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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르페지오 Dec 31. 2023

한 해를 보내며

한 해를 보내면서 통과의례처럼 하는 의식이 있다. 핸드폰 연락처와 카톡방을 정리하는 것이다.


조용히 12월 31일을 보내면서 핸드폰에 있는 수많은 카톡방을 들여다본다.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개월 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던 카톡방이 수두룩하다. 연인 관계에만 짝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에도 짝사랑이 있는 것 같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절대 연락이 오지 않는 카톡 방을 들여다보면서 오만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그래도 보고 싶은데 다시 한번 먼저 연락을 해볼까? 아냐 그건 너무 자존심이 상하는데 그냥 기다려보자.' 그렇게 몇 시간을 기다려봐도 카톡 방 알림은 울리지 않는다. 그러면서 슬픈 예감을 한다. 이제 정리해야 하는 관계임을 인정하면서 아쉬움을 다독여본다.


올해도 역시 나의 짝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기다리던 카톡 방은 해가 질 때까지 조용하고 고요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조용한 방에 있는 연락처를 2023년 그룹에 저장했다. 연락처 그룹 이름이 2023년이라는 것은 2023년으로 이 모든 인연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그들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 나는 해마다 연락처를 연도별로 재저장한다.


서로 좋아서, 서로 잘 통해서 연락을 이어왔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몇 개월 동안 조용한, 연말에조차 아무런 인사가 없는 톡방은 나와 닿지 않는 인연으로 정리다.


이렇게 해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연락처로 옮겨져 간다. 이러다 보면 내겐 아무도 남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끼만 오십 년 살아보니 인생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힘들 때 주저 없이 연락할 수 있고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재는 것 없이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단 한 명만 있어도 인생이 살만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외톨이가 적성에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연말에는 이렇게 조용하게 나를 돌아보면서 보내는 것이 좋다. 길게 이어질 것도 아닌 사람들을 만나서 북적거리면서 시끄럽게 그리고 정신없이 연말을 보내는 것보다 나를 돌아보고 그리고 나의 한 해를 돌아보면서 조용히 한 해를 보내는 것이 좋다.


2023년이 안녕.

2024년아, 우리 한번 잘 지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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