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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윤수의 선택

by 송아론

“린!”


윤수가 외쳤다. 린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뒤돌아 선채로 소금기둥이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린. 너 맞지?”


윤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괴리감이 느껴졌다.


“대답 좀 해봐. 왜 그래?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응?”


“멈춰.”


윤수가 멈칫 멈춰 섰다.



“왜 온 거야, 여기에?”


린이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윤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충격에 말을 잊었다.


“다 알고 온 거 아냐?”


린이 싸늘한 눈빛을 보냈다. 윤수는 ‘아...’ 거리며 입을 벌릴 채 말을 하지 못했다.


검붉다는 말도 맞지 않았다. 린의 얼굴이 썩어 들어간 것처럼 온통 새카맸다. 게다가 입술이 더 심하게 두 갈래로 갈라져 떨어져 나갈 것만 같았다.


“...우리 새벽에 이야기했던 거 맞지?”


“그래.”


“기찬이 엄마... 네가 죽인 것도 맞고?”


“그래.”


너무나 확고한 대답에 윤수는 다음 말을 생각하지 못했다. 한동안 린을 보고만 있다가 다시 물었다.


“우리 아빠한테 들었어... 너희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어떻게 된 거야?”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더 이상 불쌍해지지 않게 만들었어.”


“뭐...?”


윤수는 믿을 수가 없다며 이어 말했다.


“그 말은 네가 죽였다는 뜻이야?”


“꼭 대답을 들어야겠어?”


윤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저번 주 린이 용언 폭포까지 올라와 자신을 집으로 데려다준 날이었다. 그날 윤수는 박중구에게 죽임을 당할 뻔했다. 주말이 끝나고 다시 린을 만났을 때, 그녀의 얼굴은 만신창이였다. 얼굴에 붉은 반점이 돋아나 있었다. 왜 그런지 이상했는데, 엄마를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린이 누군가를 헤쳤을 거라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알았다. 린은 사람을 죽일 때마다 자신도 죽어가고 있었다. 저 갈라진 입처럼.


윤수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상심에 젖어 이따가 말했다.


“왜 그런 거야! 왜! 왜 너희 엄마를 죽인 거냐고!”


“다시 말해 줘야 하는 거야?”


“그래도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엄마는... 너에게 둘도 없는 가장 소중한...”


“윤수야.”


린이 말을 끊었다.


“나는 한 번도 내가 둘이라고 느낀 적이 없어. 나는 늘 혼자였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야.”


“멍청한 소리 하지 마! 너희 엄마가 있었기 때문에 너도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거라고!”


윤수가 이어 말했다.


“그런데 지금 봐봐. 엄마가 죽으니까, 너도 이제 모든 걸 다 포기한 것처럼 행동하잖아! 아냐?”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그런데 그것 때문만은 아냐.”


“또 뭐가 있는데?”


“말했잖아. 못 참겠다고.”


윤수는 오늘 새벽에 느꼈던 불길함이 등골을 타고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설마...? 사람들을 다 죽이겠다는 건 아니지...?”


린은 대답이 없었다. 윤수는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사람들을 다 죽이겠다니. 누구를? 선생님을? 애들을? 우리 아빠를?”


“적어도 넌 아냐.”


린이 말했다.


윤수는 이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나만큼은 그녀에게 인정받았다는 안도감? 적어도 이 마을에 있는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존재감?


“린.. 이러지 말자. 선생님도 이제 너를 도와주기로 마음먹은 거 같아. 그러니까...”


“이미 늦었다고 얘기했어.”


린은 윤수를 지나쳐 폭포수 앞에 섰다.


“그러니까 돌아가 이제.”


윤수는 린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던 중 폭포수 바깥에 어떤 물체가 있는 게 보였다. 물줄기 사이를 자세히 보니 절벽 위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안 돌아갈 거야? 너도 보고 싶어?”


린이 말했다. 윤수는 그제야 그 사람의 정체를 알아냈다.


“이장님이야...?”


윤수가 말했다.


“너.. 설마 이장님을 죽이려고 여기에 온 거야?”


“맞아.”


“왜! 왜 그러는 건데?”


“오래전 우리 학교의 우리 엄마 담임 선생님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마을 이장이고. 저 사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윤수는 린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것 같았다.


마을 이장님이 아버지의 담임 선생님이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학창 시절 아버지는 악마나 다름없었고, 마을 이장님은 그것을 막지 못했다.


그런데 과연 당시 이장님이 힘이 없어서 아버지를 막지 못했던 것일까?


윤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한 힘이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은, 린의 어머니가, 그리고 린이,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막을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마을 사람들이 린의 어머니를 강간하는데도 이장님은 아무런 손도 쓰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윤수는 그제야 마을 이장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살인은 다른 문제가 아닐까? 만약 어떤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여, 혹은 범법행위를 하고 도덕적 가치를 훼손하는 일을 한다고 하여, 그 사람을 다 죽인다면, 당당하게 이것이 옳은 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린아... 분명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윤수는 린의 팔을 붙잡았다. 순간 화염처럼 뜨거워 손을 뗐다.


“10초간 시간을 줄게, 돌아가던가, 지켜보던가, 둘 중 하나만 해.”


린은 완고했다. 폭포 물줄기 사이로 보이는 이장은 금방이라도 뛰어내릴 태세로 절벽 끝에 서서 비틀거렸다.


윤수는 그 모습을 보자니 나도 새벽에 린에게 홀린 게 틀림없다는 걸 실감했다.


“벌써 5초 지났어. 결정 안 할 거야?”


“린... 제발!”


“사... 삼... 이... 일...”


“린!”


마을 이장이 몸을 기울일 때였다.


툭.


윤수는 자기도 모르게 린을 폭포 밑으로 밀었다. 린이 기울어지며 윤수를 쳐다봤다.


윤수는 자기가 저지른 행동에 놀라고, 린의 표정에 또 한 번 놀랐다. 그녀가 웃고 있었다. 나에게 두 눈을 맞추며 또렷한 눈동자와 입으로 웃고 있었다. 윤수는 그 찰나의 순간에 당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린이 일부로 그런 것이다. 돌아가던가, 지켜보던가가 아니라, 나를 여기서 밀던가 말던가를 선택하게 만든 거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폭포수 앞에 섰던 것이다.


“채린아!!”


윤수는 아래를 내려다보고 소리쳤다. 물줄기와 물보라로 인해 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윤수는 폭포수를 뚫고 점프를 해 바깥 절벽에 올라섰다. 고개를 내밀고 회오리가 치는 폭호 내려다봤다.


거센 폭포 소리만 들릴 뿐 린은 어디에도 없었다.


“채린아!”


“윤수 아이가? 너 여기서 뭐 하나?”


이장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말했다.


“이장님, 린이 폭포 아래로 떨어졌어요!”


윤수는 울먹이며 말했다.


“린? 채린이가?”


“네!”


“어디고? 어디로 떨어졌나!”


“모르겠어요.”


“저쪽으로 내려가 보자! 내려가면 있을 기다!”


이장은 헐레벌떡 폭포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윤수도 빠르게 그를 따라갔다.


폭포아래 계곡은 물살이 거세게 흐르고 있었다. 윤수는 린이 이곳으로 떠밀려 오진 않을까 눈을 떼지 않았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린은 보이지 않았다. 윤수는 망연자실한 얼굴로 주저앉았다.


이장이 바지 주머니를 더듬더니 휴대폰이 없자 말했다.


“니, 여서 아 내려오나 보고 있어라. 난 신고하러 갈 테니께. 알았제?”


이장이 재빨리 마을로 내려갔다. 자신이 왜 이곳으로 온 지도 모른 채 땀을 흘렸다.


***


구조대원들이 폭포 일대를 수색했다. 떠밀러 갔을지도 모른다며 물살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며 주변을 샅샅이 훑어봤다. 하지만 린은 보이지 않았다. 허망하고 허무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린이라면 분명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었다. 희망을 버리기 싫었다.


수색은 약 3시간 동안 진행했지만, 진전이 없었다. 구조대원들은 시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윤수는 왜 린이 죽은 것처럼 말하냐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린을 민 것은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윤수는 결국 신고를 받고 함께 달려온 성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지치기는 성문도 마찬가지였다. 민환에게 학교에 죽은 사람이 발견돼 수업을 안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마을 이장이 사색이 된 얼굴로 산에서 뛰어 내려오는 걸 보았다. 성문이 밭일을 하며 왜 그러냐고 묻자, 이장은 린이 폭포에 빠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학교에 있어야 할 윤수도 그 자리에 있다고 했다. 성문은 무슨 소리냐며 윤수에게 뛰어갔다. 일주일 사이 조용해질 틈이 없는 마을이었다.


성문은 윤수를 식탁 의자에 앉히고는 입을 뗐다.


“민환이 처음에 기찬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전화가 왔었단다. 애들은 다 교무실에 있다고 했고. 그런데 갑자기 마을 이장님이 오시더니 병원에 있어야 할 린이 폭포에 떨어졌다고 하더구나. 너도 같이 있다고 하면서 말야. 아빠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아는 게 있으면 나에게 이야기 좀 해줄래?”


성문은 부드럽게 말했다. 윤수는 한눈에 봐도 흥분한 상태였고 진정이 되지 않은 채였다. 여기서 자신까지 초초하거나 급한 모습을 보이면, 윤수가 입을 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성문은 윤수를 가만히 쳐다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냉장고에서 흰 우유를 꺼내 주전자에 담아 따뜻하게 데웠다. 컵에 우유를 따른 뒤 설탕을 넣고 저은 다음에 윤수에게 건넸다.


“마시고, 천천히 이야기해.”


성문은 자기도 마실 커피를 탄 뒤 의자에 앉았다. 윤수는 뜨거운 컵을 양손으로 감사 쥔 채 한 곳 만을 응시했다. 컵을 들어 천천히 우유를 마시곤 입을 뗐다.


“린이 이상해요.”


“어떤 점이?”


“아빠는 제가 하는 말 다 믿을 수 있죠?”


“물론이지. 약속 하마.”


윤수가 멍하니 말했다.


“아빠... 놀라지 마세요. 이제부터 마을에 있는 사람들이 한 명씩 죽을 거예요.”


“죽는다고?”


성문은 그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믿기지 않으시죠? 그런데 정말 그렇게 될 거예요.”


윤수가 성문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 왜 죽는다는 말이니?”


“린이 초능력을 쓸 거니까요.”


“초능력?”


“네. 기찬이 엄마를 죽인 것도 린이고, 선생님 아내를 죽인 것도 린이니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어요.”


성문은 들으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린이 민환이 아내와 기찬이 엄마를 죽였다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고, 벌어질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윤수는 확고했다. 앞으로 불어닥칠 재앙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듯한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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