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습실에서 채연서가 사라졌다?
성문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했다. 연서가 의대생의 실습용 도구가 된 것도 어이없는데, 어떻게 시신이 사라질 수 있느냐는 말이었다.
“대학 병원에서 거짓말하는 거 아냐?”
성문이 묻자 민환이 대답했다.
“모르겠어. 일단 경찰한테 연서를 찾아달라고 했어.”
“못 찾으면 내가 고발할게. 무연고 사망자라도 보존기간이 2주야. 그전에 연서를 처리했으니까, 경찰도 책임이 있어.”
민환은 몰랐다는 얼굴을 했다. 성문이 민환에게 물었다.
“대학병원은 어디야? 내가 내일 가볼게.”
“윤수는 어쩌고?”
“내일만 같이 있어 줄래? 빨리 다녀올게.”
“알겠어.”
가스레인지에 올린 주전자가 뜨거운 증기를 내뿜었다. 하지만 두 사람 다 눈치채지 못했다. 채연서에게 일어난 비극적인 일이 현실감각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
강렬한 태양빛이 창문을 뚫고 한 여자를 비췄다. 직사광선이 내리쬐는데도 그녀는 포르말린에 말린 개구리처럼 팔다리를 벌린 채 꿈쩍하지 않았다. 누가 보면 실신을 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다.
그녀의 이름은 지수. 전공의 2년 차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암기가 비상했던 그녀는 학창 시절부터 영재라 불렸다. 그 덕에 원하던 미술을 때려치우고 과학고에 들어가 회장이 되고, 전교 1등을 하고, 유일한 수능 만점자가 되어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의대에 장학생으로 들어가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녀는 의욕이라고는 쥐뿔만큼도 없었다.
가능하다면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야구방망이로 후려쳐 이 비상한 전두엽 좀 손상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후려치는 시간은 될 수 있으면 잠잘 때. 하루 30시간 이상 근무를 하고 기절해 있을 때, 누군가가 나를 돌려놓은 뒤 뒤통수를 박살 냈으면 했다.
하지만 병원에서 그런 일은 절대로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뒤통수가 깨진 응급 환자들이 줄을 섰고, 그럴 때면 지수는 울상인 얼굴로 제발 나도 실신시켜 달라며 농담 반 진단 반으로 동기생과 선배들에게 하소연했다.
오늘은 그 하소연이 통했는지, 그 깐깐한 박 교수가 몇 시간 눈 붙일 기회를 줬다.
“여러분들에게 오늘은 특별히 골드타임을 주겠네. 2시간 동안 모두 자신을 살리고 7시까지 해부학 실습실로 헤쳐 모이세.”
학생들은 환호했다. 동시에 병원 구석구석 틀어박혀 기절했다. 숙소까지 가는 시간도 아까웠다. 하지만 지수는 그러지 않았다. 자신은 그렇게 좀비처럼 자고 싶지 않았다. 될 수 있으면 잘 때만큼은 개운하고 깨끗한 상태로 자고 싶었다. 그리고 누가 잘 때 머리 좀 깨주면 1석 2조이고.
잠깐 눈을 붙였을 뿐이었는데, 시간은 금세 흘렀다. 알람이 시끄럽게 울렸다. 지수는 우주에 빅뱅이 일어났을 때도 이렇게 빨리 시간이 흐르진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수능 때도 7시간은 습관처럼 꼭 수면을 취했는데, 이곳은 많이 자면 3시간이었다. 지수는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결국 햇빛에 말린 개구리가 되어 오늘만큼은 뻗어있기로 결심했다.
얼마간 시간이 흘렀을까? 바깥에서 우당탕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벌컥! 문이 열렸다.
베프 효진이었다.
“야, 박지수! 안 일어나고 뭐 해! 7시까지 교수님이 실습실로 오라고 했잖아!”
“교수님 보고 오늘 실습실은 숙소 별관 3층 302호라고 해. 여기 카데바 한 구 있다고.”
*카데바: 해부용 시체를 뜻하는 용어
“아! 빨리 일어나! 지금 교수님 하고 애들 다 기다리고 있어!”
“싫어 절대 안 가. 나 해부해 줄 때까지 이러고 있을 거야.”
“미친년아, 잡소리 하지 말라니까아!”
결국 효진은 지수의 머리채를 잡고 일으켰다.
“아아아! 아파 이년아~!”
“카데바 주제에 아픈 건 아나 보네? 빨리 일어나! 업어치기 하기 전에!”
효진이 지수의 멱살을 잡고 말했다. 지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고등학생 때까지 유도부였던 그녀의 업어치기는 찰과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요추와 미골을 골절시킬 정도로 파괴력이 크다. 예전에는 한 남학생이 학업에 지쳐 제발 잠 좀 자게 기절 좀 시켜 달라고 하자, 그녀는 빗당겨치기로 전치 2주를 만들었다. 그 뒤로 남학생들은 효진에게 장난으로라도 자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지수는 뇌진탕은 상관없지만 골절상은 견디기 힘들 거 같아 빠르게 일어났다. 1분 만에 옷을 갈아입고 숙소를 나섰다. 병원으로 뛰어가자 효진이 그녀의 얼굴을 보곤 입을 뗐다. 가로로 빨간 줄이 그어져 있었다.
“너, 얼굴 왜 그래? 빨갛게 익었는데?”
“몰라. 햇볕에 그을렸나 보지.”
“진짜 얼굴 그렇게 쓸 거면 나 좀 줘.”
“니가 내 얼굴 쓴다고 인생이 바뀔 거 같아? 어차피 병원에 있는 동안은 망생인데?”
“그러네.”
두 사람은 병원에 본관에 도착한 뒤, 비상구로 향했다.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 지하 1층으로 향했다.
수술용 가운과 장갑, 마스크를 쓴 뒤 이윽고 실습실 문을 열었다. 카데바 앞에 서 있는 학생들이 동시에 지수에게 시선을 했다.
“아, 냄새.”
지수는 집개 손가락으로 코를 막았다. 포르말린 냄새가 전신을 덮쳤다. 가뜩이나 잠도 못 자서 어지러운 데, 역하기 그지없는 포르말린 냄새를 맡자 헛구역질이 났다.
박 교수가 학생들 사이에서 입을 뗐다.
“자네는, 늘 늦는데 이유가 있나?”
“없습니다.”
“그런데 왜 늦나?”
“인생이 고달파서요. 부모님이 억지로 의사를 시켜서 의욕이 일도 없습니다.”
“그럼 내가 자네를 위해 F학점을 줘도 불만 없겠구먼?”
“네. 대신 아버지가 슬퍼하시겠죠.”
“아버지를 볼모로 잡는 겐가?”
“그건 아니고, 사실이니까요.”
학생들은 또 부녀 싸움이 시작됐다고 생각했다. 박 교수의 수업 때마다 늘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두 사람은 꼭 신경전을 펼치고 난 뒤에 수업이 재계되곤 했다.
“박지수 학생. 앞으로 오게. 늦은 만큼 얼마나 자신 있는지 보도록 하지.”
“네, 교수님,”
지수는 ‘그러 세요 아빠.’라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카데바는 하얀 천에 덮여 있었는데, 가슴 쪽이 불록하게 튀어나온 것으로 보아 여성인 듯했다.
“실습을 하기 전에, 인간의 뼈 구성에 대해 말해보게.”
지수는 바로 입을 열었다.
“인간의 뼈는 태어날 때 270개이지만 성인의 뼈는 206개입니다. 성장하면서 뼈들이 합쳐지며 줄어듭니다. 성인의 뼈는 다음과 같이 구성됩니다. 머리뼈 29개, 척추 26개, 가슴우리 25개, 팔뼈대 64개, 다리뼈대 62개입니다.”
“머리뼈는 어떻게 나눠지나?”
“전두골 1개, 두정골 2개, 후두골 1개, 측두골 2개 접형골 1개, 사골 1개입니다.”
“얼굴뼈는?”
“비골 2개, 관골, 협골 2개, 누골 2개, 구개골 2개, 서골 1개, 하비갑개, 하비갑개골 2개, 아래턱뼈 1개입니다.”
“해부를 실시하도록 하지.”
“다른 뼈들도 다 물어보셔도 되는데요.”
“자네만 실습하는 게 아니잖나.”
지수는 왠지 통쾌했다. 할 말 없게 만드는 저 아버지의 얼굴을 볼 때마다 오늘도 이겼다며 환희에 찼다. 그런데 문제는 아버지에게 이기면 이길수록 더욱더 의대를 그만둘 수 없게 된다는 점이었다. 지수는 나중에 이것이 아버지의 계략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승부욕이 강한 그녀로서는 늘 이긴 다음에야 또 아버지에게 넘어갔다는 걸 자책했다.
반면 학생들은 지수를 경외의 눈으로 바라봤다. 이 정도면 사실 시간만 있으면 학생들도 다 외울 수 있는 난이도이긴 하다. 정말 시간만 있으면.
하지만 문제는 박교수가 오늘 자정 때 갑자기 해부 실습을 할 거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뼈를 모조리 외워두라고 한 것도 잘 시간을 줄 때 한 말이었다. 한 마디로 자지 않고 달달 외우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영역이었다. 외울게 천문학적인 의대로서는 지수의 암기력은 언제나 빛을 발했다.
“너희들을 위해 어렵게 공수한 거니까, 집중해서 하도록.”
드디어 박 교수가 카데바에 덮인 천을 걷어냈다. 실습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카데바와의 첫 대변은 이상하게 항상 긴장이 됐다. 그런데, 학생들 모두 깜짝 놀랐다. 지수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카데바라고 하면 포르말린에 말려져 미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은 놀랍게도 죽은 지 얼마 안 된 카데바였다.
“어떤가? 다른 카데바 보다 실습하기 좋아 보이지? 지수 학생. 자네부터 스타트를 끊어보게.”
박 교수가 지수에게 메스를 건넸다. 지수는 메스를 받으면서도 카데바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수술 참관도 많이 했지만 이런 식으로 깨끗하게 죽어있는 여성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유려한 몸매가 마치 새파란 크리스털 같았다. 매끈한 피부와 풍만한 유방. 잘록한 허리, 벌어진 골반은 죽음도 그녀의 아름다움을 해방시키지 못한 듯했다. 거기다 눈을 뜨기만 한다면, 누구보다도 진귀하고 따뜻한 갈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을 것만 같았다. 30대로 보였으나 20대 후반 같았고, 주름도 없었다.
지수는 정말 아쉬웠다. 내가 미대를 다녔다면 당장이라도 그녀를 누드모델로 삼고 싶을 정도였다. 그녀의 신체에 매스를 대야 하는 게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박교수는 그런 여성의 아름다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데바로만 보고 있는지, 입을 열었다.
“지수 학생. 흉부에서 복부까지 개방을 해보게나.”
“네.”
지수는 바로 대답하고 그녀의 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촉감도 완전히 인간의 것이었다. 왼쪽 흉부, 가슴 위쪽에서 곡선을 그린 뒤, 식도를 타고 내려가 복부까지 일직선으로 메스를 그었다. 같은 방식으로 이번에는 오른쪽 가슴 위부터 메스를 그어 내려갔다.
지수는 외과 수술에서 가장 중요한 게 바로 개복을 하는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한 번에 내장이 보일 수 있도록 개복을 해야 하는데, 교수님들이 수술을 하는 것을 보면 절대 쉬워 보이지 않았다. 남성과 여성, 그리고 살이 찐 정도에 따라 피부의 두께가 다 달라, 힘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또 부위별로 피부 두께가 달라서 그만큼 신중해야 했다. 인간의 몸은 나무판 자르듯이 안 잘리면 한 번 더 그어도 되는 그런 신체가 아니었다.
푹-
그때였다. 복부에서 갑자기 피가 하늘로 솟구쳤다.
“교수님 출혈이 심합니다!”
한 학생이 마치 수술을 하는 것처럼 말했다. 그와 동시 메스로 그은 자리서 용암이 들끓듯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새빨간 선혈이 운반구까지 적신 뒤 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아빠, 이거 어떻게...?”
지수는 자기도 모르게 박 교수를 아빠라고 불렀다.
“모두 떨어지고, 출혈이 멈출 때까지 그 자리에 있어!”
박 교수의 말에 학생들은 일사불란하게 카데바에서 떨어졌다. 마치 잠자는 시한폭탄을 건드린 것처럼 숨죽이고 채연서를 바라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