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와 제주 수선화

관념과 실재 그리고 아비투스 형성과 축적의 시간

by 아란도




수선화가 만개한 아침이다. 요즘은 수선화와 눈맞춤하고 향기를 맡으며 볼을 꽃잎에 살짝궁 부비부비하는 날들이 이어진다. 수선화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나는 한 세계로 들어가는 것은 어떤 것인가? 에 대해 요즘 생각한다. 수선화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추사 김정희'이다.


봄이면 제주 수선화가 등장한다. 그렇구나! 지금쯤은 제주도에 수선화가 절정일 시기이다. 언제나 꽃구경의 절정은 관념으로 저장된다. 바지런히 움직여 그 절정의 꽃구경 현장에 있어야 하는데 어찌 된 일인지 봄은 더디고 마음도 더디고 몸은 더욱 더디다. 그러니 집 안의 수선화가 더욱 어여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감정은 신체로 직접 부딪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감정들일 것이다. 그때의 추사가 느꼈을 감정을 이제 나도 같이 느끼는 것이다.





관념 안에 있는 것은 문득 터져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모든 꽃의 절정이 그 관념을 늘 충족시키지는 않고 문득 순간에 충족시킨다. 바로 그때 과거와 현재가 만나게 된다. 이를 테면 추사가 만개한 수선화 들판을 보며 한탄할 정도의 그 절경에서 오는 비애감을 글로 하소연하는 그런 정도의 어떤 만남이 자기 안에서 이루어지는 바로 그런 순간일 것이다.



<추사 김정희> 책에서 '명선茗禪'



나에게 있어 현재의 '제주 수선화'는 곧장 '추사'와 '제주 수선화'를 연결시킨다. 이 연결은 추사의 '명선茗禪' 글씨로부터 비롯되었다. 나와 추사는 '명선' 글씨로 연결되었다. '명선' 글씨는 추사가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었을 때 '초의'에게 보낸 편지이다. 추사는 초의와 연결되어 있었고, 나는 차로써 초의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명선' 글씨를 통하여 추사와 연결되었다.


추사와 연결되니 유홍준의 책 <추사 김정희>와 연결되었고 다시 '추사의 편지'와 연결되었고, 또다시 '제주 수선화'와 연결되었고 그리고 '나의 수선화'와 연결되었다. 나의 수선화는 다시 추사의 편지와 나의 관념을 연결시킨다. 그리고 그 연결은 다시 글쓰기로 나를 이끈다.


책 <추사 김정희> 내용에 '추사의 편지'가 등장하였고, 그 내용 안에 '제주 수선화'가 등장한다. 나의 관심은 그 편지 내용에서 '추사가 생각하는 수선화'에 있었다. 그러니까 나의 관념은 추사의 관념을 연결시키고 있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책 <추사 김정희>에서, '백석신군비 탁본' , 추사는 '명선' 글씨체를 '백석신군비'에서 필의만 빌려와서 그 자신의 서체로 변형하여 글씨를 썼다. 그래서 예술성을 획득한 것.



어느 날 문득 페이스북에서 '제주도 수선화' 사진들이 올라왔고, 나는 산책 길에서 본 수선화를 떠올렸다. 그때까지 나에게 수선화는 관념의 수선화였다. 그리고 나는 그때 아래와 같은 글을 썼다.



사람에게 만남은 자기 관념과의 만남이 이루어질 때 의미가 생성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요즘 수선화를 보며 추사가 수선화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그 탐미적인 환희감을 알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 느낌 알 것 같아! 이런 답변을 추사에게 주고 싶다.
여기서 탐미적인 환희감은 인간의 순수감정을 의미한다. 기쁨 그 자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러니 탐심과는 본래적으로 무관하지만, 수선화를 보는 그 감정, 어여쁘다고 느끼는 그 감정은 탐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러한 감정은 미적인 감정이고 순수한 감정인 예술적 감정 거기까지로만 받아들여야 하며, 그 순간에 분출하는 '충동'적인 환희감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 이런 순간에 분출하는 충동적 환희감을 '메타 충동'이라고 하자. '메타 희열'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메타적인 '의미의 의미' 적인 관점일 것이다.




화분을 교체해 주었다. 창가에 수선화. 좌측 벨라 에스텔라, 우측 러브데이



순간에 제주 수선화는 추사의 편지 내용을 떠올리게 하였었다. 왜일까? 나는 수선화를 산책 길에서 직접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수선화는 나에게로 들어오지 못했다. 그런데 제주 수선화는 사진으로만 보았는데도 바로 순간에 추사의 편지 내용을 떠올렸다. 나에게 수선화는 미지의 어떤 대상처럼 추사의 그때의 그 수선화에 머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순간은 비단 봄의 봄을 상징하는 꽃과는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이미 나에게는 추사의 수선화 역시 관념이기 때문이다. 관념과 관념이 만나서 아비투스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추사가 사랑한 수선화와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수선화가 일치되기까지는 아비투스가 형성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추사에게 있어 무엇이 관념이고 무엇이 현실일까? 현재는 옆에 없지만 추사의 경험과 관념 안에 있는 '중국 강남의 수선화'' 또는 평양에서 얻은 그 수선화'와 추사가 위리안치하고 있던 그때의 제주의 땅에 지천으로 피어 있던 '제주 수선화', 이 두 수선화 중에서 추사에게는 어느 수선화가 관념이고 현실일까?
추사에게는 그때 전자가 현실이고 제주 수선화가 관념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어쩌면 추사의 수선화가 현실이고 내가 산책 길에서 본 수선화는 관념이었을지도 모른다. 추사는 제주도 수선화를 현실에서 보았지만, 그 수선화가 처한 상황 그러니까 수선화가 제주도에서 원래 그렇게 자생하며 산다는 그것이 제주 수선화의 본래적 모습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자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수선화의 그 본래적 모습을 그 당시의 제주 토착민들은 수선화의 생육환경과 대항하는 형태로 그 자신들의 생존환경을 구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에서든 자라고 번식하고 뽑아도 계속 나오는 수선화와 그것을 뽑고 또 뽑아 농사짓는 땅을 보호하는 토착민들, 그러니까 서로의 영토를 지키고자 하는 지난한 대척점이었던 셈이다.



책 <추사 김정희>에서, 수선화 목탁본



호미질에 의해 캐내어진 수선화가 화분에 담겨 그의 창가에 놓이게 된 그 순간에만 추사의 관념적 수선화와 현실의 수선화는 비로소 일치가 된다. 관념의 수선화가 창가에 놓인 수선화에 투사되기 때문이다. 추사의 관념이 나에게로 와 나의 현실이 되었을 때는 나의 수선화를 실내의 창가에 놓아두었을 때였다. 관념의 수선화가 현재화된 것이다.
나는 분명 내 창가에 놓인 수선화에서 내 관념의 수선화를 느꼈다. 그러니까 내가 본 수선화는 그때 나에게 어떤 의미였다. 그러므로 수선화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내 안에 들어올 그 시간의 축적이 나에게는 필요했었던 것이라고 본다.
아직 일치되지 않은 그 수선화, 제주의 어느 곳이나 흔하게 뿌리내리고 자생하던 그 수선화는 여전히 현실이지만, 그 자신에게로 들어와서 아직 어떤 의미가 되지는 못한다. 그것은 추사와 토착민들의 삶의 방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추사의 관념적 수선화가 제주 수선화와 일치되려면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다.




수선화 / 벨라 에스텔라 Bella Estella




서로의 어긋난 아비투스에 의해 수선화는 서로에게 다른 대상이 된다. 그리고 결국 점차로 추사의 아비투스가 제주도에 뿌리내린다. 그것은 바로 소암 현중화와 청탄 김광추 같은 차인茶人이자 서예가들 및 문화예술인들에 의해서이다. 문화적 뿌리가 형성되려면 그만큼의 축적이 필요하다.
반면, 문득 추사의 아비투스는 제주도라는 환경에 의해서 어떻게 변화되었을까. 그토록 귀한 수선화가 성가신 존재로 취급받고 말과 소의 먹이가 되는 풍경에서 받았던 추사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되었을까. 같은 것을 다르게 대하면 사람은 그때 상처받는다. 보는 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차이에 의해서 그렇게 된다.
니체는 이러한 현상을 '거리의 파토스 das Pathos der Distanz'라고 했다. 아마도 이 차이가 곧 아비투스를 형성하는 것 역시 다르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니체의 '거리의 파토스'를 '차이의 파토스'라고 생각한다. 니체가 정말 사람들을 차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차이의 파토스를 인식하지 못하면 그것은 인식함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서로를 이해하기가 더 어려워지게 된다. 현재에서 보자면 '차이의 파토스'는 개성과 연계가 깊고, 개별적 인간의 개성은 '서로 다름'이라는 전제하에서 접근하는 것이므로, '차이의 파토스'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형성되는 '아비투스'를 생성하게 된다. 우리가 교류하는 사회는 서로 다른 아비투스들이 만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추사는 흔한 것이 흔하게 취급받는 것에 익숙지 못했고, 흔한 것이 흔하게 취급받아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에 적응하지 못했다. 아름다움을 사람이 받아들이는 과정도 무작정 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화분에 담긴 한 포기의 수선화와 지천으로 깔린 수선화는 그 이미지부터 다르다.
서로 바라보는 그 대상을 서로가 다르게 해석한다. 지천으로 깔린 그 자체의 수선화가 갖는 아름다움과 농부가 가축의 먹이로 수선화를 잡초로 대하는 것은 다르다. 남쪽에선 흔한 것이 북쪽에서는 귀하다. 이건 어찌 보면 서로의 불일치라서 허무다. 추사가 분개한 그 감정은 '무'에 가깝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화를 낼 대상이 없이 화가 나는 그 상태를 조명해 보자. 추사의 하소연은 누가 봐도 모순적이다. 환경이 다른 것에서 오는 불일치의 고통이 있다. 추사가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어 그 자신의 본래 환경에서 축출되어 겪는 불안이 있다. 그 불안은 환경변화로부터이다. 이방인은 추사이다.
토착민의 행위에 분개한 추사의 눈물은 그 자신으로 향하는 눈물이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시간상의 흐름에서 지천으로 난 들풀 같은 꽃을 '꽃'으로 대하게 된 시간은 그리 길지가 않다. 조선후기의 제주도 토착민이 수선화를 잡초로 보는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제주 수선화 '금잔옥대'



만약에 토착민이 수선화를 꽃으로 보고 귀하게 여긴다면 그것은 대체로 교육에 의한 것일 수밖에 없다. 현재에서 들풀이나 야생화를 한 개체로 보고 꽃으로 보게 된 것 역시 교육(학습)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습득하는 것 역시 생활양식에서 비롯된다. 그러니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 가서 제주도에 전달한 것은 추사의 아비투스였다고 해야 할 것이다. 추사의 관념이 제주도에 전달된 것이다. 훗날 제주도인이 제주도의 아비투스를 형성할 때 그 뿌리는 추사의 아비투스로부터였을 것이다.

제주도에도 지방관이 파견되고 여러 문물이 전달되었지만 예술의 형태로서의 삶의 양식은 추사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추사의 말년에 완성된 '<판전板殿> 글씨는 '대교약졸大巧若拙'의 미학으로 드러났다고 평한다. 이런 '졸卒의 미'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모든 시작과 과정의 반전을 경험한 제주도 유배 시절이 아니었을까. 제주도 유배 시절에 낯선 환경에서 새롭게 형성된 아비투스는 그렇게 마지막에 드러났던 것이 아닐까. 흔하디 흔한 수선화가 그때 준 상처는 그렇게 아물지 않았을까.



" 수선화는 과연 천하에 구경거리입니다. 저장성 이남 지역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이곳에는 촌동네마다 한 치, 한 자쯤의 땅에도 수선화가 없는 곳이 없는데, 하품花品이 대단히 커서 한 가지가 많게는 10여 송이에 꽃받침이 8~9개, 5~6개에 이릅니다. 그 꽃은 정월 그믐께부터 2월 초에 피어서 3월에 이르러서는 산과 들, 밭둑 사이가 마치 흰 구름이 질펀하게 깔려 있는 듯, 흰 눈이 장대하게 쌓여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토착민들은 이것이 귀한 줄을 몰라서 소와 말에게 먹이고 또 짓밟아버리며, 또한 그것이 호미로 파내어버리는데, 파내도 다시 나곤 하기 때문에 이것을 원수 보듯 하고 있으니, 물物이 제자리를 얻지 못함이 이와 같습니다. (...) 보고 만나는 것마다 이렇게 처량한 감회가 일어나서 더욱 눈물이 줄줄 흐르는 것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 (전집 권 3, 권돈인에게, 제5 신) - 책, <추사 김정희>에서/유홍준/창비 -



만물이萬物 제자리를 얻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만물은 서로 만나야 할 그때에 만나서 연결될 때 다른 것으로 변화變化할 수 있다. 같은 것이 다른 대접을 받게 된다. 현재를 보라. 수선화는 여전히 기후가 맞으면 지천으로 피지만, 이제는 소 먹이가 아니라 관상용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 제주 수선화는 이제 꽃으로 대접받는다.



책 <추사 김정희>에서 '판전'



나에게 있어 산책 길에 있던 수선화와 내 집 창가에 놓인 수선화가 여전히 같은 의미를 줄 수는 없다. 반면에 수선화라는 그 자체적 인식에서 보자면 관념과 실제 하는 수선화가 일치되었다. 더구나 내 관념의 수선화는 현실의 수선화를 인식하는 데 필요한 내 아비투스를 형성하는데 축적의 시간을 갖게 하였다. 그 시간이 있어 나는 바로 내 창가의 수선화에 내 관념의 수선화를 투사할 수 있었다. 바로 늘 옆에 있었듯이 거부감 없이 예술적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이러한 인간의 예술적 체험도 기계적인 메커니즘일 수 있다. 그냥 그 메커니즘을 파악하여 그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분자생물학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객관성은 오히려 관념론적인 것일 수도 있다. 객관을 관념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그럴 때 더 주관적인 것이 된다. 그때의 주관은 실재적인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까 어떤 것에 대해 해석을 강요받는 그 신체 상태의 시간이 오히려 축적의 시간이 되는 것처럼, 그리고 그 해석에 의해 아비투스가 형성되는 것처럼, 사람에게 관념은 메커니즘을 감각하게 하는 것이며, 실재성을 자각하게 한다.
어떤 수선화가 자기에게 들어오려면 의미가 있어야 한다. 그때 사람은 반응을 하고 무엇인가에 대해 환기하기 때문이다. 그 의미를 생성하는 작업이 아비투스 형성의 시간이며 관념이 머무는 시간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메커니즘적으로 일어난다.






수선화는 나를 불러서 의미의 의미를 일깨웠다. 의미의 의미가 무엇인가? 내가 써 놓은 글을 다시 읽어 보니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구나! 를 알 것 같다. 나는 위에 '탐미'와 '탐심'이라는 표현을 하였고, 순수라는 표현도 사용하였다. 내면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그 희열은 바로 사랑이었다. 의미의 연결은 바로 '사랑'과 연결되는 것이며, 그 모든 것과 연결되는 그 의지 역시 '사랑'의 힘일 것이다. 관념과 관념의 연결이 끊어져 있는 상태는 사랑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고, 연결이 드러나면 '사랑' 역시 드러난다. 추사의 관념의 수선화 역시 추사의 '의미'였다. 그러므로 추사는 수선화를 사랑했다. 아마도 추사가 울었던 이유는 추사에게 모든 수선화는 바로 의미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추사는 수선화를 사랑했다. 사랑했기에 지천에 솟아난 수선화를 마구 뽑아서 소에게 먹이니 추사는 고통을 느낀 것이다. 수선화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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