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소위 부자들이 모여 산다는 동네들이 있다. 그런 동네는 서울에서 땅값이 제일 비싼 곳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연예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고 불리기도 한다. 평소에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런 장소들과 멀찍이 떨어져서 지내는데 어쩌다가 그런 동네를 지나치게 되면 그곳의 모든 것이 다 부러워진다.
산책하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도 왠지 우아해 보이고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도 한번 더 쳐다보게 된다. 마치 그들과 나는 다른 세상의 사람인 것처럼, 오면 안 되는 장소에 온 것처럼 자격지심까지 느낀다.
돈이 얼마나 있으면 이런 동네에 살 수 있을까, 그들은 무얼 먹고살까, 나와는 완전 다른 삶을 살고 있겠지 등등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습관처럼 들어가는 곳이 있다.
그곳은 바로 부자동네 슈퍼이다.
평소에 먹고사는 것에 관심이 많으니 부자들은 무엇을 먹고 사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평범하지 않은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기도 하다.
의리의리한 건물 외관에 잔뜩 주눅이 들어 슈퍼 안으로 들어가 보면 그들의 삶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들만 먹는 특별한 채소나 과일이 있을 거라는 예상을 깨고 매일 우리 가족이 먹는 채소와 과일들, 그리고 비슷한 식재료들로 채워져 있다.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우리 동네 슈퍼에서 한 번에 구하기 어려운 것들이 한 곳에 다 모여있다는 것이랄까.
예를 들면 맥주 애호가인 우리 남편은 좋아하는 맥주를 사러 A 편의점과 B 슈퍼를 들린다. 좋아하는 맥주 중에 일부는 A 편의점에만 있고 나머지는 B 슈퍼에서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동네 슈퍼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모든 종류의 맥주가 다 구비되어 있었다. 물론 우리가 발품을 팔아서 사는 것보다 가격은 조금 비쌌지만 입주민들이 선호하는 맥주를 한 곳에 다 갖추어 놓은 것이다. 맥주를 예로 들었지만 다른 식재로도 비슷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주민들이 선호하는 식품 위주로 캠팩트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군더더기 없이 필요한 것들로 꽉 채워진 느낌이었다.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해서 쓸데없는 구경을 하다가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욕심이 별로 없는 편인데도 좋은 동네에 가면 이런 곳에 한번 살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좋은 동네에 산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대한민국 상위 1%에 속한 뿌듯함, 성공한 사람이 된 느낌? 내가 열심히 노력했다면, 겨우 25년 만에 직장을 그만두지 않았더라면 우리 가족도 이런 곳에 살 수 있었을까? 그랬더라면 나는 행복했을까?
대한민국 사람들은 유독 남들과 비교를 많이 한다. 땅덩어리가 좁아서 그런 것인지, 인터넷 환경이 너무 좋아서 남들 사는 것이 다 보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 나 또한 이런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렸을 때는 친구 또는 형제들과 비교를 하기 일쑤였고 크고 나서는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를 하며 더 나은 삶을 쟁취하려 애썼다.
그러나 항상 누군가가 내 앞에 있었고 도무지 만족을 할 수 없었다. 남들보다 조금 앞섰다고 우쭐해질 때면 우연히 SNS에서 본 호화스러운 연예인들의 삶이 날 기죽였다.
마흔 즈음에 깨달았던 것 같다. 그곳은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오르지 못할 곳이라는 것을.
어느새 나이 오십이 훌쩍 넘었고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 생각했는데 여전히 부자 동네에 가면 그들이 부럽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그들의 삶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음료수를 마신다. 그리고 같은 하늘아래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아간다.
어릴 때의 경험으로 아등바등 노력해서 이너 서클에 들어가더라도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겨우 커트라인을 통과해서 서클 안으로 비집고 들어간다 해도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없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은 8 학군을 고집하여 강남 한복판에 터전을 잡았고 나는 유년 시절 내내 결핍을 느끼며 자랐다.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부자들의 사는 모습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름답고 화려한 동네에서 행복한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들을 더 많이 보았다. 겉모습만 보고는 사람들이 행복한지 불행한지 알 수 없다는 것도 일찍이 깨달았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았던 어떤 이들은 모든 것이 적당히 부족한 우리 가족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다 아는 것들을 잊고 잠시 방황했다.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을 동경하고 남들과 나를 비교하기 시작하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쓸데없는 비교를 멈추고 나의 삶에 집중해야겠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가 가진 것도 생각보다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