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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May 19. 2024

관계에 대한 서툶

생각해 보니 어릴 때부터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서툴렀다.


마음에 드는 친구가 있어도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전전긍긍하며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그래서 항상 나의 친구들은 내게 먼저 다가오는 적극적인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은 인기가 많아서 상대적으로 나와 둘이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 일주일에 서너 번 만나는 단짝 친구가 며칠 동안 연락을 하지 않으면 내가 그녀에게 잘못한 것이 있는지, 그래서 그녀가 나를 싫어하게 된 것은 아닌지 별별 상상을 하면서 주말을 보냈다. 우울한 주말을 보내고 학교에 갔는데 아무 일 없는  나를 반겨주단짝 얼굴을 보면 안도감과 서운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괜찮은 척했지만 내게 그녀가 소중한 만큼 나는 그녀에게 소중하지 않다는 서운함이 마음 한편 남아있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단짝이었던 친구와 같은 대학교에 진학했다. 술을 먹고 나서 용기를 내서 친구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았다. 내가 뭐라고 했는지 전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친구가 나를 꼭 안아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친구는 아직까지도 나의 단짝다. 사는 곳이 멀어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힘든 일이 있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고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달려가서 만날 수 있는 그런 친구이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려워하니 직장 생활에서는 친구를 거의 사귀지 못했다.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만나기선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워킹맘이라 친구를 사귈 시간이나 여유도 없었다. 그래서 25년의 직장생활에서 사귄 친구는 겨우 다섯이다.


은퇴 날짜를 정하고 직장생활을 버터 내던 때에 인생 친구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마음을 퍼줬다. 그들도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았고 서로 잘 통해서 자주 어울렸다. 생일, 기념일, 화시일을 핑계로 저녁을 먹거나 와인 한 잔을 다. 은퇴를 하면서 그들도 나의 친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은퇴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자 그들과의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안부를 묻는 나의 문자에 아무런 답이 없는 카톡창을 보다가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상처받기를 두려워하는 내 성격은 어린 시절에서 비롯되었다. 나의 어머니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현모양처였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학교에 오면 친구들이 엄마가 너무 예쁘다고 난리였다. 미모의 엄마는 요리 솜씨까지 좋아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9첩 반상 도시락을 싸주셨다. 그런 완벽한 엄마 밑에서 아무 부족함 없이 자란 나는 애정결핍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엄마는 무엇 때문인지 감정이 메말라있었다. 남편은 물론, 자식들에게도 사랑을 표현하는 법이 없었고 딸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일이 없었다 칭찬보다는 매몰찬 비판을 쏟아내는 것이 엄마의 특기다.  엄마의 칭찬을 한번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딸은 엄마가 좋아하는 것은 뭐든지 했다. 피아노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엄마의 어릴 적 소원을 대신 이루어주려고 5년 넘게 피아노를 배웠다. 엄마 친구들 앞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비틀스 곡을 멋지게 치면 엄마의 다정한 눈길을 한번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환하게 웃는 엄마 얼굴을 보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했다. 어쩌다 1등을 놓치면 엄마의 매몰찬 핀잔을 마주해야 했지만 다음번에는 엄마의 환한 웃음을 보겠다며 다시 열심히 공부했다.


그런데 사춘기가 오면서 엄마에 대한 이유 모를 반항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던 착한 딸은 전교 10등까지 밀려났다. 그래도 공부에 끈을 아예 놓치는 않았기에 대충 부모님 기대에 맞는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재수를 하고 싶었지만 엄마가 원하지 않았기에 엄마의 모교에 원서를 냈고 무난하게 합격했다. 재수는 절대 안 된다는 부모님 의견에 따른 하향지원이었으니 떨어질 리가 없었다. 그러나 내가 선택하지 않은 대학에서의 시간은 그다지 행복하지도 그다지 불행하지도 않았다.


세월이 흘러 오십이 넘어서 내 안의 어린아이를 제대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가 사춘기를 유독 심하게 앓았단 이유는 아무리 노력해도 충분한 사랑을 주지 않았던 엄마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나의 우상이었고 모든 것이었던 엄마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해서 다른 사람에게서 애정을 갈구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엄마로부터 받은 수많은 상처는 다른 사람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하도록 했다. 거절당하고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 아무 관계선뜻 시작하지 못했다.


 자신을 제대로 알고 나니 내가 왜 그렇게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려워했는지, 사람들로부터 쉽게 상처를 받았는지 알게 되었다.


내겐 지금 소중한 친구들이 있다. 그들만 있어도 내 인생은 충분히 풍요로운데 괜히 욕심을 부렸던 것 같다. 그러니 이젠 서툰 관계를 더 이상 만들려 하지 말아야겠다. 앞으로의 내 인생은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보다 기존의 관계를 더 풍요롭게 하는 것으로 채워가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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