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내담자분이 직접 쓴 글입니다. 정신과 병원에서 조현정동장애 진단을 받고 9년 동안 약물치료를 받았습니다.
조현정동장애란?
조현병과 조울증이 함께 있는 증상을 말합니다.
치료 일기를 읽어보시면, 이 분이 왜 조현정동장애에 걸리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현재는 심리치료를 통해 건강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기는 내담자분이 치료를 모두 받은 후 쓴 글입니다. 심리 증상을 앓고 있는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쓴 글입니다.
저의 심리치료 일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서로 이웃 OOO님께서 심리치료 일기를 쓰시는 거 보고 저 또한 심리치료 일기를 써보고 싶어 졌습니다.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가장 큰 이유는 제 경험이 어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거 같습니다 처음에는 저의 경험이나 알고 있는 것이 그렇게 큰 가치가 있을까 싶었지만 중요한 건 가치가 있든 없든 용기를 내는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큰 가치가 되지 않을 거라는 망설임도 저의 오만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용기를 내보기로 했습니다. ㅎㅎ
이 글을 읽고 어떤 분은 힘을 얻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2017년 8월 말 즈음에 본격적인 심리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생겼던 일은 정말로 저에게 커다란 좌절과 모든 것이 무의미함을 가져다주었고 제가 왜 태어났나를 진지하게 고민할 힘조차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크게 폭발했지만 사실 과거부터 이미 잠재적으로 위태위태했던 것들이 댐이 무너지고 물이 폭발하듯 넘쳤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18살에 고등학교를 자퇴해서 정신과를 다녔고 9년 동안 계속 약을 복용해왔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학교에서 혼자 다녔고 하루 종일 두, 세 마디밖에 하지 않았으며 수업은 자는 게 거의 일상이었고 내신시험에서도 다 찍고 잤습니다.
당시 심리상태는 이와 같았습니다.
1. 과거에 저를 괴롭혔던 애들에 대한 복수심.
2. 제가 어떤 무언가가 되지 않으면 애들에게 복수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
3. 공부하지 않는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
4. 명문대 입시에 대한 강박.
5. 명문대 합격했을 때의 나 자신에 관한 꿈같은 환상.
6. 책 글자만 봐도 몰려오는 두려움,
7. 한 번도 성공적이지 못했던 대인관계에 대한 근본적 회의와 두려움.
8. 말 한마디 한마디 계산해서 말하고 상대방 반응 하나하나 따져보기.
9. 부모님에 대한 극도의 원망,
10. 제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풀리지 않는 의문
11. 게임중독.
이런 것들이 뒤범벅되어 엄청난 혼란과 불안과 분노에 방황하며 살았습니다.
18살 때부터 20살 때까지 정신과 약을 복용하며 계속 상담을 주기적으로 받았습니다.
20살 때 수능을 보다가 고사장에서 갑자기 뛰쳐나왔고,
21살 때 대입 재수를 시작했는데 그때 스포츠 심리상담가한테 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상담은 상담시간 3시간 동안 상담사 혼자 말하고 저는 10분 정도 얘기했습니다.
상담내용은 뇌과학자의 주장, 심리학 이론, 물리학자의 강연, 자기계발서 인용, 개인의 성공사례, 위인의 명언을 길게 설명했고 저는 몇 시간 내내 듣다가 지루한 나머지 졸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자기가 설명한 게 뭔지 다시 묻기도 했는데, 제가 대답을 못하면 기억을 못 한다는 식으로 타박했습니다.
핵심은 결국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계획적으로 살고 나서 자신한테 보고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지키지 못했고 지키지 못해서 타박받는 시간은 점차 늘어났고 저는 계속 위축되어갔습니다.
수능 3개월 앞두고 합숙을 했는데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공부하는 강행군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을 원망하는 말을 하면, 상담사는 화를 내거나 자신이 느낀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을 털어놓으며 지금이라도 잘하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부모님에 대한 같은 감정을 반복하면 그렇게까지 말했는데도 그러냐고 혼을 내기도 했습니다.
책상에 펜이 떨어지면 줍지 않았다고 화를 내거나 다 먹고 쓰레기를 제대로 치우지 않으면, 그런 생활습관이 미래에 대인관계로 어떻게 이어지고 결국 어떻게 되는지 길게 설명했습니다.
청소도 어설프게 하면 그것이 미래에 어떻게 되는지 길게 설명하느라 저는 그 긴 설교를 듣기가 귀찮아서라도 열심히 하는 시늉을 했습니다.
제가 좋은 대학 못 가면 죽을 거라 말하자 그런 사람이 왜 pc방에 갔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답답하고 눈치를 크게 보고 언제 또 지적을 할까 몸을 크게 사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훈련? 끝에 저는 간신히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대학은 들어갔어도 여전히 환멸과 의문, 극도의 환상, 혼란, 강박, 두려움, 원망, 증오, 무기력은 저를 끝까지 괴롭혔습니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이었지만 여전히 대학에 대한 환멸, 과거에 대한 피해의식, 부모님에 대한 증오와 원망, 미래에 대한 과도한 낭만적 상상, 대인관계 공포 등으로 대학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결국 못 견딘 나머지 한 학기 만에 휴학을 했습니다. 원래는 자퇴하겠다고 하였으나 아버지가 만류하고 제가 봐도 자퇴는 너무 극단적인 선택 같아 1년 휴학으로 타협했습니다.
1년 휴학 내네에도 사람과의 교제는 일체 없었고 매일 도서관 내부를 헤매며 이 책 저 책을 끄집어보며 미래에 위인이나 영웅이 된 나를 상상하며 불타올랐습니다.
고교 때는 명문대에 가고 천재가 되는 상상을 했고, 위인전에 제가 나오는 모습, 사람들이 저를 존경하는 달콤한 낭만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무언가가 되지 않은 저 자신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조현정동장애 증상 중 하나가 과대망상이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나는 위대한 인물이 되거나 남들과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증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심리 증상 때문에 괴로워하며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나 현실은 암울했습니다.
여전히 부모님을 증오했고 거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누군가와 친해지더라도 얼마 못 가서 크게 싸우고 상실감에 젖어지내는 순간이 반복되었습니다.
대학 자체에도 애착이 없었기에, 수능을 봐서 새로운 대학을 가겠다는 도전도 해보았고, 공무원 인강 신청, 작가 지망생 커뮤니티 등에 가입하여 갖가지 시도를 해보았지만 전부 다 한 달도 안되어 식어버리고 포기해버렸습니다.
대학에 애착을 갖지 못한 데엔, 제가 간절히 원해왔던 심리학과에 대한 갈망, 그리고 전공이 저와 맞을 거라는 생각, 부모님과 심리상담가의 강압에 대한 분노 등이었습니다.
그러나 뭔가 이루고 싶다는 갈망은 정말로 간절했고 때문에 진로에 대한 엄청난 고민 속에서 갈등하며 지냈습니다. 제가 단지 심리적인 고통만 겪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진짜 큰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인지적 왜곡과 부조화가 엄청나게 진행되어 있던 상태였던 것입니다.
제 나이는 당시 22살로 대학생이지만 그때의 저는 글자로 된 건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청소년이 읽는 한국사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고, 책 한쪽 읽는데 20분이 소모될 때도 있었으며 고등학교 수학은 해답을 봐도 늘 갸우뚱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잘 풀었던 교재를 한쪽만 읽어도 갖가지 의문, 뿌리 없는 해답, 미래에 대한 과도한 환상이 마구 겹쳐져서 쓰고 싶어지는 글이 아마 A4 한쪽 분량은 됐을 것입니다.
그만큼 단어 하나하나가 저에겐 큰 의문, 수수께끼로 다가왔고 오랜 시간 들여도 진도를 나가지 못했으며 기억한 내용도 미미했습니다.
그것은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알바를 시작했어도 사장님의 말을 잘 못 알아들어 몇 번이나 다시 설명을 요구했고, 한 번에 알아듣고 실행하는 다른 알바생들이 신기해 보이기만 했습니다.
무엇을 하려 해도 제 스스로 하기가 겁이 나서 일일이 사장님께 허락을 구하거나, 한 달째 일함에도 처음 일하냐는 손님의 질문을 듣기도 했습니다.
카톡을 주고받을 때도 카톡을 골똘히 생각하느라 바로 답장을 못했고 때로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하거나 오해하여 화를 돋우기도 했습니다. 그 때문에 학교에서도 커다란 지장을 받았습니다. 교수님이 주신 과제 내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옆 사람에게 물어보거나 아니면 설명을 들었어도 여전히 이해를 못 해서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교수님 강의도 이해하지 못했고, 청소년 교재도 힘겹게 읽어내는 저에게 전공서적은 큰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 학교 생활은 더 자신감이 없어졌고 알바도 할 수 없었으며 자책감과 불안은 심해져서 친한 사람한테 극도로 의존하고 버려지면 원망과 분노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인지적 왜곡이 일어난 건 다음과 같습니다.
꼬리가 꼬리를 무는 의문들. 그것에 대해 저 혼자서 즉흥적인 대답 지어내기.
사람한테 인정받기 위해 없는 제 모습을 꾸며내고 거짓말하기.
그로 인해 스스로 제 생각조차 알 수 없음.
미래에 대한 과도한 환상으로 현실 도피 등이 원인이었던 거 같습니다.
또 며칠 동안은 묘하게도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커 보이기만하여 저는 꼼짝할 수가 없어서 소파에 온종일 누워있기도 했습니다.
그때 제 심리상태는 이랬습니다.
"내가 대학 홈페이지 클릭을 잘못해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생기는 바람에, 대학을 괜히 한 학년 더 다니게 되면 어쩌지?"
"나는 훗날 부동산 거래 같은 어려운 걸 할 수 있을까? 원룸을 구하는 대학생들은 그 어려운걸 어떻게 하는 거지?"
티브이에서 불우이웃 프로그램이 나오면 저는 그들에게 냉소적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너희는 돈이 없지만 적어도 월세 구할 만큼의 지능과 일도 쉽게 해내는 솜씨가 있잖아. 난 좋은 가정에 돈 많아도 애초에 그런 능력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해. 그런 능력 있는 것만으로도 부럽다."
아무튼 사람들로부터 자주 오해한다는 말을 들었고 반복하는 거짓말과 대인관계의 잇따른 실패, 공부에 대한 이해력 저하, 과도한 환상으로 현실 감각 사라짐에 따라 저는 완전히 존재감이 가라앉았습니다.
훗날 심리치료받을 때도 제 자신을 그려보라는 말씀에 아주 아주 작게 갇혀있던 모습을 그린 기억이 납니다.
그런 와중에 피해의식과 분노는 여전했습니다. 또 교회에서 칼을 발견하고 제가 근사한 테러리스트가 되는 상상도 했습니다. 칼을 기쁘게 학교 가방에 넣어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독재자가 어린 시절 자기 아버지한테 칼을 던졌다는 글을 보고 매료되기도 했고, 친구한테는 사람이 왜 다른 사람을 죽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더욱 심해졌고 집에서 가구를 때려 부수고는 정신과 폐쇄병동에 3개월 입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상황이 2017년 8월, 제가 27살까지 5년 동안 지속되었는데
급기야 어떤 사건이 터져버렸습니다. 그 사건은 저 자신을 뿌리째 부정하기 시작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세상 모든 것이 무의미했고, 다 하찮게 느껴졌습니다. 길을 걸을 때도 갑자기 쓰러질까 봐 힘을 주며 걷기도 했고 그저 제가 뭔가를 생각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화가 나는... 모든 걸 다 포기해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때는 이대로 가다가 정말 죽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칼로 찔려도 안 아플 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계속 침잠해가는 저를 가만히 놔둘 수만은 없다는 의지가 미약하게나마 있었습니다.
마침 제가 가입한 커뮤니티 회원분께서 심리상담소를 연결하는 일도 병행하고 계셨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그분께 간절하게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심리상담 실패 경험만 반복했던 저는 심리상담이라는 분야 그 자체에 이미 신뢰를 거의 잃어버렸는데 그래도 혹시 모르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분께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절박했고 이것이 아니면 전 죽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텀블벅에서 <벼랑 끝, 상담> 오디오북을 펀딩 합니다.
종이책에 있는 핵심 사례 11개를 뽑고,
종이책에 없는 추가 사례 8개를 녹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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