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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환시 (2)

by 송아론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성문은 오늘 윤수와 자신이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식욕을 잊을 정도로 사건사고가 끊임없이 터졌다.


성문은 집안 곳곳을 확인하며 문단속을 했다. 현관문을 잠그고 불안한 창문들도 모조리 잠갔다. 가스밸브도 잠갔는지 확인했다. 현관문을 잠갔는지 헷갈려 손잡이를 돌려 확인했다. 화장실에 들어가 씻은 뒤 옷을 갈아입고 윤수 옆에 누웠다. 누웠다가 일어나 괜히 안방 문을 잠갔다. 윤수는 깊은 잠에 빠졌는지, 약에 취했는지, 손끝 발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성문도 눈을 감자마자 잠에 들었다. 너무 피곤했다. 특히 요사이에 정신적 소모가 컸다. 성문은 자신이 언제 잠들었는지 도 모른 채 수면에 빠졌다.


***


성문은 잠을 자던 중 귓가에서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일어나 빨리. 일어나라니까.”


“일어났잖아, 바보야. 너 거기서 뭐 해.”


“뭐 하긴, 너랑 놀려고 왔지.”


성문은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처음에는 잠결에 인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옆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정체를 알게 된 순간 정신이 들었다.


성문은 고개를 천천히 옆으로 돌렸다. 실눈을 뜨자 윤수가 허공에 대고 말하고 있었다.


“자꾸 나 귀찮게 하지 마.”


“귀찮게 하는 거 아냐. 너랑 이야기하고 싶어서 그래.”


“나는 싫다니까.”


“싫어도 하는 수 없어.”


성문은 두 눈을 의심했다. 윤수가 천장을 바라보며 2개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나는 본연 자신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여자애처럼 높은 목소리를 냈다.


“자꾸 그러면 우리 아빠 깨울 거야.”


“깨워도 돼. 오히려 너희 아빠가 더 놀라실걸?”


성문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윤수의 동공을 쳐다봤다. 꿈을 꾸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눈동자가 너무나 또렷했고, 그렇다고 제정신이라고 하기에는 몽롱한 동공이었다. 성문은 윤수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 수백 번 생각이 교차했다.


그 순간,


“아빠 일어났어요?”


윤수가 성문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성문은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너 지금 누구랑 대화하는 거야?”


“그 여자애요. 여자애가 자꾸 자는데 저를 깨워요.”


“지금 어디 있는데?”


“아빠가 깨어나니까 도망갔어요.”


“......”


성문은 말문이 막혔다. 현재시간 새벽 3시였다.


“그래, 일단은 다시 자고, 또 그 여자애가 오면 아빠 깨워.”


“알겠어요.”


그 말과 함께 눈을 붙이는 윤수였다. 성문은 기가 찼다. 윤수는 여자아이가 자기를 깨웠다고 하지만, 성문이 보기엔 자기가 자신을 깨운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여자아이를 흉내 낸 목소리는 무엇인 란 말인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이런 증상이 나타났던 건지 너무나 궁금했다.


***


다음 날 아침. 성문은 해가 뜨자 상체를 일으켰다. 고개를 돌리자 옆에서 꿈쩍 않고 자고 있는 윤수였다.


성문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가던 중 흙이 밟히는 걸 느꼈다. 방바닥을 내려다보자 흙이 산재해 있었다. 성문은 아랫 이불을 들춰 올려 윤수의 발바닥을 확인했다. 새카만 발이었다. 급히 거실로 나가 현관문을 확인했다. 잠갔던 문이 풀린 채였다.


성문은 당황스러웠다. 윤수가 언제 바깥을 나갔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거실에 있는 전화기를 들고 어디론 가로 전화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성문이 입을 뗐다.


“지윤수라고 몇 달 전에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 보호자입니다. 혹시 도재학 박사님과 통화 좀 할 수 있겠습니까?”


관계자는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곧이어 번호를 남겨놓으면 박사님이 전화를 주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성문은 집 전화번호를 알려준 뒤 신신당부했다.


“정말 급해서 그러니 꼭 연락 달라고 말씀 주십시오.”


한숨을 쉬며 전화를 끊었다. 수화기를 놓자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상태 찾았다.”


마을 이장이었다.


“네? 어디서 찾았답니까?”


“수심 얕은 계곡에서 발견됐다 카나.”


“린은요? 린은 아직도 못 찾았답니까?”


“하무! 진짜 별일이다. 같은 폭포에 떨어졌는데 와 갸만 안 보이는 기고.”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장님. 저도 상태 시신을 확인하고 싶은데 경찰들한테 이야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이야기해 놓을 테니까 확인할 거면 지금 빨리 마을 입구로 와라.”


“네 알겠습니다.”


성문이 수화기를 끊으려 할 때였다.


“아, 그리고 성문아. 니 피 좀 좀만 나한테 줄 수 있나? 윤수 갸 피도 필요한데 괜찮지?”


“무슨 소립니까? 피가 필요하다뇨?”


“그게 굿 좀 하려고 하는데, 무당이 마을을 훑어보더니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아이가. 그러카면서 하는 말이 마을 사람들 살리고 싶으면 집집마다 피를 바쳐야 한다고 하지 않노. 소량이면 된다고 하니까 니도 협조하래이. 내가 오죽하면 이러것노.”


“알겠습니다. 만나서 이야기하시죠.”


“그래. 퍼뜩 온나.”


성문은 전화를 끊은 뒤 옷을 갈아입고 바깥으로 나갔다. 마을 입구로 뛰어가자 경찰들과 구급차가 보였다. 흐느끼는 소리는 쌍둥이들 부모님이었다. 성문은 그 자리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상태 할머니를 발견했다. 그녀를 무시하고 들것에 실린 상태의 시신 쪽으로 걸어갔다.


“수고하십니다. 저 서울 중부지구 형사 지성문이라고 합니다. 잠시 시신 좀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예? 형사요?”


경찰은 서울 형사가 느닷없이 왜 여기에 있냐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 우리 마을 사람이니께 한 번만 보여주소. 하도 아들이 죽어가 확인하고 싶다 아입니까.”


이장이 성문 뒤에서 말했다. 경찰은 난감한 얼굴은 했다. 선임 한 명이 신분을 확인하라고 하더니, 곧 후임이 형사는 맞는데 몇 달 전에 사직서를 낸 거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선임은 귀찮다는 얼굴로 입을 뗐다


“이번 한 번만입니다?”


“고맙습니다.”


성문은 지체하지 않고 시신을 덮고 있는 천을 걷어냈다. 동시에 물에 불은 상태의 시신이 나타났다. 성문은 완전히 천을 걷어내 상태의 시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확인했다. 얼굴과 가슴에 퍼런 멍이 들었는데, 떨어질 때 물의 마찰로 인해 생긴 상처인 듯싶었다. 그러니까 폭포에 떨어질 때 머리, 가슴 배순으로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그 말은 곧 윤수의 말이 사실이라는 뜻이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지 않고서는 신체에 이런 멍이 들 수는 없었다.


“고맙습니다.”


성문은 걷어낸 천을 정성 들여 시신 위에 덮었다. 구급차가 시신을 싣고 사이렌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성문이 멍하니 앞을 내다보고 있자, 이장이 그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나랑 이야기 좀 하제이.”


***


이장은 성문을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성문이 소파에 앉자 이장이 입을 뗐다.


“차라도 한잔 주까?”


“괜찮습니다. 굿을 언제 한다는 겁니까?”


“이따 12시에 용언 폭포에서 하기로 했다.”


“네? 오늘이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카대서 후딱 하려고 카지.”


“그래서 무당이 피가 필요하다고 했다고요?”


“그래이. 나도 잘 모르것는데, 혈액검사하는 똑딱이 바늘로 피만 내면 된다 카대.”


성문은 굿이 효과가 있나 싶었다. 종교도 없거니와 미신 자체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마을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 이번만큼은 그런 것들에 기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니, 지금에서는 믿을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린이 초능력을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어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힘이 또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사람들 굿할 때 다 오라고 했으니까. 니도 시간 맞춰서 꼭 와라. 알았제?”


“알겠습니다.”


***


성문은 이장과 이야기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집 쪽으로 시선을 하자 윤수가 창가에 서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성문은 곧장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에요? 밖이 시끄럽던데.”


“상태를 찾았단다.”


“그래요? 당연히 죽었겠죠?”


성문은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고프지? 이틀 동안 거의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네. 오늘은 허기가 지네요.”


“그래, 밥 먹고 이따가 아빠랑 어디 좀 같이 가자.”


“어디요?”


“교장 선생님이 굿을 하려나 봐. 마을 사람들도 다 참여한데.”


“그런 게 효과 있을까요.”


“어차피 하는 김에 있었으면 하는구나.”


성문은 주방으로 들어가 며칠 동안 먹지 않은 국 뚜껑을 열었다. 곰팡이가 피어있어 모두 쏟아부었다. 냉장고를 열어 달걀을 들고 계란찜을 만들었다.


윤수는 식탁 의자에 앉아 멍하니 성문이 요리를 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곧이어 화장실 쪽에서 문이 열리더니 흥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혜였다. 그녀는 자기도 맛있는 밥을 먹고 싶다는 얼굴로 윤수 맞은편에 앉아 히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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