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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Nov 15. 2023

진심은 통한다

얼마 전에 동네에 작은 카페가 하나 문을 열었다.


우리 동네는  큰 아파트 단지이고 단지 내 상가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동네이다. 상가 중에 가장 많은 업종이 카페이고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부터 10년 전통을 자랑하는 드립 커피 전문점까지 카페가 오밀조밀 밀집되어 다. 이런 동네에서 카페를 오픈하다니 괜한 걱정을 하면서 오지랖을 떨었다.

 

카페가 너무 작아서 앉을 공간이 부족한 것 같은데,  커피 가격도 주변에 비해 너무 비싼 것 같은데, 작은 카페에서 베이커리까지 직접 하는 건 인건비도 못 건질 것 같은데 등등 걱정을 한 보따리 늘어놓았다.


그러나 칙칙하고 오래된 상가들 에 들어 선 환하고 예쁜 카페는 동네 주민들을 자석처럼 끌어들였다. 날씨가 유독 좋았던 어느 날 홀린 듯이 카페에 들어갔는데 나와 비슷한 이들이 많아서 놀랐다.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다가 갓 구운 피낭시에 냄새에 홀려 디저트까지 추가한 후 이곳은 나의 단골 카페가 되었다.


그저 스쳐 지나갈 동네 카페라 생각했는데 커피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고 피낭시에서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카페가 문을 연지 서너 달 때쯤 지나자 자리가 없어서 테이크아웃을 해야 할 정도로 손님이 많아졌다. 동네 산책을 하다가 나만의 아지트에서 커피 한잔 하는 것이 소소한 즐거움이었는데 오픈 시간에 딱 맞춰 달려가야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드립 전문 카페라서 가격대도 꽤 높은 편인데 우리 동네에 이렇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그리고 나의 괜한 우려를 뉘우쳤다.


카페는 매일 정확한 시간에 문을 열었고 향기로운 커피는 주인을 똑 닮은 단아한 잔에 제공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인장이 커피에 진심인 것이 느껴졌다. 가끔 드립백을 주문하는 나의 취향을 기억했다가 원두를 추천해 줄 때 그녀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그 눈빛은 무언가를 정말 좋아할 때 나오는 눈빛이었기에 나는 그녀를 백 프로 신뢰하게 되었다.


그녀의 작은 카페는 뭐든지 비관적으로 보던 나를 일깨워 주었다.

직장에서 산전수전을 겪고 세상에 풍파에 휩쓸리다 보니 어느덧 뭐든지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중년이 되었다. 이것도 안돼, 저것도 안돼, 이렇게 골라내다 보니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카페도 안 되는  중 하나였다. 대한민국에 이렇게 카페가 많은데 이제 카페로는 수익을 낼 수 없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작은 카페 덕분에 진심은 통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심이 통했기에 카페가 열 개도 넘는 동네에서 그녀의 카페는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그녀 덕분에 진심을 다해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길이 열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녀의 환한 카페를 볼 때마다 세상을 삐딱하게만 바라보던 내 마음이 치유된 것 같아서 기분이 해진다.


그녀의 작은 카페가 오래도록 이 동네를 지켜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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