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에 들어간 선택이 나를 붙잡은 방식
주방에 들어가서 처음 맡았던 일은 칼질이었다.
주로 고기를 써는 일이었다.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지만,
그때는 너무 서툴러서 고기가 가루처럼 부서지곤 했다.
수육용과 국밥용은 두께도, 사이즈도 달랐는데
수육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괜히 긴장부터 됐다.
반대로 쉬운 일도 있었다.
국밥 위에 순서대로 고기를 올리는 일은
몸이 먼저 기억해서 척척 해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이 하나씩 늘어갔다.
그때는 막국수도 팔았다.
반죽을 직접 했는데,
아빠에게 인수인계를 받고 반죽을 만들기 시작했다.
일의 순서도 자연스럽게 익혔다.
급한 것부터, 중요한 것부터 처리하는 방식이었다.
아무래도 주인 딸이다 보니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가 더 빨리 주어졌던 것 같다.
야채를 다듬는 법과 보관하는 법도 배웠고,
그다음에는 설거지를 맡았다.
가정에서 하던 설거지와는 완전히 달랐다.
양도 많았고, 속도도 중요했다.
생각보다 훨씬 쉽지 않은 일이었다.
완벽하진 않았지만
그때의 나는 품목도 많았던 주방에서
엄마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이모들보다 내가 더 잘하게 된 일들이 생겼다.
각자 잘하는 부분이 하나씩은 있었지만,
나는 자연스럽게
‘웬만한 건 다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의 급한 성격과,
주방 직원들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는 방식이
그대로 나에게로 모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정말로 엄마의 마음을 덜어주고 싶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하지만 사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내가 먼저 불리는 상황이 반복됐다.
일하는 사람이 없어서 메워야 할 때라면 이해할 수 있었지만,
사람들이 다 있는데도
뻔히 나만 시키는 상황은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그럼 왜 사람을 쓰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꺼내기엔 애매했다.
가족이었고,
괜히 분위기를 흐리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가장 마찰이 적은 선택은
내가 참는 쪽이었다.
그게 쌓이면서
참는 건 성격이 아니라
습관처럼 굳어갔다.
잘하는 일이 늘어날수록
빠져나갈 수 있는 자리는 줄어들었다.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는 감각은
칭찬처럼 들리면서도
이 자리에 오래 남아야 한다는 신호 같았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이
자유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주방에서 배운 건 기술만이 아니라,
참는 방식과 버티는 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