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 대의 풋풋한 열정이 그리울 때 : 강남역 하나우동

by 아르페지오

어제 볼 일이 있어서 오랜만에 강남역에 다녀왔다. 예전 사무실 건물이 있던 곳이라 손바닥처럼 훤했던 지역인데 오랜만에 갔더니 모든 곳이 생소했다. 업무를 처리한 후 혼자 점심을 먹어야 해서 식당을 찾아다니다가 갑자기 하나우동이 생각났다.


하나우동은 이십 년 전 강남역 근처에 근무할 때부터 자주 가던 식당으로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돈가스, 우동, 볶음밥 등을 파는 분식집이다.

사무실 가까이에 있어서 일주일에 한두 번은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고 가끔씩 동료들과 저녁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인생 이야기도 했던 곳이다. 음식이 그리 특별하진 않았는데 편안한 분위기와 친근함 때문에 좋아하던 식당이라 사무실이 이전한 이후에도 가끔씩 들리곤 했다.


오랜만에 강남역에 갔더니 나의 삼십 대 시절의 애환을 모두 담고 있는 추억의 장소가 그대로 있을지 궁금했다. 주저 없이 하나우동이 있던 자리로 향했고 반가운 간판이 눈에 띄었다.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점심시간에는 기다려야 했던 곳인데 12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도 빈자리가 많이 있었다. 얼른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돈가스 우동을 주문했다. 돈가스 우동은 양이 적은 내게는 버거운 메뉴였지만 돈가스도 포기할 수 없고 우동도 포기할 수 없어서 예전부터 자주 먹었다. 금방 푸짐한 돈가스와 미니 우동이 나왔다. 예전 그대로의 모습에 흥분해서 돈가스 한 개를 포크에 찍어 입에 넣었다. 겉모습처럼 맛도 그대로였다. 삼십 대의 나는 절반도 못 먹었던 것 같은데 먹다 보니 그릇 바닥이 보였다. 정식 하나를 다 먹지 못하던 왜소했던 내가 먹성 좋은 중년의 아줌마가 된 것이 서글퍼져서 음식을 조금 남기고 일어섰다. 계산을 하고 식당에서 나온 후 정겨운 간판을 보면서 한참 동안 옛 추억에 잠겼다.

강남역 하나우동

2~3 년 주기로 싹 바뀌어 버리는 강남 한 복판에서 이렇게 이십 년 넘게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식당이 참 고마웠다. 삼십 대 초반 직장생활의 고됨과 애환, 그리고 열정이 생생하게 기억나서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십 년 전 나와 함께 열정을 불태웠던 동료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떠났고 나만 여전히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한 회사에서 이십 년 넘게 일하고 있다는 것이 과연 축복인지 혼란스러웠다.


이십 년 넘게 한결같은 모습으로 같은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식당을 보면서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과연 초심을 잃지 않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이십여 년의 세월을 버텨낸 걸까?


최근 방황하던 나의 모습이 생각나서 머쓱해진다.

20주년이라는 숫자에 집착하지 말고 조금 더 일찍 떠나야 했던 것은 아닌지, 마지막 몇 년을 힘들게 버티면서 후배들에게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 건 아닌지 마음이 무겁다.

목련꽃처럼 지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름답게 퇴사하려고 했는데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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