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이 차에서 내려 외쳤다.
“윤수야!”
윤수는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로 고개를 돌렸다. 승용차 앞에 아버지와 선생님이 있는 걸 동시에 발견했다. 말을 내뱉으려 하더니 응급실로 향하는 린을 보고는 몸을 돌렸다. 민성문과 민환이 윤수를 쫓아갔다.
구급대원들은 응급센터 안으로 들어가 빠르게 운반구를 굴렸다.
“심정지 환자예요! 심폐소생술을 해야 합니다!”
병원 관계자들이 황급히 뛰어왔다. 여자아이가 누워 있는 걸 보고 물었다.
“보호자는요?”
“아직 연락이 안 됩니다.”
병원 관계자들은 린을 데리고 병실로 들어갔다. 윤수는 앞을 가로막혀 더는 진입하지 못했다.
“윤수야! 어떻게 된 거야?!”
뒤따라온 민환이 물었다. 윤수가 창백한 얼굴로 말했다
“린이 형석이 한테 맞았어요. 그리고 발작을 일으키더니...”
윤수는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았다. 형석을 제제했더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말로만 도와주겠다, 보호해 주겠다고 했지 정작 중요한 순간에 아무것도 못한 자신이 바보 같았다.
“그래, 알았다. 학교에서는 내가 형석이랑 이야기해 보마.”
민환은 윤수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리고 접수실로가 방금 들어온 심정지 어린이 보호자가 자신이라고 말했다.
성문이 쭈그려 앉아 있는 윤수에게 다가갔다.
“윤수야, 아직 모르는 일이니까, 너무 낙심하지 마.”
윤수는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떨었다. 만약 이대로 린이 죽는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평생 자책하며 살아가야 하는 건가?
“선생님!”
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수가 고개를 들자, 민환에게 뛰어가는 그녀였다.
“무슨 일이에요? 제 애가 수술을 받다니요?”
기찬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사색이 된 채로 내 아들이 왜 다친 거냐며 민환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아이들 말로는 교실에서 형광등이 갑자기 터졌다고 합니다. 그 유리가루가 기찬이한테 떨어졌고요.”
“형광등이요? 왜 그런 일이!”
“기찬이가 린을 괴롭혔으니까요!”
윤수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아줌마는 아줌마 아들이 얼마나 비겁한 새끼인지 모르시죠!”
“뭐...?”
“그 멍청한 자식이 매일 여자애 괴롭히니까 벌 받은 거라고요!”
여성은 벙찐 얼굴을 했다. 무슨 소린지 이해를 하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성문이 윤수의 팔을 붙잡았다.
“윤수야.”
“아빠도 가만히 계세요!”
성문이 멈칫했다. 그사이,
“엄마?”
남자애 목소리가 들렸다. 기찬이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수술실에서 나왔다.
“기찬아!”
여성이 그에게 뛰어갔다.
“어떻게 된 거야? 너, 괜찮은 거야?”
“이 나쁜 새끼!”
말릴 틈이 없었다. 윤수는 기찬에게 달려들어 주먹을 내질렀다. 기찬은 무방비 상태로 주먹을 맞고 쓰러졌다. 여성이 그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윤수는 이대로 끝내지 않겠다며 손으로 수술한 기찬의 머리를 짓눌렀다.
기찬이 고통에 소리쳤다.
“아아아- 와 그러노!!”
“아파? 아파? 너도 이러니까 아파?”
“윤수야!”
성문이 윤수를 뜯어말렸다. 기찬의 머리에 감싼 하얀 붕대가 새빨갛게 핏물로 물들었다.
“너, 누구니! 왜 우리 애한테 이래!”
여성이 소리쳤다. 그야말로 혼돈이었다. 응급센터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쳐다봤다. 민환이 여성을 말리며 입을 뗐다.
“성문아, 일단 윤수 데리고 가줘. 린은 내가 볼 게.”
“알았어..”
성문은 고개를 끄덕인 뒤 눈에 쌍심지를 켜고 있는 윤수를 데리고 갔다.
***
성문은 윤수를 차량에 태웠다. 윤수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주먹을 쥐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성문은 윤수에게 한소리 하고 싶었지만 꾹꾹 참았다.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아빠한테 설명해봐.”
윤수는 씩씩 거리며 거친 호흡을 할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네가, 설명을 해줘야 아빠도 대처를 할 거 아냐.”
성문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아빠랑은 상관없는 일에요.”
“너, 자꾸 그런 식으로 이야기할 거야?”
윤수는 말이 없었다. 성문은 머리가 아파 손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운전을 하며 입을 뗐다.
“너 아무리 아빠가 과거에 어떤 짓을 했던, 네 아빠야. 네가 힘들 일이 있으면 아빠로서 도와줄 수 있어. 그러니까 말해봐.”
“아빠 도움은 필요 없어요.”
“이 자식이 정말.”
“왜요, 때리시게요?”
성문이 화를 내자, 차갑게 응수하는 윤수였다. 성문은 기가 막혔다. 클락션이 크게 울렸다. 윤수를 쳐다보다 반대편 차선으로 차가 움직여 하마터면 옆 차와 부딪힐 뻔했다.
“너 자꾸 아빠한테 함부로 말할래? 내가 널 왜 때려?”
윤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성문은 갈수록 혼돈 속으로 빨려 들러 가는 것만 같았다. 박중구 일이 해결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숨을 고를 겨를도 없이 사건이 연속으로 터지고 있었다.
성문은 머리를 정리한 뒤 입을 뗐다.
“린, 저 아이 교실에서 저런 거 맞지?”
윤수는 입을 열지 않았다. 성문이 다시 물었다.
“너 린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야? 주말에 집에만 있었으니까, 린 따로 본 적 없지?”
윤수는 아예 시선을 돌려 창밖을 내다봤다.
“네가 알아야 될 게 있어.”
성문이 말을 이었다.
“오늘 아빠가 린 집에 갔었는데, 린 엄마가 죽어 있었어.”
윤수는 무슨 말이냐며 성문을 쳐다봤다.
“린 엄마가 죽은 지 3일은 된 거 같은데, 너 여기에 대해 아는 거 없어? 3일 동안 린 한 번도 본 적 없냐고.”
윤수는 입을 떼지 못했다. 린 엄마가 죽었다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지난번 저녁에 린이 저 집에 데려다준 후에, 한 번도 보지 않았어요. 오늘 학교에서 처음 본...”
윤수는 말문이 턱 막혔다. 오늘 본 린의 모습 때문이었다. 얼굴에 돋아난 검붉은 반점들. 린이 선생님 아내를 죽였을 때 나타났던 증상이었다. 그렇다는 건...
“뭐? 짐작 가는 거라도 있어?”
“아뇨...”
윤수는 그럴 리가 없다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린이 엄마를 죽일 이유 따위가 없었다. 그리고 유언장에도 쓰지 않았는가? 내가 죽거든 죽으라고.
윤수는 오른손 주먹을 꽉 쥐었다. 일단은 그것보다 린이 빨리 깨어났으면 했다. 그래야 뭐라도 물어볼 수 있는 게 아닌가. 린이 깨어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기 싫었다.
***
민환이 초조한 얼굴로 응급센터 의자에 앉아 있을 때였다.
“심정지 어린이 보호자 되시죠?”
“네, 맞습니다.”
민환이 일어서며 대답했다.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곧 일반병실로 옮길 테니까 같이 오시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민환은 다시 의자에 앉아 얼굴을 쓸어내렸다.
잠시 후, 린이 일반병실로 옮기자 민환이 따라갔다. 구급차에 실려 갔던 아찔한 모습과는 달리 금방 증세가 호전된 모습이었다. 민환은 조심스레 병실로 들어갔다.
“괜찮은 거니?”
“네.”
린이 대답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형석이가 때렸다며?”
“네.”
“형석이는 내가 주의를 주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자를...”
“새삼스레요.”
“뭐?”
“애들이 저 괴롭히는 거 선생님 몰랐던 거 아니잖아요.”
“그건...”
민환 시선을 늘어트렸다.
“미안하다. 선생님 잘못이다.”
“괜찮아요. 선생님이 잘못한 건 없어요. 하지만 마치 몰랐던 것처럼은 이야기하지 마세요. 그게 더 선생님을 안 좋게 만드니까요.”
민환은 대꾸하지 못했다. 하나하나 맞는 말이었고, 린의 말대로 자신은 위전자일 뿐이었다.
민환은 창가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 린을 쳐다보며 입을 뗐다.
“물어볼 게 있다. 연서 말이다... 엄마가 죽은 거 알고 있었지?”
린은 입을 열지 않았다.
“연서가 언제 죽은 거니? 윤수 아버지가 오늘 너희 집에 갔다가 숨진 걸 발견했다더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응?”
“몰라요, 저도.”
린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민환은 입원실에 누워 있는 그녀를 보며 애틋한 생각을 했다. 동시에 지금까지 저 어린아이에게 무심하게 대했던 자신이 재조명됐다.
연서가 망가지고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는 실의에 빠졌다. 연서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아무것도 하려 들지 않았다. 그녀의 딸이 학교에서 어떤 일을 당하던 아이들이 무슨 짓을 벌이던, 회피했고 아는 척하지 않았다. 그저 기계처럼 수업만 했다. 린이 어려움 속에 있을 때도 단 한번 눈길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린을 도와주는 윤수를 보고, 시기를 했다. 제 까짓 게 뭔데 저 아이를 도와주겠다고 하는 건지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교실에서 윤수에게 손찌검을 한 것도 그런 감정이 들어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도와주겠다?
이것이야 말로 진짜 위선자가 아닌가.
린의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었다.
'몰랐던 것처럼 행동하지 마라. 너는 다 알고 있었잖아. 아니야?'
민환은 자기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침음을 삼켰다.
고개를 돌리고 있는 린의 손을 잡았다.
“미안하다. 선생님이 그동안 너에게 몹쓸 짓을 했다. 이제 그러지 않을 테니까 용서해 주렴. 그리고...”
민환은 뜸을 들인 뒤 말했다.
“섣부른 말이다만, 선생님 딸이 되어주면 안 되겠니? 선생님이 이제부터 널 보살펴 줄게.”
진심이었다. 민환은 채연서가 살아 있을 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그녀 대신, 그녀의 딸을 지켜줘야 한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깨닫지 못했다. 성문에 대한 복수심과 경멸 이전에, 가장 먼저 그녀의 딸을 지켰어야 한다는 것을.
하지만 성문이 이 마을로 이사를 온 순간, 모든 것이 그에게 꽂혔다. 어떻게 하면 지난날의 모멸감을 갚아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만 몰두했다. 그러다 보니 놓치고 있었다. 내가 지금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전혀 자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연서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번뜩 뇌리에 린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이라도 연서의 딸을 구해줘야 한다. 린을, 이 아이를, 연서와 같은 삶을 살게 만들 수 없다. 그것이 오늘 내린 결정이었고, 성문에게 린을 양녀로 삼겠다고 말한 배경이었다.
“린아, 선생님도 아내가 죽었어. 그러니까 우리 둘 다 새 출발한다고 생각하고 함께 살자. 그렇겐 안 되겠니?
린은 오랫동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열린 창문에서 솔바람이 불어옴과 동시 커튼이 위로 펄럭였다. 햇살이 병실을 한가득 비췄다. 민환은 린의 얼굴에 쏟아지는 햇빛을 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바람이 가시고 커튼이 창문을 막자, 빛이 일순간 차단됐다.
“늦었어요, 선생님.”
린이 이어 말했다.
“어차피 이제 다 끝났어요. 선생님이랑 저랑은 살 수 없는 사이예요.”
“이대로라면, 너 아동 보호소에 맡겨져야 할 수도 있어. 그러면 이 마을이 아니라 아예 다른 곳으로 가게 될지도 몰라.”
“괜찮아요. 전 어차피 다른 세계에 사는 아이니까.”
민환은 눈썹을 움찔거렸다. 다른 세계에 사는 아이. 자신을 아이로 표현하는 린의 감정이 느껴졌다.
“선생님 저 일단 쉬고 싶어요. 혼자 있으면 안 될까요.”
“....그래 알겠다. 혹시 모르니까, 필요할 때 쓰거라.”
민환은 지갑을 꺼내 린 옆에 지폐 여러 장을 두었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린을 한번 쳐다본 뒤 씁쓸한 표정으로 뒤돌아섰다.
아직 린을 설득할 시간은 많이 있다. 조바심 내지 말고 기다려 보자.
민환은 그 생각과 함께 병실을 나갔다.
***
윤수는 집에 도착한 뒤 홀로 불 꺼진 다락방 위에 올라갔다. 누운 채로 이마 위에 팔을 얹어 놓고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봤다. 초점이 맞춰졌다, 흩어졌다를 반복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만약 이대로 린이 죽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평생 가슴에 묻어두고 살아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불현듯 들었다.
따르릉- 따르릉-
거실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윤수는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내려갔다. 수화기를 들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 윤수니? 선생님이야.
“네, 린은 어떻게 됐어요?”
-지금 깨어났단다. 다행히 생명엔 지장 없어. 생각보다 상태도 좋아 보이고.
윤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성문이 지금 집에 있니?
“아빠는 이장님 댁에 갔어요.”
-그래? 알았다. 그리로 전화해 보마.
“저기 선생님!”
윤수가 말했다.
“선생님이 부탁했던, 린이 쓴 유언장이요.”
윤수는 뜸을 들이다 말했다.
“실패했어요. 도저히 몰래 훔칠 수가 없더라고요.”
-괜찮다. 그건 앞으로 내가 린한테 천천히 물어보도록 하마.
“네.”
-아 그리고, 지금 학교에 애들 다 없는 거 맞지?
“네. 다 집으로 돌아갔어요.”
-알겠다. 내일은 수업 그대로 할 거니까, 그리 알고 있어라.
“네.”
윤수는 전화를 끊고 교실에 있는 형광등이 모두 깨졌다는 말을 하지 못한 걸 깨달았다. 그래도 린이 깨어났다는 소식에 윤수는 한 씨름 놓았다.
수화기를 놓고 다시 다락방 위로 올라갔다. 아직 저녁이 되려면 몇 시간이나 남았는데도 벌써 하루를 다 보낸 느낌이었다. 윤수는 그대로 눈을 감고 머리를 식혔다. 스멀스멀 잠이 올라왔다. 얼마 자지 않은 거 같은데, 잠깐 눈을 떠보니 어느새 저녁이었다. 집안에 불이란 불은 다 꺼져있었다.
바깥에선 풀벌레와 귀뚜라미 소리가 울렸다.
윤수는 머리맡에 있는 다락방 창문 커튼을 들춰보았다. 그냥 저녁이 아니라 깊은 새벽이었다. 시골의 밤과 새벽은 많은 차이가 있다. 밤은 온통 검은색이라면 새벽은 짙은 남색 느낌이었다. 밤은 바깥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새벽은 나무나 풀 따위의 실루엣들이 바람에 넘실거리는 게 보였다. 윤수는 다시 커튼을 치고 누웠다. 누운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위적인 소리가 들렸다.
똑. 똑.
똑. 똑. 똑.
윤수는 감았던 눈을 번뜩 떴다. 다시 커튼을 치고 창가를 바라봤다. 창밖에 한 여자아이가 서 있었다. 윤수는 그 아이와 눈을 마주쳤다. 홀린 듯 몸을 일으켜 바깥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