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전, 나를 먼저 살피기 시작했다

가게를 벗어나기 전에 만든 아주 작은 여백

by 올해의 계란

나는 아직 가게를 떠나지 않았다.
여전히 출근했고,
여전히 같은 공간에 있었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아무 생각 없이 버티기만 하지는 않게 됐다는 점이다.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조금씩 개인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취미를 가질 여유도,
가질 생각도 없었다.
일이 끝나면 지쳐 있었고,
쉬는 시간마저 다음 날을 버티기 위한 준비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고등학생 때 배웠던 미술이 떠올랐다.
직업으로 삼기에는 너무 멀어졌지만
취미로는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했다.
대단한 결심은 아니었다.


그 시간만큼은
그림에만 집중했다.
손을 움직이는 동안에는
잡생각이 들지 않았다.
마음이 정리된다기보다는,
잠시 멈춰 서는 느낌에 가까웠다.


심신안정이라는 말이
그때는 꽤 정확하게 느껴졌다.

돈을 따로 관리해 보려는 시도도 했다.
ETF나 소액 저축 같은 것들.
하지만 당장의 생활비조차 빠듯해서
중도에 포기한 적이 더 많았다.
그래도 ‘해보려 했다’는 기억은 남았다.


예전에는
맛집이나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기록하곤 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겪은 삶도 한 번 써보면 어떨까 싶었다.
그렇게 브런치를 시작했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가족 경영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가족이어서 좋은 점도 있고,
가족이기 때문에 생기는 트러블도 있다.
나 역시 그 안에서 살아오고 있었다.


글을 쓰기 전에는
내 인생이 별로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인 자존감이 무너지니
다른 것들도 함께 낮아지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막상 써보니
생각보다 다양한 경험을 해왔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아직 나는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전과 똑같은 상태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도 아니다.
이건 탈출이라기보다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시작한 준비였다.

준비는, 언제나 가장 조용한 변화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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