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르페지오 Dec 07. 2022

누구에게나 적절한 소비는 필요하다

은퇴한 후에 새롭게 발견한 것들이 많은데 가장 커다란 발견은 나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 스트레스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직장생활은 하는 동안 내 본연의 모습이 가려져 있었던 듯하다. 이러한 새로운 발견은 가끔 당혹스럽기도 한데 내가 소비지향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정체성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동료들은 명품백 하나 없고 물욕이 없는 내가 이상하다고 했다. 돈을 벌어서 대체 어디에 쓰는지, 무슨 재미로 사는지 대놓고 물어보는 동료도 있었다. 무례하게까지 느껴졌던 그녀의 질문에 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고 상처를 받았다. 아무리 기억을 짜내어보아도 나를 위해 돈을 쓴 기억이 없었다.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에 더 외롭고 힘들었다. 명품백도 사고 명품 옷도 사고 비싼 것들을 사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는데 도무지 쇼핑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회사 생활만으로도 너무 지치고 힘든데 무언가를 사는 행위는 또 다른 스트레스였다. 백화점에 가는 것도, 마트에 가는 것도 싫어서 모든 구매는 엄마에게, 남편에게 부탁했다. 바쁜데 생필품을 사야 하고,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 옷을 사는 것이 버거워서 한 번에 똑같은 것을 두세 개씩 사놓았다. 치약, 샴푸, 옷 등을 같은 것으로 여러 개 사놓고 사용했다. SNS에서  년 전 오늘이라고 알려 준 사진을 보다가 내가 십 년 전에도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는 것을 보고서야 색이 바랜 정장을 겨우 버릴 정도였다.

 

파인 다이닝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고가의 제품을 사봐도 기분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수많은 식당, 수많은 상품 중에서 무언가를 하나 골라야 한다는 압박이 나를 더 괴롭혔다. 돈을 쓰면 왜 스트레스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소비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단정 지었다. 남부럽지 않은 연봉을 받았지만 내가 번 돈은 부모님을 위해, 자식을 위해서만 쓰였다. 나를 위해 쓰는 돈은 가끔 남편과 함께 가는 여행, 친구들을 만날 때 쓰는 용돈 정도였다.


은퇴 계획을 세울 때 나를 위한 소비는 최소한으로 잡았다. 매달 엄마에게 드리는 용돈, 정기적으로 나가는 보험료 등을 계산한 후 내 용돈은 최소한의 금액으로 책정했다. 최근 몇 년간 내가 쓴 돈을 평균 내어서 책정한 금액이었기에 절대 모자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은퇴하고 나니 사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졌다. 백화점을 다니다가 예쁜 옷을 봐도 사고 싶고 우산꽃이, 구둣주걱 같은 들도 예쁜 것으로  바꾸다. 처음에는 은퇴 직후의 일시적인 현상이라 생각했다. 돈을 벌지 못하니 괜히 돈을 쓰고 싶은 거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이다. 그런데 은퇴 후 일 년이 지나도록 이놈의 물욕이 사그라들지 않는 것을 보니 내가 소비지향적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다.

 

그제야 알았다. 그동안은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정장을 하나 사서 십 년 넘게 입으면서도 같은 옷을 그렇게 오래 입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날이 추워져서 코트를 꺼내 입으면서도 코트의 색깔이 바랜 것을 알지 못했다. 오래된 구둣주걱이 닳아서 발뒤꿈치를 아프게 하는 것조차 알아챌 여유가 없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주변의 것들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은퇴를 하고 나니 낡아서 못쓰게 되거나 부서진 후에야 억지로 샀던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구두 주걱도 예쁜 것으로 바꾸고 싶고 너무 오래 써서 바닥에 납작하게 붙어버린 매트도 새로 하나 장만하고 싶다. 쇼핑에 눈을 뜨고 나니 집 안 곳곳에 장만해야 할 것들이 잔뜩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나에게는 돈이 없다.       

 

생각해 보니 너무 억울하다. 이제야 겨우 쇼핑의 즐거움에 눈을 떴는데 나를 위해 쓸 돈이 없다니. 이십오 년 동안 뼈 빠지게 일해서 돈을 벌었는데, 이제야 겨우 내가 사고 싶은 것들이 생겼는 돈이 없다니 억울하고 또 억울하다.


하지만 어쩌랴. 계획이라는 것이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엑셀을 열어서 자금 계획을 수정해야겠다. 아무래도 나를 위한 소비를 조금 더 올려주어야겠다.  


그나저나 지금 이 순간에도 며칠 전에 백화점에서 본 크리스마스 장식 하나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오십이 되어서야 새롭게 발견한 내 모습에 매일매일 당황하는 중이다.

나를 너무 특별한 사람으로 규정하지 말고 적절한 용돈을 할당해 줄 걸 그랬나 보다. 생각해 보니 매달 엄마께 드리는 용돈의 절반도 안 되는 금액으로 살겠다고 계획했던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었다.


누구에게나 적절한 소비는 필요하다. 걱정은 나중에 하고 사고 싶은 것도 사고 먹고 싶은 것도 먹으면서 살아보련다.  




매일 산책 다니던 공원에서 남천 나무라는 식물을 발견하였다. 겨울에 빨간 열매를 맺는 이 예쁜 나무를 그동안 전혀 보지 못했는데 올해 겨울에 처음으로 발견하게 되었다. 우중충한 겨울에 빨간 열매로 예쁜 풍경을 선사해 주는 남천나무가 참 고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