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여덟 살 희수는 계획대로 25년의 직장생활을 마친 후 은퇴를 했다. 희수의 남편은 결혼한 지 25년 만에 처음으로 생활비를 부담하기 시작했다. 4인 가족의 생활비가 얼마인지 몰랐던 희수의 남편은 예상보다 큰 지출에 놀랐다. 겨우 네 명의 가족을 부양하는데 이렇게 많은 돈이 든다는 것을 희수 남편은 그동안 알지 못했다.
친정아버지, 친정 엄마, 동생까지 데리고 살던 희수는 25년 내내 남편에게 생활비를 달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다. 처음 몇 년은 생활비가 부족할 때마다 마이너스 통장으로 메꾸면서 지냈다. 그리고 연차가 십 년쯤 되었을 즈음부터는 희수 월급만으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희수는 결혼하고 한 번도 남편에게 생활비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희수 남편은 남편대로 대출 이자를 갚고 분양받은 아파트 대금을 납부하느라 빠듯하게 살았다. 그렇게 서로 역할분담을 하고 살았으니 희수 남편이 생활비 규모를 알리 없었다.
결국 희수 남편은 희수에게 약속했던 매달 100만 원을 주지 못했다. 그리고 희수는 비상금 통장을 깨서 엄마 용돈을 주기 시작했다. 매달 나가는 용돈은 소득이 없는 희수에게 큰 부담이었다. 은퇴 1년 차, 은퇴 2년 차, 은퇴 3년 차, 은퇴 4년 차가 되어가면서 희수의 통장 잔고는 바닥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데 해맑은 군자 씨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주저 없이 큰딸에게 요구했다. 희수는 다른 것은 다 참을 수 있었다. 희수가 가장 힘들어했던 것은 군자 씨의 운전이었다. 희수는 군자 씨가 칠십 대 중반이 되었을 때부터 면허증을 반납하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고집이 센 군자 씨는 딸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 인지 능력이 떨어진 군자 씨는 해마다 자동차 사고를 냈고 어느덧 군자 씨의 자동차 보험료는 150만 원까지 치솟았다. 군자 씨가 다섯 번째 사고를 냈을 때 희수는 운전을 그만하라고 통보했다. 연이은 사고로 면목이 없었던 군자 씨는 다시는 운전을 하지 않겠다고 큰딸에게 약속을 했다.
은퇴 후 엄마와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희수의 건강은 자꾸만 더 나빠졌다. 하혈이 멈추지 않아서 조직 검사를 받으러 간 어느 날, 군자 씨는 딸 희수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자동차 키가 어디 있는지 딸에게 물었다. 그날은 큰딸 희수에게 운전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지 채 열흘도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희수는 다시 내 얼굴을 안 볼 거면 운전대를 잡으라고 울면서 말했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군자 씨는 딸에게 사과했다. 며칠 전에 운전을 안 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 뒤늦게 기억났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운전은 해야겠으니 보험료를 본인이 내면서 조심해서 운전을 하겠다고 했다.
큰 딸 희수는 그 길로 짐을 싸서 사위와 함께 집을 나갔다. 한 달 후에 집으로 돌아온 희수는 군자 씨 짐을 둘째네 집으로 보내버렸다. 맏딸 노릇은 할 만큼 했으니 28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한 둘째 딸과 살라고 군자 씨에게 통보했다.
희수는 엄마와의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1년 후 새 집으로 이사를 가면서 엄마가 살 집을 따로 마련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말 한마디 때문에 군자 씨는 모든 것을 망쳐버리고 말았다. 보험료는 내가 낼게라는 말은 그래도 부모니까 책임은 지려던 큰딸 희수를 무너뜨렸다.
군자 씨는 빈털터리가 되어서 딸에게 얹혀살면서도 스스로 돈을 벌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25년이나 직장을 다닌 후 은퇴하겠다는 딸에게 모진 말을 퍼부었다. 보험료를 자신이 내고 운전은 계속하겠다는 군자 씨의 말은 희수가 주는 용돈으로 본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겠다는 말이었다. 희수가 노후자금을 깨서, 비상금을 깨서 마련해 준 용돈이 하찮은 것이라는 뜻이었다. '보험료는 내가 낼게'라는 말이 겨우겨우 버티고 있던 희수를 무너뜨렸다. 이 말을 들은 후 희수는 28년 내내 매달 자동 이체되던 군자 씨 용돈을 끊어버렸다.
정작 자신의 복을 발로 찬 사람은 희수 씨가 아니라 군자 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