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클래식 기타를 시작했다. 십 대의 나는 록 음악에 빠져있었고 특히 Led Zeplin의 Stairway to Heaven에 매료되어 기타리스트를 꿈꾸고 있었다. 그러나 80년대에는 유튜브와 같이 독학을 할 수 있는 플랫폼도 없었고 중학생이 전자 기타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기 힘들었다. 게다가 요즘엔 쉽게 구할 수 있는 악보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고민하다가 동네 상가에 있는 클래식 기타 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같은 기타이니 배우다 보면 도움이 되겠지 하는 생각에 무작정 찾아 간 학원에는 서너 명 남짓한 수강생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무작정 시작한 클래식 기타가 너무 재미있었다.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배울 때는 연습도 안 하고 레슨을 빠지려고 도망 다니기도 했는데 기타는 손가락 마디에 껍질이 벗겨지고 또 벗겨지고 굳은살이 박일 정도로 쳐도 재미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몇 년이 흘렀고 고등학교 2학년쯤 카르카시 교본 끝자락에 있는 타레가의 알함브라의 회상이라는 곡에 도전하게 되었다.
처음 선생님이 이 곡을 연주하는 것을 들었을 때 여섯 줄의 현으로 이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4 손가락이 균일하게 지속적으로 현을 튕기는 트레몰로 선율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 곡을 치고 또 치면서 밤을 지새우곤 했지만 트레몰로라는 주법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대충 흉내는 낼 수 있었는데 선생님의 소리와 같이 균일하게 아름다운 소리는 나지 않았다. 3년 동안 기타를 배우며 카르카시 교본을 다 끝냈고 다른 곡들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는데 유독 이 곡은 성에 차질 않았다. 두 번째 손가락이 내는 소리가 네 번째 손가락이 내는 소리보다 튀거나 속도가 균일하지 않거나 자꾸만 무언가가 어긋났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고3이 되어 있었고 공부는 안 하고 기타만 치는 내게 아무 말씀도 안 하시던 부모님께서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하니 고3 일 년은 공부를 해야 하지 않냐고 하셨다. 사춘기의 철없는 나는 기타를 전공해서 스페인 왕립학교로 유학을 가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는데 알함브라에 추억에서 이 꿈이 꺾여버린 때였다. 아무리 연습해도 선생님처럼 되지 않았고 나에게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정신 차리고 보니 고3이 되어 있었다. 스페인 왕립 학교는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그 시절에는 고3 일 년만 열심히 공부를 해도 대학을 가는 것이 가능했던 시절이었기에 일 년을 치열하게 공부해서 부모님이 바라는 대학에 진학을 했다. 그리고 대학에 가자마자 클래식 기타 동아리에 가입했다. 나와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것에 놀랐고 정말 신날 줄 알았는데 기타 동아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이십 명이 넘는 선배들은 거의 대부분 대학에 와서 처음으로 클래식 기타를 배운 사람들이었고 이미 기타를 3년 넘게 배운 나와는 실력 차이가 많이 났다. 그런데 신입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공연에서 단순한 멜로디 파트만 연주해야 했다. 여름 방학 내내 하루에 몇 시간씩 기타를 처음 배우는 동기들과 단조로운 멜로디를 수백 번씩 연습해야 했다. 첫 번째 공연을 마친 후 나는 클래식 기타 동아리를 그만뒀다. 그렇게 재미있던 기타가 갑자기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러고 나서 어쩌다 보니 기타를 잊고 살았다. 대학을 졸업했고 대학원도 졸업했고 취업을 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다 보니 기타를 다시 칠 여유가 없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꼭 다시 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의 십 대를 함께 한 기타를 소중하게 간직하며 살았다.
그렇게 삼십여 년의 세월이 지났고 아이를 대학에 보내고 나니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다. 남편은 골프도 치고 친구들도 만나며 바쁘게 지내는데 직장 다니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친구들과 연락도 다 끊긴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다. 그러다 방구석에 있는 기타를 다시 꺼내 들었다.
좋은 기타 줄을 사다 끼워주니 삼십 년이 넘었는데도 소리가 괜찮았다. 그 길에 바로 서점에 가서 카르카시 교본을 사 왔다. 기억이 나는 쉬운 곡들부터 하나씩 쳐 봤는데 신기하게도 손가락이 아프지 않았다.
처음 기타를 시작할 때는 현을 누르는 완손 손가락 끝부분이 너무 아파서 껍질이 여러 번 벗겨진 후 굳은살이 박인 후에야 제대로 연주를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삼십 년 넘게 손을 대지 않았는데 손가락이 음을 기억하고 있고 이만큼 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놀랍고 고마웠다.
그래서 요즘 기타를 다시 친다. 세상이 좋아져서 유튜브 영상도 많고 악보도 쉽게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혼자서 이것저것 찾아보며 기타를 연습한다.
매일 서너 시간 넘게 연습하던 예전의 열정은 찾을 수 없지만(이젠 체력이 안된다.^^) 음악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싶을 때마다 기타를 꺼내서 이 곡 저 곡을 튕겨본다.
우리 부모님은 아무것도 강요하신 적은 없는데 악기나 미술은 배워놓으면 좋다고 하셔서 나는 피아노를, 동생은 미술을 꽤 오랫동안 배웠다. 어릴 때는 피아노 학원에 가는 것이 너무 지겨웠는데 성인이 되고 나니 피아노를 칠 수 있고 기타를 칠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하다.
나이가 들수록 외롭고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난 피아노를 치거나 기타를 연주한다. 한 시간쯤 혼자 방에 처박혀서 이곡 저곡 치다 보면 어느덧 마음이 가라앉고 치유가 된다.
어려운 문제에 막히면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해답을 찾았다는 아인슈타인처럼 나도 나를 위해 피아노를 치고 기타를 연주한다. 매일 꾸준히 연습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곡도 제대로 완주할 수 있는 곡은 없지만 그래도 이렇게 나를 치유할 수 있는 기타와 피아노가 있어서 참 좋다.
대한민국의 치열한 입시에 치여서 아들에겐 악기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이 많이 아쉽다. 아들이 살아갈 세상은 내가 살아온 세상보다 더 힘겨울 텐데 악기를 하나 배우게 해 줄 것 그랬다.
몇 달 있으면 제대할 아들에게 악기를 한번 배워보라고 권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