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던 나날들

by 아르페지오

나는 지나치게 예민하다. 사람들의 작은 말과 행동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해서 깊게 생각을 하곤 한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쉽게 상처를 받고 아파한다. 이런 내가 25년 동안이나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찌 보면 기적 같은 일이다. 회사라는 곳에는 폭언을 일삼고 아무렇지도 않게 가스라이팅을 하는 인간들이 득실거렸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상처투성이가 되어 동굴 속에 숨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하게 태어났을까?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맹수들과 싸울 수 있었을 텐데, 나도 남을 짓밟고 일어설 수 있었을 텐데...


그러나 그것은 부질없는 희망이었다. 이번엔 당하지 않겠다며 주먹을 꼭 쥐고 회의실에 들어갔지만 말도 안 되는 억지부림에 한 마디도 반박하지 못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수위가 놓은 공격에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나는 언제나 약자였고 패자였다. 그래서 결국 내 발로 회사를 걸어 나왔다. 일하기 좋은 회사 global top 리스트에 포함되는 직장이었지만 내게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었다.


오랜만에 같이 회사를 다녔던 동생들을 만났다. 그녀들은 나보다 서너 살 적은 동생들인데 그녀들과 나는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녀들은 항상 독기에 차 있었고 날이 서 있었다. 마케팅 혹은 영업을 담당했던 그녀들과 프리세일즈인 나는 팀을 이루어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술적으로 보기에 너무 허황된 계획이라 조심스럽게 반론을 제기하면 그녀들은 날을 세우고 나를 공격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던 반박부터 했고 한 마디도 수긍하고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결국 나는 그녀들과 타협하는 것을 포기하고 잘못된 계획인 것을 알면서도 그저 주어진 일만 했다. 덜 하지도 더 하지도 않으면서 나만의 테두리 안에서 그녀들과의 언쟁을 피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고 나니 그녀들이 나를 언니라 부르며 찾아오기 시작했다. 사적인 만남이 시작되면서 그녀들은 이십 년 넘게 보여주지 않던 속내를 보여주었다. 마케팅 경험은 일도 없는데 조직 변경으로 덜컥 마케팅 업무를 맡게 되었던 막내는 자신의 무지를 들키지 않으려고 내게 날을 세웠다고 말했다. 내 말이 옳은 것을 알면서도 바득바득 대들었다며 뒤늦은 사과를 했다. 남초 영업 세계에서 좌충우돌하던 둘째는 동료들의 공격에 지쳐서 저도 모르게 언니에게도 날을 세웠다고 말했다. 다들 자신을 지키려고 날이 서 있었던 것뿐인데 같이 일할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나도 상처 투성이라 동생들의 상황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은퇴를 하고 그녀들과 사적으로 만난 지 5년 차가 되니 이제 조금 그녀들을 알 것 같다. 얼마 전에 그녀들과의 신년회가 있었다. 최고참인 나는 밥값만 계산하면 될 거라 생각하고 빈손으로 약속 장소로 갔는데 동생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선물을 잔뜩 받았다. 집에 돌아와서 손수 만든 달력, 오렌지 향이 나는 커피, 향이 좋은 핸드크림을 찬찬히 보면서 나의 우둔함을 후회했다. 그때 내가 조금 더 멀리 보았더라면, 그때 내가 그녀들의 상처를 들여다볼 수 있었더라면 적어도 우리끼리는 잘 지낼 수 있었을 텐데. 남자들만 가득한 세계에서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하면서 서로 지가 되어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퇴사할 때 여직원 비율이 채 20%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본사 인사부에서 될 수 있으면 여성 비율을 늘렸으면 좋겠다는 권고가 오기도 했는데 5년이 지난 지금은 조금은 나아졌을까? 적어도 그들끼리는 서로 둥지가 되어주면 좋겠는데 남아있는 동생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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