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님아. 무슨 일이고?”
상태는 괜스레 눈물이 차올랐다. 왜 그런지 이유를 몰랐다. 윤수를 보자마자 미안하다는 생각이 먼저였고, 기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행님아. 울 할무니가 바지에 오줌 싸고, 맨손으로 밥 먹고 있다. 어떻게 해야하노.”
윤수는 고개를 들어 앞을 내다봤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백발노인이 쳐다보지도 않고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마. 그대로 둬.”
“그냥 둬...?”
윤수는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태는 그래도 되는지 의심이 갔지만, 나보다 학년이 높은 형의 말을 듣는 것 자체가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줬다.
“행님아 근데 무슨 일이야?”
“너 성태가 어떻게 죽은 지 봤지?”
“응 봤다 아이가...”
상태는 금방 감정이 복받쳤다.
“너, 성태가 왜 죽었다고 생각해?”
“모른다. 누가 뒤에서 민 거 같았다.”
“민 게 아니야. 혼자 떨어진 거지.”
“응?”
상태는 이해하지 못한 눈빛을 했다.
“너 지금이라도 사과할 생각 있어?”
“사과...?”
“그래. 린한테 사과할 생각 있냐고.”
상태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사과하고 싶다. 미안하다. 행님한테도 미안하다.”
“그럼 지금 린한테 사과하러 갈래?”
“지금?”
상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뗐다.
“누나? 지금 실종된 거 아이가?”
“아냐. 지금 나랑 같이 있어. 갈래 말래? 네가 정해.”
“아부지가... 할머니 혼자 놔두지 말라고 했는데...”
“밥 먹고 바로 잠드실 거야. 봐봐. 지금 자고 있잖아.”
성태는 고개를 돌려 할머니를 쳐다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밥을 먹고 있던 그녀가 정말로 모든 걸 해치우고 식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
성문은 민환과 대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안이 한적해 다락방을 올려다보자 윤수가 보이지 않았다. 신발도 없었다. 성문은 다시 바깥으로 나와 윤수를 찾았다. 수색을 펼치던 경찰들도 진전이 없자 잠시 중단을 할 건지 철수를 한 건지 보이지 않았다. 성문은 먼 곳까지 시력이 닿는 곳까지 마을을 살폈지만, 윤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문득 불안감이 밀려왔다. 먹구름이 태양을 가려 마을도 우중충했다. 꼭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전조현상 같았다.
성문은 일단 린의 집으로 뛰어갔다. 윤수가 거기에 있을 거 같진 않았지만, 용언 폭포보다 거리가 가까워 먼저 가보기로 했다. 뛸 때마다 복부에 힘이 들어가 통증이 밀려왔다. 성문은 인간이란 참 기이하다고 생각했다. 새벽에 윤수를 따라 나갔을 때는 쭈그려 앉기도 하고 창문을 타고 넘기도 했는데, 그때는 배가 아픈 걸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극도의 긴장과 공포가 마취제가 되어 신체의 통증을 없애 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배가 흔들릴 때마다 욱신거려 이를 악물었다.
성문은 이내 린의 집에 도착했다. 집안에 들어가려 하자, 문에 폴리스라인이 쳐져있는 게 보였다. 의외였다. 이 집이 수사 대상이라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뜻은 곧 무엇인가가 발견됐다는 말이기도 했다. 성문은 당장이라도 폴리스 라인을 뚫고 가고 싶었다. 집에 무슨 단서가 있길래 못 들어가게 막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아직 경찰이 철수를 한지도 알 수 없었고, 성급히 들어갔다간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었다. 성문은 돌아가자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이상, 결찰 눈을 피해 들어가는 건 그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음을 기약하자며 발걸음을 돌렸다.
성문은 곧장 용언 폭포로 향했다. 기찬이 엄마가 죽은 뒤 윤수가 린을 만났던 장소였다. 그리고 그곳은 성문이 어린 시절부터 심심치 않게 실족사가 발생된 곳이기도 했다. 아이들이 놀다 떨어진 적도 있었고, 마을 여자가 자살한 곳이기도 했다. 또 어른들이 폭포 앞 절벽에서 술판을 벌이다가 싸움이 일어나 한 명이 떨어진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용언 폭포는 이 마을의 명물이기도 하지만 온갖 악재를 가지고 오는 곳이기도 했다. 마을에 안 좋은 일이 일어나면 꼭 용언 폭포에 누군가가 떨어졌다. 성문이 윤수에게 용언 폭포가 있는 곳을 알려주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미신도 있고, 환경적으로도 위험하고 알아서 좋을 게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린이 그 폭포에 떨어졌다. 그 자리에는 윤수도 있었다. 교장선생님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절벽 위라고 했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린도 교장선생님을 죽이려 했던 걸까?
성문은 고개를 내 저었다. 윤수를 찾는 것에만 집중하자면 손바닥으로 얼굴을 두드렸다. 땀을 쏟으며 이윽고 용언 폭포에 다다랐을 때였다. 폭포 바로 앞 절벽에 누군가가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윤수야!”
성문이 소리쳤다. 분명 윤수였고 그는 떨어질 것처럼 낭떠러지 위를 위태롭게 서 있었다.
“윤수야 뒤로 물러나!”
성문이 소리치며 윤수에게 뛰어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윤수는 꼼짝 않고 아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왜 그래 너?”
성문이 뒤에서 윤수를 감싸 안았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혼자? 어?”
이윽고 윤수가 고개를 들어 성문을 쳐다봤다. 그의 눈가가 새빨갰다.
“큰일이에요, 아빠.”
“왜?”
“떨어졌어요.”
“누가?”
“상태 가요. 상태가 방금 이 아래로 떨어졌어요.”
성문은 기가 막혔다. 상태는 오늘 오전에 자신이 만나지 않았는가?
“무슨 말이야. 상태가 왜 떨어져?”
“몰라요. 린과 대화를 하더니 자기도 형 따라서 죽겠다고 하면서 뛰어들었어요.”
“...뭐? 지금 그걸 믿으라고....”
“그럼 제가 거짓말을 한다는 소리예요?!”
윤수가 울분을 토했다. 성문은 혼란을 느꼈다. 하루아침, 아니 불과 몇 시간 사이에 달라진 윤수였다. 오늘 새벽에 봤던 자신의 아들과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아들과는 간극이 너무나도 심했다. 하지만 누가 진짜냐고 묻는다면 성문은 지금 눈앞에 있는 아들이 진짜 내 아들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래. 일단 내려가고 경찰에 신고하자. 그리고 아빠한테 있는 그대로 얘기해야 한다. 알았지?”
“네...”
성문은 윤수를 데리고 절벽을 내려갔다.
***
성문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을 이장에게 전화를 했다. 상태가 폭포 아래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장은 왠 또 날벼락이냐며 죽어가는 소리를 냈다. 자기는 당장 전화를 할 때가 있으니 성문에게 신고를 해달라고 했다. 성문은 경찰에게 신고를 한 뒤, 민환에게 전화했다. 자초지종을 말하며 상태 부모님에게 이 소식을 전해달라고 했다.
민환은 한동안 입을 떼지 못하더니 알았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성문은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 그대로 주저앉았다. 마치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었다. 까딱하면 얼음이 깨져 그대로 수장될 거 같았다. 벌써 마을에서 일어난 아이들 실족사만 세 번째다.
“윤수야 괜찮아?”
성문은 식탁의자에 앉아 덜덜 떨고 있는 윤수를 보고 말했다. 윤수가 오한에 떨고 있었다. 이불로 몸을 감싸주고 우유를 데워 줬지만 소용없는 듯했다.
“많이 추우면 병원에 갈까?”
“아빠, 그게 아니라...”
윤수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지금 그 여자애가 보여요. 이거 잘못된 거 맞죠? 그쵸?”
“여자애?”
성문은 무슨 말인지 몰라 미간을 좁혔다. 그러다 불현듯 떠올랐다.
“설마, 병원에서 봤던 그 여자아이가 보인다는 말이니?”
성문은 미간을 찡그리며 물었다.
“네, 지금 제 앞에 있어요.”
윤수가 거실 창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정신과 병원에서 자신을 귀찮게 했던 여자애.
다혜가 바깥 창가에 선채 미소를 띠며 윤수를 보고 있었다.
성문은 숨을 뱉으며 두 눈을 감았다 떴다. 윤수가 최근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모양이었다.
“기다려봐. 아빠가 도재학 박사님에게 약을 받아 놨어.”
성문은 안방으로 들어가 서랍을 뒤졌다. 윤수와 함께 지방으로 이사를 갈 예정이라고 하자 도재학 박사가 항정신용제를 챙겨줬다.
성문은 서랍에서 약봉지를 꺼내 겉면을 뜯어낸 뒤 컵에 미지근한 물을 담아 윤수에게 건넸다.
“정신과 병원에서 먹었던 약 있지? 그거야. 먹어봐.”
윤수는 약을 받아 입에 넣은 뒤 물과 함께 삼켰다. 동시에 고개를 돌려 창밖에 선채로 자신을 웃고 있는 다혜를 쳐다봤다.
“어때? 사라졌어?”
성문이 묻자 윤수가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일단은 다른 곳으로 간 거 같아요.”
“그래 오늘 있었던 일은 신경 쓰지 말고 푹 쉬 거라. 옷 갖다 줄 테니까 갈아입고 눈이라도 붙여.”
“안방에서 자도 돼요?”
생전 처음 듣는 소리였다. 8살 이후로 윤수는 단 한 번도 부모님 곁에서 잔적이 없었다. 혼자 방에서 자다가 무섭다고 칭얼댄 적도 없었다. 그런 아이가 같이 자면 안 되냐고 묻자, 성문은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래. 오늘은 아빠랑 같이 자자.”
윤수는 의자에서 일어나 옷을 갈아입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성문은 상태가 왜 폭포 아래로 떨어졌는지 나중에 묻기로 했다. 지금은 윤수가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라 시기가 맞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