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이도를 올려서, 주방으로 들어갔다

버티는 사람이 되어가는 방식은 대개 선택처럼 시작된다

by 올해의 계란

1학기 휴학을 내기 전, 나는 아빠와 주방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까지 나는 주로 홀에 있었는데, 가게 전체를 보면 부족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의 사람 쓰는 방식이나,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일의 양을 생각하면
지금 구조로는 오래 버티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 내가 다니던 학과는 요리 쪽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음식을 너무 좋아해서라기보다는
부모님이 식당을 하니까 자연스럽게 선택한 전공에 가까웠다.
어쨌든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아빠는 사람 응대나 물건 배치, 정리 정돈,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쪽에 강점이 있었다.
그래서 아빠는 홀에 있고,
내가 주방을 맡는 게 맞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선택은
게임으로 치면 난이도를 한 단계 올리는 느낌에 가까웠다.

주방 환경은 열악했고, 일의 강도도 셌다.
칼질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편도 아니었고,
손재주가 탁월하지도 않았다.
야채를 써는 일, 고기를 다루는 일조차
몸에 익히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설거지도 마찬가지였다.
가정에서 하던 설거지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그때의 나는 주인 딸이었지만,
말만 그랬을 뿐 실제로 할 줄 아는 건 거의 없었다.
용역이든, 직원이든
나를 대하는 태도에서 무시가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나 역시 일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때는 그냥 참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부터 나는
‘참는 사람’ 쪽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에게 주방 일을 배우면서
조금씩은 성장했다.
익숙해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면서
가게 안에서의 내 위치도 조금씩 달라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묘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일을 익히고 나니,
나에게만 의존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려줘야 할 것들을 미리 알려주지 않고,
내가 물어보면
“힘들까 봐”, “괜히 부담될까 봐”라는 말로 넘어갔다.
하지만 나는 이미 일을 하러 온 상태였고,
알아야 할 건 알고 싶었다.
그런 배려는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이 가게 안에서의 성장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동시에 더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방에서 배운 건 기술만이 아니라,
참는 방식과 버티는 태도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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