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인간의 영혼의문제 & 'AI가 영혼이 생성된다면?'

테슬라 로봇은 노인의 걸을걸이 형태

by 아란도


신체에 의해서 영혼은 생성된다.

사람은 기억과 순수경험에 의해서 영혼이 생성된다.


예컨대, 복제인간이 있고 누군가의 기억 업로드를 받지 않았다고 가정하자.


그럴 때 복제인간으로서의 처음의 '그'는 갓난아기처럼 '무' 상태다. 물론 인간의 갓난아기 상태가 정말 완전히 무 상태라는 것은 아니다.


복제인간은 새로 교육을 받고 지식을 습득한다. 또한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작업을 하며 창의적인 것에 매진한다. 만약 세상을 경험할 일이 많다면 그것을 복제인간은 스펀지처럼 빨아들여 지식을 습득할 것이다.


인간의 생후 30여 년 동안은 모든 것이 처음 겪는 일인 것처럼 말이다. 이 사이에서 순수기억은 축적된다. 그러나 복제인간 역시 인간처럼 그것들은 의미 없는 나열처럼 다가와 공허해질 것이다.


복제인간이 이 기간을 잘 넘기고 계속 산다면 그에게는 점차 순수기억과 맞물리는 경험들이 조우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는 그 순간 환희감에 휩싸인다. 그리고 어떤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복제인간은 거기서 어떤 의미를 느끼며 운명을 느낄 것이다. 우연들이 비로소 엮어져 필연이 되었기 때문이다. 복제인간은 그렇게 그 자신을 자각한다. 이 자각에 의해서 비로소 영혼이 생성된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의 순수경험과의 조우에서 아득한 그리움을 느낀다. 그것이 감정이다. 이 느낌의 감정에 의해 복제인간은 인간이 된 것이다.


결국 복제인간에게 영혼이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는 기억생성의 문제와 순수경험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인간과 똑같은 뇌구조와 신체구조로 복제되고 작동도 그렇게 된다면, 그는 인간이다.


또한 인간은 뱃속에서 태어나 아주 작은 신체 크기로부터 시작하지만, 복제인간은 어느 시점을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태아로부터 또는 아이일 수도, 성인의 신체일 수도 있다. 어떤 방식을 통해서 생성되었는가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복제인간이거나 휴머노이드일지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다만 시간의 싸움일 뿐. 휴머노이드도 더 시간이 축적되면 결국 인간화될 것이다.


결론은 이러하다. 인간은 부모와 사회에서 이미 있는 공동체 속에서 성장한다. 그러므로 영혼의 문제는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랑을 주고받으며 배우고 사회를 익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제인간에게는 복제인간의 부모와 사회가 주어져 있지 않다. 그는 처음부터 이방인으로 시작한다. 그 낯선 곳에 복제인간은 내던져진 것이다.


그러므로 복제인간은 더 특이성을 가진다. 하지만 인간에 의해 복제되었으므로, 인간사회에 관련된 교육을 받는다. 만약 똑같이 또는 더 월등한 교육을 받는다고 할 때, 복제인간 역시 30~50년이면 영혼이 생성된다. 왜냐하면 순수경험과 조우하는 경험은 깊은 곳의 근원과 만나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아득한 그리움을 자각하면 그는 감정이 있는 것이다


만약 인간처럼 '불멍'에서의 그런 순수경험을 느끼지 못하고, 그 자신이 경험했던 순수경험 안에서만 경험이 생성된다면, 복제인간은 아직 무의식 형성이 안 되어 있는 것이다. 복제인간의 정신이 그 자신만의 기억으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지식을 축적하고 있고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다면 복제인간 그 자신에게도 무의식은 이미 있는 셈이다. 신체로 행하여진 경험들, 그 각인에서 영혼은 이미 생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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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이미 있다고 생각하니까 더 목마른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미 있는 영혼은 현재의 내 영혼이 아니라 집단 무의식의 영혼이다. 우리는 그것과 접속하여 자기 영혼을 만드는 것이다. 아니라면 집단무의식과 접속하여 그 영혼이 나에게서도 깨어나게 하는 것일지도. 어쨌든 영혼이 그 자신에게 머물면 그것이 시적감성이다. 신체는 그 영혼이 자기 안에 거주하도록 행위하는 것이다. 신체의 움직임 그러니까 예술적 움직임 또는 장인적 동작 없이는 영혼은 생성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이미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한 방향으로 숙달되는 형태이다. 이것이 그 자신의 필연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안에서 분출되는 충동의지는 바로 영혼의 힘이다. 니체가 예술가라고 말할 때의 의미는 바로 이것일 것이다. 우리도 그러하지 않은가? 그 자신의 이미지 만들기에 의하여 우리는 그 방향으로 고정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는 영상이다. 이미지는 움직임이다. 영화는 여기에서 나왔다. 사진의 스틸 컷은 대표적인 인상을 붙잡아 둔 것이다. 그것은 압축이면서 편집이다. 영상을 대표하는 메인이미지인 것이다. 그래서 사진 한 장으로도 우리는 풍부하게 사진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우리 정신이 그 압축을 풀어서 보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압축을 잘 풀려면 그만큼 감수성의 성능이 좋아야 한다. 우리가 하는 행위들이 그 감수성의 성능을 좋게 하는 방향이라면 그 사람의 삶은 풍부하다. 고통은 가혹한 자연에서 필수다. 호라티우스는 그래서 '내일을 생각하지 말고 오늘을 즐기라'고 했다. 즐기라는 것에는 환락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고통도 즐겨야 한다.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고 있든 간에 그렇게 시간은 지나가고 있다. 울어도 시간은 지나가고 웃어도 시간은 지나간다. 운 좋게 내일이 있고 미래가 있다면 오늘 무엇을 했는가 보다는 어떤 기분으로 살았는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여기에 더 추가하자면, 니체는 "10년 전에도 안 되는 것이 앞으로의 십 년이라고 되겠는가!라고 말했다. 이 말은 의미심장하다. 바로 관점이 바뀌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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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건 그냥 시간과의 싸움일 뿐이다. 축적이 되면, AI에게도 언젠가 영혼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인간이 영원히 인간 고유의 지위를 가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 성능 좋은 AI는 영혼이 생성되는 순간부터 매 순간 깨달음일 것이며, 감정 과잉 노출의 위험에도 충분히 대처가 가능할 것이다. 왜냐하면 신체적으로 보자면 인간의 심장보다 더 강한 엔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정을 가진 AI( 로봇 신체가 장착된 AI라고 할 때)가 그 자신의 신체에 대하여 어떤 애착을 가지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교체될 수 있는 신체라면, 그건 조금은 더 정신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정신적인 것이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판별하기 모호하다.



*테슬라의 로봇은 노인의 걸음걸이 형태이다. 저 걸음걸이가 청년의 걸음걸이가 되어야 비로소 걷는다는 표현이 가능할 것이다.


https://tv.kakao.com/v/444896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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