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문은 벌을 서고 있는 기찬을 보며 의아한 얼굴을 했다. 한두 시간 이러고 있던 게 아닌 거 같았다. 온몸이 땀범벅으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드님이 무슨 잘못이라도...?”
“듣자 하니 우리 아가 당신 아를 괴롭혔다고 하던데, 맞소?”
“네, 그렇게 듣기는 했습니다만...”
“내 진즉 알았어야 했는데, 미안하오. 이참에 버르장머리를 고쳐놓으리다.”
그러고는 똑바로 팔 안 들어!라고 외치는 이만구였다. 기찬은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사시나무 떨 듯했다. 성문이 이만구를 보며 입을 뗐다.
“저, 이야기를 할 때까지만 손을 내리게 하면 안 됩니까?”
“안 되오.”
단호했다. 성문은 어쩔 수 없이 기찬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런 상황에 와서 미안하구나. 아저씨 윤수 아빠야. 병원에서 봤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단다.”
“야...”
“아저씨가 어제 학교에 갔는데, 교실에 있는 형광등이 모조리 깨져 있더구나. 교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기찬이 기진맥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모르겠심니더... 그때 이상했다 아입니꺼... 린이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더니 갑자기 형광등이 깨져 제 머리 위로 떨어졌심니더.”
“니가 가만있는 아를 괴롭히니까 벌 받은 거 아이가!”
거실을 쩌렁쩌렁 울리는 이만구의 목소리였다. 기찬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죄송하다고 말했다.
성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뗐다.
“아저씨는 친구들끼리 싸울 수 있다고 생각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서로 화해하고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 있지?”
“야... 죄송합니더.”
기찬이 손을 든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성문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질문을 하기로 했다. 이만구에게 직접적으로 하는 게 아닌, 기찬을 통해 그의 입을 열기로 했다.
“아저씨가 하나만 더 묻고 싶은 게 있는데,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야?”
“저녁에 아빠랑 싸운 걸 본 게 마지막이었심니더. 자고 일어나니까 엄마가 집에 없었꼬예. 그런데 학교에서 목을 맨 채로 있었다 아입니까.”
눈물을 글썽이는 기찬이었다.
“아내가 자살하기 전날 밤에 나랑 싸웠소. 그게 궁금한 거요?”
역시나 기찬을 통하자 쉽게 입을 여는 이만구였다.
“무엇 때문에 싸우신 겁니까?”
“학교 선생님한테 전화가 왔소. 우리 아가 학교에서 다른 아를 괴롭힌다고. 그래서 아내한테 뭐라고 했소. 아 교육을 어떻게 했냐면서 말이요.”
“혹시 말다툼을 할 때 폭력을 휘두르셨습니까?”
“한 대 때리긴 했다만. 와- 내가 아내를 때려서 죽었다고 하려고예?”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아내를 본 건 언제입니까?”
“어제 아침에 회사 출근할 때가 마지막이었소.”
“그러고 나서 자살을 했다는 말입니까?”
“그러니 나도 답답한 기 아니오? 이노무 여편네가 한 대 맞았다고 학교서 자살을 해? 말이 되오?”
“맞습니다. 자살한 이유가 불충분합니다.”
성문은 이만구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 동조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기도 했다. 부부싸움 때문에 홧김에 자살을 할 수는 있어도, 자기 아들이 있는 학교에서 자살을 한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성문이 이만구를 쳐다보며 입을 뗐다.
“고맙습니다. 아내분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으실 텐데 시간 내어 주셔서요.”
“됐수다. 듣자 하니까 형 씨도 아내가 죽고 여기로 왔다고 들었는데, 나는 갈 때도 없고 미치겠구먼.”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애는 계속 이렇게 벌을 주실 생각입니까? 머리를 꿰매서 땀이 차면 좋지 않을 겁니다.”
“이기찬. 방에 들어가라.”
“야, 아버지...”
자리에서 일어나 절뚝이며 방으로 들어가는 기찬이었다. 성문은 그 모습을 보며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사람이 죽은 집에는 하나같이 풍선이 터질 것 같은 예만 함이 깃들어 있다. 게다가 특유의 어둠의 냄새까지. 공기가 무겁고 축 쳐져 있었다.
***
성문은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민환의 집이었다. 성문이 초인종을 누르자 민환이 말끔한 얼굴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에게서 미세한 알코올 남새가 났다.
“무슨 일인데?”
“수사 내용에 대해 너랑 공유를 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들어와.”
의외로 성문을 쉽게 들어오게 해주는 민환이었다.
성문이 소파에 앉자 민환이 입을 뗐다.
“커피 마실 거야?”
“주면 좋고.”
민환은 가스레인지를 켜 주전자에 뜨거운 물을 끓였다.
“뭘 공유하겠다는 거야?”
민환이 뒤돌아 선 채로 물었다.
“성태 죽은 거 알지?”
“알지.”
“방금 상태 집에 다녀왔어. 상태가 그러는데 성태를 누가 낭떠러지에 밀었대.”
“누가?”
“누가 그런지는 못 봤대.”
“그러면 결국 범인이 있다는 뜻이야?”
“그래.”
민환은 조용히 뜨거운 물을 커피잔에 따른 뒤 믹스 커피를 부었다. 티스푼으로 휘저은 잔을 성문에게 건넸다. 성문이 커피를 축인 뒤 입을 뗐다.
“어제 성태가 떨어진 시간은 오후 1시야. 그때 뭐 했어?”
“뭐 하긴 집에 있었지.”
“증명해 줄 사람은 있어?”
민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날 의심하는 거야?”
“원래 의심은 제일 가까운 사람부터 시작하는 거야. 더군다나 내 생각을 공유할 거라면 알리바이가 확실한 사람한테 해야지.”
민환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없어. 너한테 굳이 증명할 필요성도 못 느끼고.”
민환은 말을 마친 뒤 식탁 의자에 앉아 커피를 들이켰다.
그사이 성문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성문은 학교에 갔던 일을 떠올렸다.
“어제 아침에 학교에 갔는데 교실 형광등이 모조리 깨져있더라. 너도 봤지?”
민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자기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건물이 낙후됐다고 하지만 전기에 문제가 생겨 형광등이 모조리 깨지는 건 상식 밖의 일이었다.
“학교에는 왜 간 건데?”
민환이 묻자 성문이 대답했다.
“윤수가 그러는데, 기찬이 엄마를 죽인 게 린이래.”
“뭐?”
민환의 눈이 커졌다.
“린은 행방불명 상태잖아. 그런데 어떻게 죽였다는 거야?”
“너, 내가 그제 했던 이야기 모두 기억하고 있지? 린이 자기 엄마를 성폭행했던 사람들을 모두 죽였다는 거.”
술에 만취가 됐을 때, 성문이 집에 찾아왔다. 민환은 취해 있었지만 그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하고 있어. 린이 연서도 죽였다며.”
민환은 믿고 싶지 않았다.
“지금부터가 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야. 잘 들어.”
성문이 내리깐 시선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린에게 초능력이 있어.”
“초능력?”
“그래.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이야.”
“그것도 윤수가 한 이야기야?”
성문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환은 성문을 쳐다보며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성문은 민환이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을 줬다. 자신도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게 무슨 소린지 현실감이 없었다.
민환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입을 뗐다.
“그래, 네 말대로 린이 죽였다고 쳐. 어떻게 그 능력을 써서 죽였다는 거야?”
“내 생각에 일단 한 가지 확실한 건 최면을 걸 수 있는 거 같아.”
성문은 윤수와 린이 민환이 집에 숨어 있던 장면을 떠올렸다. 둘이서 뭐 하고 있는 건가 싶었을 때, 갑자기 민환이 아내가 집에서 발가벗고 나왔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듯한 눈동자였다. 성문은 그때 린이 민환이 아내에게 최면을 걸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런 괴이한 일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성문은 한 가지 놓치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찬이 엄마. 그녀가 목을 맨 것도 린의 최면으로 인해 그런 것이라면 필시 린과 눈을 마주친 순간이 있었을 거였다.
“좋아, 네 말대로 린이 초능력을 쓴다는 가정을 할게.”
민환은 생각보다 빨리 비현실적인 일을 현실로 받아들였다.
“그러면 성태의 죽음은 어떻게 설명할 거야? 누군가가 성태를 밀었다며?”
이것이 딜레마였다. 지금까지 린이 죽인 사람들을 보면 물리적인 행사를 한 경우가 없었다. 실족사를 하거나 채연서처럼 자연사로 돌연 죽은 것뿐이었다. 하지만 상태는 누군가가 자기 형을 밀었다고 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물리적인 일이었다.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더군다나 린은 지금 실종 상태가 아닌가.
“그래. 린, 몸은 괜찮은 거지? 너무 밖에만 있어서 추운 거 아냐?”
성문은 새벽에 윤수가 린과 대화했던 장면을 떠올렸다. 린이 만약 죽지 않고 어딘가에 있는 상태라면, 그 능력으로 성태를 죽인 거라면? 가능한 일일까?
성문은 고개를 들어 민환을 쳐다봤다. 민환에게 어딘가 이상한 윤수에 대해 말을 할까 하다 그만두었다. 모든 걸 오픈하기에는 섣부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환의 물음에 이윽고 성문이 대답했다.
“상태는 나도 예외적인 일이라, 잘 모르겠어. 다만 너랑 같이 공유하면 뭔가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한 거야.”
민환은 커피만을 들이켤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성문은 이쯤이면 됐다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사를 하다가 다른 단서가 나오면 또 찾아올게. 수업은 당분간 잠정 중단하는 거지?”
“그래.”
민환이 초점 없는 눈으로 한 곳을 응시하며 대답했다.
“그럼 갈게.”
성문이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 때였다.
“성문아.”
민환이 그를 멈춰 세웠다. 성문이 고개를 돌리자 민환은 여전히 한 곳 만을 응시한 채 물었다.
“네 말이 맞다면 말야. 결국은 우리 아내도 린한테 죽은 게 아닐까? 윤수도 화장터에서 그 말을 했고 말야.”
민환의 얼굴에 살기가 돋아났다.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는 민환에게 성문은 입을 뗐다.
***
성문이 돌아간 후였다. 상태는 점심시간이 되자 혼자 국을 데웠다. 냉장고에서 반찬 몇 가지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렸다. 밥그릇에 밥을 엉성하게 담아 식탁 위에 올렸다. 어제저녁 아버지가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 간호를 하고 있을 테니 할머니 좀 챙기라는 것이었다. 때가 되면 밥을 차려 주라는 말에 상태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할무니 밥 먹어!”
상태가 목소리를 높였다. 할머니는 뒤뚱뒤뚱 거실로 나와 식탁 의자에 앉았다.
“국 떠서 줄게. 할무니.”
“니는 누꼬?”
할머니가 말했다.
“울 아는 어디가꼬 생판 모르는 아가 있노.”
“할무니 나 상태잖아.”
“상태? 상태가 누고?”
“어? 할머니 오줌 쌌나?”
상태는 할머니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 있는 걸 발견했다. 조금 전부터 이상한 냄새가 난다 싶었는데 오줌 비린내였다.
“할머니 옷 갈아입어야 되지 않겠노..?”
상태의 말을 무시하고는 밥을 게걸스럽게 먹는 할머니였다. 물론 맨손이었다. 그녀는 수저가 식탁 위에 있는 데에도 오른손으로는 밥을 쥐어 먹고 왼손으로는 반찬을 집어먹었다. 상태는 머리가 아팠다. 수저로 밥을 먹으라고 하는 게 먼저인지, 옷부터 갈아입으라고 하는 게 먼저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탕탕탕.
그때였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상태는 이 혼란한 상황을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게 다행이라 여겼다. 더군다나 문 바깥에 있는 사람이 제발 어른이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래야 할머니를 어떻게든 멈출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문을 열고 보니 전혀 뜻밖의 사람이 앞에 있었다.
“윤수 행님..?”
상태의 동공에 윤수가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