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수는 맨발로 바깥에 나왔다. 걸을 때마다 자박자박 자갈이 밟히는 소리가 났다. 발바닥에 생채기가 났지만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집 뒤편으로 돌아가자 5m 높이의 느티나무가 보였다. 그 아래에 단발머리를 한 여자아이가 서있었다. 윤수는 홀린 듯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린?”
이내 윤수가 놀란 토끼눈을 했다.
“린! 어떻게 된 거야? 병원에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나왔어.”
“몸은, 몸은 괜찮아? 얼굴도 아직 그대로인데.”
윤수는 걱정된다는 투로 말했다. 그녀 얼굴은 붉은 반점이 한가득이었다.
“윤수야.”
린이 입을 뗐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 벌어져도 놀라지 마?”
“놀라지 말라니? 그게 무슨 얘기야?”
“그러니까, 이제 못 참겠어.”
“뭐..?”
윤수는 가만히 린을 쳐다봤다. 무언가 불길함이 스멀스멀 등골을 타고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미안해. 어제 내가 교실에서 막아주지 못했지? 내 탓이야.”
“아니야. 너는 잘못 없어. 그러니까, 지금부터 시작이야.”
‘지금부터 시작?’
윤수는 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왼편에서 스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윤수가 고개를 돌리자, 풀숲이 살랑 거렸다. 낮고 음침한 소리가 이어졌다.
스윽... 스윽...
이내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웬 여자 한 명이 머리를 풀어헤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누구야? 이 사람은...?”
“선물해 주려고. 그러니까 놀라지 마. 알았지?”
무엇을 말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윤수는 이것 하나만은 정확히 알았다. 린을 지금 당장 말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행한 일이 생긴다.
윤수는 린에게 달려가 손을 뻗었다. 그녀의 옷깃을 잡았을 때였다.
번뜩.
윤수가 상체를 일으키며 눈을 떴다.
‘응?‘
윤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바깥이었는데, 어느새 다락방 위였다. 커튼을 치고 창밖을 내다보자 아침이었다. 느티나무 아래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뭇잎들이 햇빛을 받으며 광합성을 하고 있었다. 윤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락방을 내려갔다. 도중에 발바닥이 따끔거려 얼굴을 찌푸렸다. 발을 들어 올리자, 발바닥이 여기저기 까져 있었다.
거실로 내려가자 성문이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어제 언제 들어오셨어요?”
“아빠? 저녁에.”
“어제 선생님한테 전화 왔었어요. 린이 깨어났다고.”
“그래, 통화했다.”
“린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성문은 계란 프라이를 하다, 잠시 멈칫했다. 계란 프라이를 뒤집으며 입을 뗐다.
“민환이가 데리고 살겠대. 안 그러면 아동보호소로 가야 하니까.”
윤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린이 그걸 허락할 일이 없었다.
윤수는 샤워실로 가 씻기 시작했다. 조금 전에 린과 만났던 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샤워실에서 나와 옷을 갈아입고 학교 갈 준비를 했다. 그사이 성문은 도시락을 싸 현관문 앞에 두었다. 윤수는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다 다시 얼굴을 찡그렸다. 발바닥이 따끔거렸다.
윤수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성문이 입을 뗐다.
“윤수야.”
윤수가 고개를 돌리자 이어 말했다.
“미안한데, 다음 주 중으로 무조건 이사 가야 할 거 같다.”
윤수가 입을 떼려 하자, 성문이 빠르게 말했다.
“회피라고 해도 좋아. 그런데 아빠가 여기에 있으면 사람들이 다 너무 힘들어해. 민환이도 그렇고, 교장 선생님도 그렇고... 자꾸 사람이 죽어나가서 마을도 뒤숭숭하고... 여기에 있으면 안 될 거 같다.”
윤수는 골똘히 생각한 후 입을 열었다.
“좋아요. 하지만, 린이 안전하다고 생각될 때에요. 그전에는 죽어도 이사 가지 않을 거예요.”
윤수는 빠르게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
윤수는 가슴이 답답했다. 가면 갈수록 아버지 말대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가 무능력하고 무기력하게만 보였다.
윤수는 개울가 징검다리를 건너다 멈춰 서서 고개를 돌렸다. 린의 집 쪽을 바라봤다. 왠지 모르게 린이 집에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괜한 생각 하지 말자며 몸을 돌렸다.
이제 날씨는 완전히 가을로 접어든 모양이었다. 긴팔을 입었는데도 팔뚝이 시렸다. 나뭇잎들도 싱그러움이 없어지고 건조했다.
학교 정문을 들어서자 텅 빈 운동장이 나타났다. 바람이 휘잉- 불며 공허한 소리를 냈다. 바닥에는 땅거미가 덕지덕지 붙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교실로 향하자, 쓱쓱 빗자루를 쓰는 소리가 났다. 소리가 일정했다. 한 번씩 까드득- 유리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윤수가 교실 안을 들어가자 민환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왔니? 어떻게 된 거니? 왜 형광등이 다 깨진 거야?”
“저도 잘 모르겠어요.”
윤수는 알고 있었다. 모두 린이 저지른 짓이라는 걸.
민환은 허리를 편 채 천장을 올려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업은 옆 교실에서 하자, 이제 이 교실은 못 쓰겠다.”
“네.”
윤수는 오른쪽 옆 교실로 이동했다. 교실 문을 열자마자 매캐한 먼지 냄새가 났다. 뒤이어 시끌벅적한 아이들의 울렸다. 아이들은 윤수를 보더니, ‘저기 있다, 저기.’라며 수군덕거렸다. 윤수는 무시하고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불을 켜자 형광등 하나가 깜빡깜빡 거리며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았다.
“너희들, 모두 여기로 와봐.”
민환이 아이들을 데리고 옆 교실로 이동했다. 윤수 왼편에 아이들을 일렬로 세웠다. 기찬은 머리에 붕대를 한 채였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어제는 기찬이도 머리를 심하게 다쳤고, 심지어 린은 죽을 뻔했어. 윤수 말로는 구형석 네가 린을 때렸다는 데 맞아?”
“네.”
짝-!
민환이 형석의 볼기짝을 올려쳤다. 순간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아이들은 모두 긴장한 얼굴을 했다.
“너 언제까지 그 따위로 행동할래? 여자 괴롭히는 게 좋아?”
형석은 말이 없었다.
“이 녀석이, 하는 건 힘자랑 밖에 없고. 안 되겠다. 오늘 너희 어머니 불러야겠다. 교무실로 가있어.”
형석은 몸을 돌려 교실을 나갔다. 민환의 시선이 나머지 아이들에게 향했다.
“너희들도 마찬가지야. 앞으로 한 번만 린을 괴롭히는 소리가 들리면, 다 부모님 모시고 올 줄 알아. 알겠어?”
“네...”
아이들은 침을 꿀꺽 삼키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반장, 애들 교실청소 시켜. 2교시부터 수업하도록 하마.”
민환은 말을 마치고 교실을 나갔다. 지저분한 교실만큼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그 적막을 깨고 윤수가 기찬에게 말했다.
“이기찬. 너도 나중에 린 오면 사과해. 알았어?”
“싫은데. 내가 왜 사과 하노.”
“그럼 아무 잘못 없단 말야?”
“있어도 안 할기다. 언청이니까.”
“그래? 그럼 그 머리 또 찢어줄까?”
“해봐라, 내도 가만히 안 있을 테니까.”
둘이 싸울 듯 노려봤다. 쌍둥이들이 그러지 말라며 둘을 말렸다. 윤수는 말리는 쌍둥이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호흡을 한 뒤 입을 뗐다.
“일단, 청소부터 해. 성태하고 상태는 바닥 쓸고 닦고, 이기친 넌 창문 닦아.”
“넌?”
“난, 내가 알아서 할 거니까 신경 꺼.”
기찬은 윤수를 아니꼽다며 쳐다봤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청소를 시작했다. 교실은 오랫동안 쓰지 않아 먼지가 한가득이었다. 곳곳에 거미줄도 쳐 있었다. 쌍둥이들은 몇 번이나 바닥을 닦아도 계속 나오는 먼지에 한탄을 했다.
“행님, 이거 안 닦인다 아이가. 걸레가 금방 더러워진다.”
“그래. 언제까지 해야 하노.”
윤수가 쌍둥이들을 쏘아봤다.
“너희들만 청소해? 애처럼 굴지 말고 깨끗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계속 닦아.”
입술 샐쭉 내밀며 걸레를 빨기 위해 다시 화장실로 가는 쌍둥이었다.
“제기랄 이건 또 뭐꼬!”
기찬이 목소리가 들렸다. 윤수가 고개를 돌리자, 그는 찬문을 열고 빗자루로 나뭇가지를 쳤다. 가지가 왜 여기까지 뻗어 있냐는 말이었다.
“망할! 망할!”
기찬은 욕을 내뱉으며 나뭇가지를 부러트릴 태세를 했다.
“어?”
기천의 손이 멈췄다. 그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사람 발가락 같은 게 보였다. 기찬은 위를 올려다봤다. 웬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가 뜬 눈으로 목이 매달려 있었다.
“우왁!”
기찬은 놀라 뒤로 엉덩방아를 찍었다.
“왜 그래?”
윤수가 그에게 달려갔다.
“저, 저, 저기....”
기찬이 입을 달싹 거리며 손가락으로 나무를 가리켰다.
“왜? 뭐가 있는데?”
“우, 우리 엄마다...! 우리 엄마라꼬!!”
기찬이 눈물을 터트렸다.
***
교실은 쑥대밭이 됐다. 경찰이 폴리스 라인을 치고 청소한 교실을 점검했다. 아이들은 모두 교무실에 모였다. 민환이 아이들 집에 전화를 돌려, 사람이 죽어 오늘은 수업을 하기 힘들겠다고 말했다. 경찰이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줄 테니 안심하라는 이야기도 전했다.
윤수는 교무실 구석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새벽에 린을 만났던 게 꿈이 아니란 소리였다. 거기다 머리를 풀어헤친 채 서 있던 여자. 병원에서 봤던 기찬의 엄마였다.
“이제부터 무슨 일이 벌어져도 놀라지 마?”
그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 거였는지 윤수는 그제야 이해가 갔다.
그렇다면,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을 가?
“아니야. 너는 잘못 없어. 그러니까, 지금부터 시작이야.”
‘지금부터 시작?’
윤수는 입술을 매만지다. 불현듯 무언가가 떠올랐다. 지금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혼란을 틈타, 교무실을 나갔다. 경찰들 눈을 피해 운동장을 전력 질주했다. 그대로 쉬지 않고 뛰어 린의 집으로 달려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멈추지 않았다. 징검다리를 건너 린의 집 방향으로 갔다. 이내 뛰기를 멈추고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곧이어 빨간색 지붕이 보였다. 윤수는 마당 안으로 들어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을 잠겨 있었다.
“린! 안에 있어? 린!”
윤수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집 안에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윤수는 마당을 서성이다, 그리고 가보자며 다시 뛰기 시작했다. 산비탈길을 올라갔다. 얼마나 린에게 집중했는지, 발바닥이 아프다는 것도 잊었다. 약 10분 간 달렸을 까? 드디어 폭포 소리가 났다. 윤수는 온몸이 땀에 젖은 채로 용언 폭포 옆 절벽 위로 섰다. 폭포수는 마르지도 않는지 거세게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윤수는 뒤로 열 걸음 정도 물러난 뒤, 이내 도움닫기를 했다. 절벽 끝에서 점프를 해 폭포수 안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어둠이 펼쳐졌고 적막이 흘렀다. 윤수는 뛰면서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자, 린이 뒤돌아 선 채로 서 있었다. 윤수는 놀라움반, 반가운 반인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