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이 회사를 다닌 지 만 19년이 되는 날이었다.
언젠가부터 입사 기념일이 되면 이상하게 우울하다. 한 회사를 너무 오래 다녔다는 것이 그리 자랑스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랜 세월을 버터 낸 것이 뿌듯하기도 하다. 어제도 이렇게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다.
19년을 뒤돌아보면 행복한 날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날도 있었다. 매일매일 퇴사를 꿈꾸며 내년 입사 기념일까지만 버터 보자고 다짐을 한지 벌써 몇 년이 지난 것 같다. 그래서 입사 기념일이 되면 우울해진다. 올해에도 퇴사를 못하고 입사 기념일을 맞이했구나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스스로 은퇴 시기를 정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내 한 몸만 생각한다면 쉽게 그만둘 수 있지만 일흔이 넘으신 부모님까지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오래 회사를 다녀야 한다. 손주를 키워주시느라 해외여행도 한번 제대로 못 해보신 엄마 호강도 시켜드리고 싶으니 돈은 많이 벌면 벌수록 좋다.
그런데 현실은 참 녹녹지 않다. 말도 안 되는 것들로 사람을 괴롭히는 동료들, 바빠 죽겠는데 쓸데없는 일만 골라서 시키는 상사, 모든 일정이 고객 우선순위로 결정되어서 아무것 하나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프리세일즈의 삶은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이제 그 기나 긴 여정을 끝내고 싶다. 내가 나의 하루 일정을 결정하고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사표를 내지 못했고 세 번째 회사에서 20년 차 직원이 되었다.
직장을 20년 넘게 다니고 나서야 돌아가신 아버지가 얼마나 힘드셨을지 짐작하게 되었다. 집에 오시면 맨날 술만 드시던 모습이 정말 싫었는데 한 직장을 30여 년 넘게 다니시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아버지의 삶이 그리 녹녹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가족을 위해 이 모든 것들을 참으며 어딘가에서 고전 분투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가장들을 응원하며 조금 더 힘을 내서 입사 20주년 기념일까지 버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