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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쁜파크 Sep 11. 2024

다시 찾은 역삼역

15년 만에 역삼역으로 갔다. 첫째 출산 예정일이 한 달 남은 시점까지 역삼역으로 출근했고, 뱃속 아이가 중2로 자란 지금까지 전업 주부로 지냈다. 그런 내가 역삼역을 다시 찾게 되다니.


목적지는 역삼역 3번 출구에 위치한 네이버 스퀘어!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서둘러 지하철을 탔다. 꽉 끼는 출근길 지하철이 무척 오랜만이다. 인파에 떠밀려 내리고 타고를 반복하다 발이 밟힐 뻔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 있자니 나도 한때 젊은이로 출근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샌들 신고 출근하다 엄지발가락이 밟혀 시퍼렇게 멍들었던 기억은 여전히 아찔했다.  


역삼역 4번 출구로 먼저 나왔다. 옛 회사 빌딩이 무엇보다 궁금했다. 50미터 걸어가다 보니 회사 옆 약국도, 빌딩 사이 골목도 그대로다. 골목에 흡연자들이 모여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고, 그 뒤로 낯익은 세븐 일레븐 편의점이 보였다. 지금은 회사가 종로로 이전하여 옛 동료들을 만날 수 없는데도 출근길을 걸으며 왜 이리 설레던지. 한 바퀴 삥 둘러보고 회사 동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나 역삼역이야!"

아들 둘을 낳고 워킹맘으로 20년 가까이 회사에서 근무 중인 친구는 골목길 식당과 술집을 궁금해했다. 역시, 내 친구다. 우리도 그때는 자유로이 먹고 마셨지.


네이버 스퀘어는 21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팟캣 녹음 전, 21층에서 테헤란로를 내려다보니 높게 늘어선 빌딩들이 새롭다. <걸리버 여행기>를 읽고 팟캣 녹음 하는 날이었는데, 사람들 사이에서 발이 밟히지 않도록 피하고 높은 빌딩을 구경하는 나의 모습이 거인국에 온 걸리버 같다. 빌딩 숲 한가운데 있는 40대 전업주부는 혼자 도태된 것 마냥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한 달 후, <피터팬> 팟캣 녹음을 하기 위해 다시 역삼역을 찾았다. 빌딩 1층 카페에 앉아 일행을 기다렸다. 바삐 출근하는 사람들 사이로 낯설게 눈에 익은 사람이 보인다. 누구더라. 아, 팟캣 녹음할 때 스튜디오에서 마이크 거리와 음량을 조절해 주며 친절히 안내해 주던 직원이었다. 누군가 출근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40대 주부는 여유로이 카페에 있었다.  


<피터팬>에서 웬디는 네버랜드에 있는 아이들에게 엄마가 되어 주려고 피터팬과 집을 나섰다. 네버랜드에 도착하여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들을 보살폈다. 작가 '제임스 매튜 베리'는 엄마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다. 7살 때, 12살이던 형 데이비드가 아이스 스케이트를 타다 죽자 심한 충격을 받았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오랫동안 죽은 형의 옷을 입고 형 흉내를 내며 살았다. 성인이 된 그는 켄싱턴 공원에서 만난 데이비스 부부가 죽자 고아가 된 다섯 형제를 입양하여 키웠고, 아이들 중 피터와 마이클의 이름을 <피터팬> 작품에 사용했다.  


엄마가 없는 아이들을 돌보는 작품 속 웬디와 이웃 아이들을 입양하여 돌 본 작품 밖 작가의 이야기는 '엄마'라는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같은 역삼역이지만, 엄마가 되기 전과 엄마가 된 후의 역삼역은 달랐다. 정신없이 일하던 사회 초년생이던 나는 평일 근무 시간에 카페에 모여 있는 아줌마들을 보며 놀랐었다. 이 시간에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 수 있다니. 무척 편해 보였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는 몰랐다. 출산의 고통, 출산 후 잠 못 자고 24시간 동안 규칙이라고는 없던 생활, 아이가 점점 크면서 몸이 자유로워지는 만큼 무거워지는 마음을, 그땐 알 수 없었다. 그날 아침 카페에 앉아 있던 나도 누군가에겐 편해 보이는 아줌마였을까?


다시 한 달 후, <오만과 편견>을 읽고 팟캣 녹음을 했다. 지금보다 여성 활동에 훨씬 제약이 많은 1700년대 후반 영국 모습에 빠져 읽었다. 역사서나 인문서를 쓰는 작가가 인정받던 시기에 소설로 일상을 묘사한 '제인 오스틴'의 집안 구석구석 세세함은 주부인 내게 매력적이었다.  


소설에는 인간 정신의 가장 위대한 힘이 표현됩니다. 인간 본성에 대한 가장 완벽한 인식, 인간 본성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가장 행복한 묘사, 재치와 유머의 가장 활력 있는 토로가 최고로 정제된 언어로 세상에 전달되는 것입니다.

제인 오스틴이 <노생거 수도원> 서문에 쓴 '소설론'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오만과 편견> 속 등장인물을 통해 보니 주인공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성장만 눈에 들어 오는 것이 아니다. 교양이라곤 없는 속물 같던 베넷부인도, 어린 딸들을 방치하여 집안의 위기를 맞게 된 베냇씨의 행동도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각자의 작은 성장을 보게 됐다.


주부가 되어 보니 20대에 바라봤던 아줌마에 대한 착각이 나의 오만과 편견이었음을 알겠다. 이제는 빌딩 숲 대신 아파트 숲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엄마로서 활력 있는 일상을 위해 이 순간을 살뜰히 보내고 싶어 진다. 인간 본성의 주 무대가 되는 가정을 지키는 주부이기에 이 또한 값지다.


한 달 후, 다시 역삼역을 방문할 계획이다. 그때는 어떤 성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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