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는 내게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다.
1999년 처음으로 미국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 산호세, 샌프란시스코 출장을 자주 다녔다. 이십 년 넘게 근무했던 회사 본사가 산호세에 있어서 수십 번은 갔던 것 같다. 그래서 이곳에서 동료들과 보낸 즐거운 추억들이 아주 많다.
나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결혼을 해서 스물다섯에 애 엄마가 되었다. 비교적 일찍 결혼해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항상 시간에 쫓겼고 회사 동료들과 친분을 쌓지 못했다.
어느덧 삼십 대 중반이 되고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나를 위한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니 친구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학창 시절 친구들은 연락이 끊긴 지 오래였고 멋진 싱글 라이프를 즐기고 있는 회사 동료들과 어울리기에는 워킹맘인 나의 생활 패턴이 너무 달랐다.
외롭게 회사 생활을 하던 중 샌프란시스코 출장을 가게 되었다. 교육이 끝난 후 샌프란시스코 본사에 근무하는 동료가 생각나 전화를 했더니 반갑게 맞아주었다. 다음에 출장을 오면 호텔을 예약하지 말고 자기 집에서 지내라고 했다.
이 날부터 나는 동료였던 그녀와 친구가 되었고 매일 저녁을 같이 먹으며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교육이 끝나면 그녀의 집으로 가서 그녀 가족들과 식사를 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그녀의 집은 언제나 북적였는데 어떤 날은 미국인 친구들로 어떤 날은 한국인 친구들로 가득했다. 친구 덕분에 출장 온 지 일주일 만에 산호세에 사는 한국인, 미국인 친구들을 여럿 사귀게 되었고 매번 산호세 출장을 갈 때마다 그들을 만나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미국에 친구가 생긴 이후에는 더 이상 출장이 외롭지 않았다. 마치 휴가를 가는 기분으로 출장길에 올랐다. 사실 서울에서는 육아 때문에 저녁에 친구를 만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출장을 가면 자유롭게 친구들을 만날 수 있으니 너무 좋았다. 이렇게 십여 년 출장을 다니다 보니 어느새 한국에 있는 친구들보다 미국에 있는 친구들과 보낸 시간이 더 많아졌고 보낸 시간만큼 쌓인 우정도 깊어져 갔다. 샌프란시스코는 그렇게 소중한 친구들과의 즐거운 추억들이 쌓여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도시이다.
코로나 이후로 일 년에 한두 번씩 가던 출장을 가지 못하니 향수병이 도지곤 한다. 샌프란시스코가 그립고 그곳의 친구들이 보고 싶을 때면 타르틴 베이커리로 간다.
타르틴 베이커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아티잔 베이커리로 2018년에 서울에도 지점을 오픈하였다. 이곳의 초콜릿 크루아상은 죽기 전에 꼭 맛보아야 하는 빵이라고 하던데 크루아상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타르틴의 바나나 크림 타르트를 좋아한다.
타르틴 베이커리에 처음 가면 바나나 크림 타르트를 먹어보기를 추천한다. 나는 우울할 때 바나나 크림 타르트를 먹는데 바나나의 기분 좋은 단맛, 달콤한 크림과 쌉싸름한 초콜릿이 기막히게 어우러지면서 상처받은 나를 위로해 주고 우울함을 싹 씻어주기 때문이다. 타르트 안에 바나나와 크림이 들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타르트지가 과자처럼 바삭바삭한 것도 신기하다. 타르트지 안쪽이 초콜릿으로 코팅이 되어 있어서 크림이 스며들지 않도록 되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사표를 냈으니 샌프란시스코 출장은 가지 못하겠지만 향수병은 두렵지 않다. 샌프란시스코가 그리워지면 타르틴에 가서 커피 한잔과 좋아하는 빵을 사서 친구들과 화상 통화를 하면 된다. 친구들과 까르르 웃으며 수다를 떨다 보면 우울함도 향수병도 다 날아가 버릴 테니까.
맛있는 음식은 우리의 마음을 치유해 준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힘들고 우울할 때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음식으로부터 따뜻한 위로를 받곤 했다. 엄마의 김치볶음밥, 동네 단골집의 투박한 파스타, 회사 앞 분식집의 따끈한 우동, 그리고 타르틴 베이커리의 바나나 크림 타르트...
힘들 때마다 나를 위로해 준 수많은 음식들이 있었기에 힘겨운 직장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이번 주에도 한두 번 위기가 있었는데 바나나 크림 타르트로부터 위로를 받고 잘 넘겼다. 이제 겨우 몇 주 남은 직장 생활, 더 이상 화내지 말고 더 이상 열받지 말고 잘 마무리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