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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아론 Oct 23. 2020

[사례9] ‘차별’때문에 동생을 죽이고 싶은 형



[사례9] 부모의 차별로 인해 동생을 죽이고 싶은 형



엄마와 함께 초등학교 고학년 민호가 상담소에 들어왔다. 사연인즉, 민호가 하루가 멀다 하고 연년생인 남동생을 괴롭힌다는 이야기였다. 동생에게 괜히 시비를 걸고 때리는가 하면, 죽이겠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또 화나면 방문을 걷어차며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원장님은 상담 결과 민호가 왜 동생을 괴롭히는지 원인을 알아냈다. 바로 부모의 차별이었다. 민호 말로는 동생과 싸움이 일어나면 항상 자기만 혼난다고 했다. 또 자기가 하는 이야기는 귀찮아하고 웃지도 않으면서, 동생이 하는 이야기는 관심을 두고 잘 웃는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민호는 동생에게 시기와 질투를 했다. 인생의 목표가 동생을 괴롭히고 골탕 먹이고, 최후에는 죽이겠다고까지 했다.


원장님은 민호와 상담을 마치고 민호 엄마를 불러 카운슬링을 했다. 민호가 동생을 괴롭히는 데는 부모의 사랑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이다. 또 혼을 내도 시시비비를 가려 혼내야 하는데, 무조건 큰애만 잘못했다고 하면 당연히 차별을 받는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항상 큰애가 먼저 잘못을 한다고 항변했다.


“그러면 지금까지 싸운 게 모두 큰아이 잘못이라는 거예요?” 

원장님이 묻자 엄마가 대답했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겠죠.”

“그 아닌 경우가 어떤 게 있었는지 말씀해 보시겠어요?”

엄마는 주저했다. 막상 떠올려보려 하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보세요, 어머님. 아닌 경우도 있다고 하시고는 그게 뭔지도 모르시잖아요. 그게 무슨 말이겠어요? 큰애의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그냥 다 동생 편만 들었다는 거예요.”

원장님은 민호를 보고 말했다.

“민호야, 아까 선생님한테 억울한 게 있었다고 했지? 그거 한번 엄마한테 말해봐.”

민호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몇 주 전에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는데, 동생이 제걸 뺏었어요. 그래서 제가 다시 빼앗았는데, 동생이 넘어졌다고 울면서 엄마한테 일렀어요. 엄마는 또 동생 말만 듣고 왜 그러냐고 저만 혼냈고요. 맨날 동생 말만 듣고 제 말은 듣지도 않아요.” 


원장님이 이어 말했다.

“어머님, 이제 아시겠어요? 혼내려면, 무엇 때문에 싸운 건지 두 애 이야기를 듣고 혼내셔야죠. 그냥 눈으로 보이는 현상만 가지고 혼내면 되겠어요? 아마, 동생도 엄마가 무얼 보고 판단하는지 다 알고 있을 거예요. 그냥 내가 다친 거, 형한테 맞은 이야기만 하면 엄마가 내 편 된다는 거요. 그러면 그걸 보고 있는 민호는 어떻겠어요. 엄마가 동생만 좋아한다고 생각하게 되고, 당연히 동생이 싫어지죠.”

“그렇다고 폭력을 행사하는 건 아니잖아요.” 

원장님은 답답한 얼굴로 말했다.

“폭력을 행사하는 게 잘못된 건 맞지만, 큰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도 알아야죠. 큰아이가 때렸다고 해서 작은아이가 잘못한 게 없는 건 아니잖아요.” 


민호 엄마는 여전히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무엇이 됐든 밀치고 때리는 행위는 무조건 잘못됐다는 말이었다. 결국 첫 상담은 민호 엄마를 설득하지 못한 채 끝나버리고 말았다.

그 후 민호가 상담소에 올 때마다 원장님은 차별에 관해 끊임없이 말했지만, 민호 엄마는 꿈적하지 않았다. 그저 큰애가 동생을 괴롭히고 화를 내는 걸 고쳐달라고만 할 뿐이었다. 그로 인해 결국 민호는 환경치료가 되지 않은 채 의미 없는 상담만을 하게 되었다.


민호의 상담은 인지치료를 진행했다. 동생과 싸우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손으로 때리거나 발로 차는 폭력적인 행동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인지하는 과정을 거쳤다. 하지만 민호는 상담소에 오면 올수록 점점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결국 어느 시점에서는 아예 입을 꾹 닫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상담소에 올 때 밝게 인사도 하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활기차게 말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원장님을 본체만체했다. 상담도 비협조적이었다.


“민호야. 요새 무슨 일 있어? 원장님 보면 말도 안 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해 봐. 원장님이 다 들어줄게.”

“말하고 싶지 않아요.” 

“왜?”

“말하면 뭐 해요. 말해도 되는 게 하나도 없는데.” 

“지금까지 상담해서 도움이 된 게 없다고 생각해?”

“네. 엄마가 가라고 하니까 가는 거죠. 뭐가 변한 게 있나요?”

민호는 싸늘한 표정이었다. 원장님은 그 순간 민호가 자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걸 확실히 느꼈다.

“부모님이 아직도 동생하고 차별하니?”

“네. 그래서 저는 목표가 동생 죽이는 거밖에 없어요. 아니면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골탕 먹일 거예요.”

“그렇게 동생이 미워?”

“네. 어제 부엌에서 칼을 봤는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동생을 죽일 수 있을 거 같아 기분이 좋았어요.”

원장님은 민호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느꼈다. 다음 상담 때 당장 민호 엄마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Q&A 부모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때 생기는 일



원장님은 첫 상담을 하고 나면, 이 내담자는 어떻게 치료를 하면 되는지 머릿속에 계산이 된다고 했다. 예컨대 □+□=10이라는 정답을 만들기 위해 어떤 심리치료를 순차적으로 하면 되는지 머릿속에 떠오른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치료가 힘들 때가 있다고 했다. 바로, 환경치료가 되지 않았을 때이다.

특히 부모 잘못으로 인해 자녀가 잘못된 것임에도, 부모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매주 올 때마다 설득해도 듣지 않을뿐더러 자녀만 심리치료 받기를 원하며, 자기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 심지어는 자신도 심리공부를 했다면서 자기이론을 내세우기도 한다. 원장님은 이 부분이 가장 가슴 아프다고 했다. 부모가 무지한 탓에 상담사의 말을 듣지 않아 결국 자녀만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특히 보호자가 필요한 아동과 청소년이 그렇다.


나는 원장님에게 상담사의 말을 듣지 않아 잘못된 사례가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원장님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


“자살한 경우도 있어….” 

“자살이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원장님을 쳐다봤다. 

“상담 중간에 그런 거예요?”

“상담을 포기하고 난 다음에 그런 일이 생긴 거야.” 

“포기한 이유가 뭔데요?”

“아들한테 인격 비하를 하는 엄마가 있었어. 아들이 공무원 시험을 2년간 준비하는데, 너는 안 된다고 막 나가 죽으라고 폭언을 하는 거야. 그래서 그런 말 하면 안 된다고 했지. 아들이 자살 충동이 심하니까 하지 말라고 했어. 그런데도 멈추지를 않는 거야. 죽을 애였으면 진작 죽었다 하면서.”

“아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고요?” 

“응.”


나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원장님이 말했다.

“그래서 내담자 엄마가 도저히 고쳐지지를 않아서 상담을 포기했어. 왜냐면 환경치료가 되지 않은 채로 여러 번 상담을 해봤는데, 결국에는 다 실패로 이어졌거든. 그래서 포기를 했는데, 몇 달 있다가 내담자 엄마한테 연락이 온 거야. 자기 아들이 자살했다고 하면서.”

“그래서요?”

“상담소까지 와서 우는데… 그냥 보기 싫다고 하면서 돌려보냈지. 내가 분명 뭐라고 했냐고. 계속 그러면 아들 죽는다고 하지 않았냐고….”


원장님은 착잡한 얼굴을 했다. 그래서 지금도 가장 흔들릴 때가 환경치료가 되지 않을 때라고 했다. 억지로라도 내담자를 이끌고 가야 할지, 아니면 중단을 해야 할지 지금도 고민된다고 했다. 자신을 신뢰했던 내담자에게 원망의 소리를 들으면 원장님도 심적 타격이 커 다시 일어서기가 힘들다고 했다.

나는 설마 그런 상황까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해, 얼떨떨했다. 황급히 다른 주제로 옮겼다.


“그러면, 내담자가 원장님 말을 듣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 일도 있어요?” 

“있지.”

“어떤 경우인데요?”

“부부상담이었는데, 남편이 바람피웠다가 아내한테 들킨 거야. 그래서 아내가 남편 성기를 자르겠다고 항상 베개 밑에 가위를 두고 잤어. 남편에 대한 배신과 원망이 너무 커서. 그런데 검사지랑 상담을 해보니까 실제로 아내가 분노가 가득하더라고. 그래서 남편한테 아내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잠시 각방을 쓰라고 했거든. 그런데 남편이 내 말을 도무지 듣지 않는 거야. 자기 아내가 그럴 리가 없다고. 그러다 잠자는 도중에 아내한테 성기를 잘렸어.”

“허….”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모든 사고에는 전조증상이 있다는데, 심리상담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예고와 경고가 있었고, 원장님은 그것을 알아내 대처 방법을 알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듣지 않았고, 결국 사고가 난 뒤에 원장님에게 소식을 전했다.

나는 내담자가 상담사 말을 듣지 않은 경우가 또 있는지 묻자, 원장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모가 듣지 않는 경우는 있어도, 내담자가 듣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내담자는 고통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담소를 찾는 거라 상담사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한다고 했다. 이게 유일한 탈출구이고 희망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내담자에게 고통을 준 가족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 잘못을 지적하면 회피하고 등한시한다. 그러다 종말엔 더 큰 대가를 치르고는 어떻게 하냐며 찾아온다.

나는 원장님 말을 듣고 상담사의 말을 듣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상기했다.





※ 상담 시 주의할 점


상담사로부터 말도 안 되는 조언을 들었다가, 더 심각해져 상담소에 오는 가족과 내담자도 있다. 상담사가 내담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부도덕한 일을 시키는 경우다. 예를 들어 집 밖으로 내쫓아야 정신 차린다거나 맞아야 한다는 등 내담자에게 피해를 주고 가족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만드는 상담사다.

또 내담자의 약해진 마음을 틈타 성추행이나 성관계를 하는 상담사도 있었다. 그러니 상담사가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한다면, 이 또한 잘 판별해야 한다. 실제로 자질이 없는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고는 상처만 더 받고 심각해져서 오는 내담자도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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