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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아론 Oct 27. 2024

안녕하세요. 사이코패스 겸 정신분열자 이수입니다(4)

[10년 전 친오빠가 저를 아파트 계단에서 성폭행 한일이 아직도 잊어지지 않습니다. 도움을 구합니다.]     


  저는 이 문장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었어요. 그 말은 즉 지금까지도 아무런 대항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거든요. 한 줄만 읽고 바로 답장을 했죠.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했는데 아직도 괴로워하는 걸 보니, 지금까지 사과하라는 말조차도 꺼내지 못했나 보군요. 정말 멍청하네요. 당신은 제가 원하는 멍청이가 맞습니다. 나머지 글도 읽고 해결책을 제시해 주도록 하죠.]     


  저는 익명의 여성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다시 사연을 읽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왔어요. 무척 화난 듯했죠.     


  [야 이 미친놈아. 내가 사과를 받을 수 있었으면 여기에 내 이야기를 했겠어? 니 조언 따위 필요 없으니까 당장 상담료 환불해.]     


  저는 바로 답장을 했어요.     


  [제가 놈인지 년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미친놈이라고 하는 걸 보니. 당신은 남자혐오가 가득한 게 분명합니다. 아마 당신은 오빠에게 성폭행을 당한 걸, 일반화시켜 이 세상 모든 남자가 혐오스럽다고 생각하는 멍청한 년일 겁니다. 출퇴근할 때도 남자랑 부대끼거나 살이 닿는 것조차 소름 끼쳐서 대중교통도 전혀 이용하지 못할 테죠. 자차로 다니거나 택시를 타고 다닐 겁니다. 당신의 남자혐오는 회사에서도 똑같이 작용합니다. 남자만 보면 회피하고, 말을 섞는 것조차 불쾌하겠죠. 한마디로 죽일 놈은 친오빠인데, 엄한 남자들에게 불똥이 튀는 형국입니다. 이런 멍청한 년이 어디 있나요? 왜 선량한 남자들을 당신 오빠와 똑같은 취급을 하나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제가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저 또한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고, 힘들었던 시절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똑똑한 사람이라 당신과 같은 길을 걷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것이죠. 환불을 받고 싶다면 다시 한번 말씀해 주세요. 당신이 여전히 멍청한 년인지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은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저는 천천히 그녀의 사연을 읽기 시작했어요. 사연 중간을 보니 그녀는 회사원이 아니더군요. 고등학교 보건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래서 전 더 심각하다고 생각했죠. 남자를 혐오하는 선생이, 학생들을 사랑하고 질 높은 교육과 치료를 할 수 있을 까요? 해코지를 하지 않으면 다행이죠.     


  저는 이런 유형의 여자를 아주 잘 압니다. 그녀는 분명히 남학생은 꼴도 보기 싫어할 테지만, 여학생에게만큼은 한 없이 상냥할 겁니다. 남학생에게 못되게 구는 것만큼 여학생에게 잘해주겠죠. 그런데 내가 잘해주는 여학생이 남학생과 붙어 있는 꼴을 보면 어떤 행동할까요? 그에 대한 답은 그녀가 쓴 사연에 적혀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학생이 있는데 왜 그렇게 남자들과 어울리는지 모르겠어요. 아마 걸레처럼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면서 몸 주고 마음 주고 그러겠죠? 그래서 한 번은 그 여학생에게 말했어요.]     


  “미주야 영원이 말이야. 너 몰래 네 친구 희정이랑 잤대. 어떻게 알았냐구? 희정이가 얼마 전에 자기가 임신한 거 같다면서 선생님한테 상담받으러 왔거든. 그러니까 영원이랑 가까이하지 마. 걔 완전 걸레야.”    


  [그 말을 듣자마자 펑펑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저는 미주가 남자들에게 농간당하지 않는 여자가 됐으면 좋겠어요.]     


  성폭행이나 성추행을 당한 여자는 다 이런 식입니다. 그냥 남녀가 같이 붙어 있는 것만 봐도 불쾌함을 느끼죠. 하지만 제가 경악한 것은 이 부분이 아니랍니다. 이 보건 선생은 치료를 받으러 온 학생에게 독까지 먹이고 있었죠.     


  [저는 보건 선생이 되기 전에 제약회사를 다녔어요. 제가 한 연구는 치사량이었어요. 약물을 투여했을 때 인간이 죽을 수 있는 최소의 양을 구하는 거였죠. 그때 연구실에서 얼마나 많은 쥐를 죽였는지 몰라요. 족히 수백 마리는 될 거예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이건 비밀인데, 사실 제약회사는 시험용 쥐 말고도 토끼를 이용해요. 왠지 아세요? 포유류 중에서 쥐 다음으로 번식력이 가장 뛰어나거든요. 수개월에 한 번씩 열 마리 넘게 새끼를 낳는데, 정말 걔네들은 바퀴벌레라니까요. 저는 바퀴벌레는 질색인데 토끼는 귀여워서 그런지 죽이기는 쉽더라고요. 그런데 토끼에게는 또 하나 놀라운 점이 있어요. 똥에서는 독버섯이 자란다는 거죠. 이름은 좀비환각버섯. 길이는 2.4~4cm까지 자라는데, 먹으면 환각 증상이 나타나는 버섯이에요. 제가 이 이야기를 왜 하는지 짐작이 가시나요?]     


  저는 짐작이 간다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 버섯을 학생들에게 먹였다는 말이었죠. 영원이라는 남학생과 미주라는 여학생에게 독버섯을 먹여 환각상태에 이르게 하고, 양호실에서 관계를 갖게 했다. 그 결과 토끼처럼 새끼를 쳤다.     


  제 추리가 망상 같은 가요? 하지만 사실이었습니다. 보건선생은 점심시간에 두 학생을 불러 좀비환각버섯을 커피에 타 먹인 후, 성관계를 갖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놀라웠습니다. 사실 존경심까지 생겼죠. 멍청한 년이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이렇게 철두철미한 여자인 줄은 몰랐거든요. 그녀의 사연을 다 읽고 경외심에 감탄을 하자, 드디어 답장이 왔습니다.  


  [제 사연을 읽어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제가 제약회사를 다닌 이유는 치사량을 연구해 사람들에게 추호의 의심도 받지 않고 친오빠를 죽이기 위해서였어요. 저는 현재 그 준비를 다 마친 상태구요. 그런데 죽이기 전에 꼭 사과를 받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사과를 받을 수 있을까요? 환불은 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입술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졌어요. 오빠에게 사과를 받는 건 쉽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었죠. 그녀는 뭔가 잘못 알아도 한참 잘못 안거 같았어요. 저도 제 생각을 확실히 하기 위해 그녀에게 질문했죠.     


  [저는 당신의 계획성에 감탄했어요. 멍청한 년이라고 한건 취소할게요. 그런데 다른 멍청함이 남아 있는 거 같아요. 지금 당신은 부모님과 같이 사는 중이라고 했는데, 그럼 현재 오빠와도 같이 살고 있는 건가요?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오빠에게 성폭행당한 게 아파트 계단 한 번인가요? 아니면 그 후로도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나요?]     


  [그 이후로는 없어요.]     


  저는 역시 제 생각이 맞다며 바로 답장을 보냈습니다.     


  [세상에 없다고요? 당신 미쳤네요. 하마터면 죄 없는 오빠를 죽일 뻔했잖아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사이버로 연결되어 있지만, 저는 그녀가 당황했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답니다. 그녀에게 알아듣기 좋게 설명했죠.      


  [보건 선생님. 우리 신중히 생각해 보도록 해요. 당신은 지금 좀비환각버섯을 먹은 것처럼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무슨 착각요?]


  [살인범이 살인을 저지르면, 왜 멈추지 않고 연쇄살인을 하는지 아세요? 그건 쾌락을 잊을 수 없어서예요. 마지막 숨통을 끊는 그 쾌감은 사정보다도 진한 쾌락이라고요. 시신을 썰었던 손맛을 잊을 수 없어서 누워서도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해요. 거기다 피해자가 죽기 전에 보내는 신호는 어떻고요? 공포에 물든 눈빛 하며, 덜덜 떠는 턱, 매끄러운 피부에 오돌토돌 돋아난 소름. 눈에서 나는 건지 코에서 나는 건지 살려달라고 외칠 때마다 떨어지는 분비물. 심지어 오줌을 싸면서도 수치스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그 장면은 정말 명장면이라니깐요? 하물며 성폭행은 어떻겠어요? 연인들이 싸워서 헤어져도 몸 정 때문에 다시 만나거나 섹스 파트너가 되는 게 성욕인데, 세상에 먹잇감이 바로 코앞에 있는데도 오빠가 당신을 딱 한번 성폭행하고 그만뒀다고요? 그건 동물의 법칙에 위배되는 행동이에요. 보건 아가씨. 다시 생각해 보세요. 오빠는 성폭행 범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사과해야 할 사람은 오빠가 아니라 당신이라고요. 당신은 10년 전에 다른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그걸 오빠라고 착각한 거예요. 아마도 성폭행을 당하기 며칠 전에 오빠랑 크게 싸웠을 테죠. 그게 뇌에 각인 돼서 오빠가 나에게 이런 짓을 한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한심하게도.]     


  저는 메시지 보내기를 클릭한 후, 한 동안 보건 선생의 답장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지나도, 1시간이 지나도, 하루가 지나도, 아무런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죠. 아마도 자기가 정말 멍청한 년이었다는 걸 깨달아 충격이 컸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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