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세계인에 대해서 우리는 그동안 너무 눈에 보이는 형태에서, 즉 현실적인 입장에서만 접근한 듯하다.
전체 역사적 관점에서의 세계화여야 했다. 고대에서는 이미 부족국가들을 통일한 사례가 많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 시절의 자유로운 세계, 호메로스적 세계관의 신들의 세계에서는 경계가 없었다. 오직 현세와 내세로 구분되었는데 그곳끼리도 타협점은 있었다. 그 세계는 빛과 어둠만으로만 나뉘어 공존하였다.
그리고 스파르타, 마케도니아의 통일 그리스, 그 이전에 페르시아는 동방을 통일하고 있었다. 페르시아 문화는 동양과 연결되어 있었다. 알렉산더에 의해 페르시아아가 그리스에 통합되었고, 그리고 로마로 이어지고, 계속 거대 통일 국가형태로 유럽은 이어졌다.
그러니 유렵인이 가지고 있는 세계인이라는 인식은 아주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인식이지, 근대화로 만들어진 인식은 아니었다. 그런데 민족 국가로 독립된 이후에 생성된 민족개념에서 기인된 세계인은 협소하고도 비문화적인 개념이었다. 이것은 새로운 부족국가 형태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새로움'은 야만을 뜻하기도 한다. 여기서의 새로움은 창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가 기술과 과학이라는 형태로 변화되면서 이제 막 태동한 시기이므로, 그 형태는 야만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기존의 정신문화 전통과 호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의 문화는 이때 정신영역으로 넘어간다. 그 사이에서 현재의 것은 아직 정제되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정신영역의 발달과 레이어 층의 발전은 이렇게 집약되어 온 것일 거다. 인간의 입체적인 정신 영역도 이렇게 발달하게 된 것일 거다. 계속 축적되면 기존의 것은 정신영역으로 현재의 것은 현실영역으로 이렇게 분리되는 것일 거다. 이것이 정신에서 중첩되므로 우리가 환영을 인식하는 것. 즉 기존의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으로 환영을 인식하는 것일 거다.
현시대는 그것을 기록영상이나 영화로 본다. 예전에는 글 또는 그림, 조각으로 기록되었다. 현재는 글과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한다.
기억저장법과 환영(영상) 인식은 조금 다르다. 기억저장법이 재현이라면 환영은 경험이다. 그런데 기억저장법에서도 경험을 하게 된다. 다소 강도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같은 선상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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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괴테나 니체의 민족 개념은 문화공유의 민족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이때의 세계인이 바로 유럽 지식사회에 말하는 세계인 개념이다. 문화를 공통 소유하는 의미에서의 지식사회일 것이다.
전체적인 역사적 관점에서의 세계인이고, 여기서 산출된 총체성이 나아갈 방향이고 운명이다.
나는 앞으로 전체성과 총체성을 구별해서 사용할 것이다.
현대인은 세계화와 세계인의 개념을 너무 협소한 형태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현재에서 사용하는 세계인의 개념을 현대사회에 맞춰서 사용하는 것은 야만적인 행위다. 역사와 동시성을 갖고 사용해야 제대로 된 사용이다.
우리가 현재에서 어떤 비참함의 야만을 느끼는 이유는 여기에서 비롯될 것일 것이다.
비로소 분명해진다. 전체 역사를 놓고 본다면 오히려 역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서로 모두 동등한 것이다. 차이가 있지 차별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기원전 10세기 이후는 전체 인류사에서 보면 황금기이다. 그러므로 그 이전의 역사에 보면 그 또한 유아기적인 것이다. 고대 기원전 20세기 이전, 30세기 이전의 인류의 문명과 실존에 대해서 우리는 명확하게 모른다. 이삼천 년의 축적이 기원전 6~7세기 고대 그리스에서 한번 집약된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 문화가 지구촌에 퍼진 것이다. 현재에도 이러한 방식은 반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