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고객사에 가서 제품 시연(제품의 기능을 보여주고 질의에 응답하는 세션)을 할 기회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코로나 때문에 대부분의 고객사들이 외부인 방문을 최소화하고 있고 새로운 제품 도입도 예전보다 훨씬 더 신중하게 결정하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고객사에서 제품 시연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출동할 예정이다. (우리 팀에서는 고객사에 가는 것을 출동이라고 부른다. 다른 회사에서도 출동이란 말을 쓰는지는 잘 모르겠다. ^^)
고객사에 가서 하는 제품 시연은 프리세일즈의 업무 중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업무 중 하나이다. 익숙한 환경이 아닌 고객사의 환경에서 제품 기능을 실시간으로 보여줘야 하고 다수의 고객들이 쏟아내는 질문에 응대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외국 회사에서 프리세일즈 한 명이 담당해야 하는 설루션은 수십 개에 달한다. 현업에서 제품들을 사용했던 경험이 없다면 모든 제품에 대해 전문성을 갖추기는 쉽지 않다. 따러서 온사이트 데모(고객사 방문 제품 시연)는 철저하게 준비하더라도 언제나 혀를 찌르는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그래서 20년 차 프리세일즈인 나조차도 고객사를 방문할 때는 극도로 긴장을 한다. 소화가 잘 안 돼서 식사는 간단하게 하거나 거르고 커피를 마시면 손이 약간 떨려서 커피도 마시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은 못 느끼는 미세한 떨림이지만 내게는 느껴지기 때문에 ^^)더군다나 오늘은 오랜만에 하는 고객사 방문이라 더 긴장이 된다.
고객사 방문 제품 시연에서는 여러 가지 돌발상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장소와 장비를 내가 100%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돌발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우리 회사 제품 특성상 기능을 보여주려면 네트워크 연결이 꼭 필요한데 보안 때문에 네트워크 연결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고 프로젝터에 컴퓨터가 연결되지 않아서 진땀을 빼는 경우도 있다.
몇 년 전에 한 고객사에서 300여 명의 직원대상으로 세미나를 요청했다. 그런데 세미나를 시작하려는데 프로젝터에 컴퓨터 화면이 송출되지 않아서 진땀을 흘렸던 적이 있다. 이런 대규모 세미나를 진행할 때는 하루 전에 고객사를 방문해서 사전 시스템 체크를 한다. 분명히 전날 테스트할 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는데 하필 내가 시스템 체크를 한 이후에 프로젝터가 교체되었던 것이다.
우리 회사 세미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고 데모에 필요한 각종 파일들을 설치한 컴퓨터에서 하나하나 제품 기능을 보여주면서 기능 설명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니 짧은 시간에 다른 컴퓨터에 소프트웨어를 설치한 후 세미나를 진행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300명의 청중이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식은땀을 흘리며 프로젝터 연결을 위한 모든 방법(해상도 조정, 다양한 커넥터 및 케이블을 사용하여 연결 등)을 동원해 봤지만 화면은 송출되지 않았다. 결국 제품 시연을 포기하고 준비해 온 동영상 자료로 세미나를 진행하려는 순간 고객 한 분이 아이디어를 내셨다. 바로 옆 회의실에 여분의 대형 TV가 있는데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가져와서 연결해 보자는 것이었다. 몇 분이 나서서 순식간에 TV를 가져왔고 노트북에 연결을 했더니 프로젝터보다 더 선명한 화질로 화면이 송출되었다. 프로젝터 화면보다 더 선명한 대형 TV로 300명의 청중이 나의 컴퓨터 화면을 볼 수 있었고 세미나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프리세일즈 초년병 시절에는 만일의 경우를 위해 노트북을 두 개씩 들고 다녔는데 최근에는 그러지 않았던 것을 뉘우쳤다. 연차가 좀 쌓였다고 나태해진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고 요즘은 다시 노트북을 두 개씩 들고 다닌다. (맨날 이렇게 무거운 노트북을 두 개씩 들고 다니니 덤으로 직업병을 얻었다. 어깨와 허리도 안 좋고 구두는 절대 신지 못한다.)
오랜만에 제품 시연을 준비하다가 여러 가지 에피소드도 생각나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올라서 몇 자 적어 보았다. 오늘은 또 어떤 돌발상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를 하고 고객사로 출동해야겠다.
사진은 제품 시연을 위해 내가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어댑터들이다. 만약을 위해 프로젝터 연결 케이블까지 가지고 다니는데 사무실에 있어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