.


내가 상대방을 배려해 맞춰주는 것과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배려와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는 경계’를 확실히 알아야 한다. 예컨대 상대방이 파스타를 좋아해 먹고 싶다고 하면, 당연히 먹어줄 수 있다. 문제는 내가 밀가루 알레르기가 있는데도, 파스타를 먹자고 요구할 때다. 이것이 부당한 요구에 해당한다.


그럴 때 우리는 보통 이렇게 대화한다. 

“우리 파스타 먹을래?”

“나 밀가루 알레르기 있잖아.”

“그래도 한 번만 먹으면 안 돼?” 

“못 먹는다니까.”


이렇게 대화를 끌고 가는 것보다 더욱 구체적이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게 좋다.


“나 밀가루 알레르기 있는 거 너도 알잖아.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니까? 그리고 오늘은 둘이 같이 식사하기 위해 만났는데, 너는 내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어. 아예 내가 할 수 없는 걸 요구하고 있잖아. 이건 잘못된 거야. 오늘은 같이 먹을 수 있는 거 먹자.”


정확한 의사전달이란 이런 걸 말한다. 그냥, “나 밀가루 알레르기 있잖아.” “못 먹는다니까.”라고 해서는 안 된다. 

연애를 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만난다고 해서 다 당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지 정확하게 내 의견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이후 이야기는 도서 <벼랑 끝, 상담>에서 확인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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