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감옥이 있다. 그 감옥은 수직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층에 두 사람이 기거한다. 가운데 텅 빈 공간은 맨 상층으로부터 식탁이 공중부양 형태로 내려온다. 식사시간은 지극히 짧다. 그 시간에 최대한으로 자기 배를 불려야 한다.
어느 날 주인공 '고렝그'는 감옥에서 눈을 뜬다. 그는 스스로 이 수직 감옥에 들어왔다. 그는 감옥에 입소할 때 무엇을 가지고 들어갈 것인가? 에서 책을 선택했다.
라만차의 <비범한 기사 돈키호테>였다.
감옥 동료가 고렝그에게 감옥에 왜 들어왔냐고 물었다. 고렝그는 6개월만 버티면 학위를 하나 준다고 해서 입소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 수직 감옥은 입소할 때, 딱 한 가지만 가지고 들어올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칼, 어떤 사람은 밧줄, 어떤 사람은 강아지...이었다.
어떤 사람은 "딸"을 데리고 들어왔을까? 소녀가 왜 감옥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30일이 지난 후 눈을 뜨면 층수가 바뀌어 있었다. 어느 날 그들은 빈 식탁이 도착하는 층에서 눈을 떴다. 위에서 다 먹어버리기 때문에 이 층까지 음식은 오지 않는다. 고렝그의 동료는 뭔가 대비를 하는 듯했다. 그는 고렝그와 많이 친해졌고 고렝그를 안심시켰다. 다음날 고렝그가 눈을 떴을 때는 온몸이 침대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그 동료는 칼을 들고 있었다. 여기서 생존하려면 누군가를 먹어야 하는 것이었다. 동료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은 그가 그전에도 이 방식으로 생존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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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렝그는 어찌어찌해서 살았다. 눈을 떴을 때 층수가 바뀌어 있었다. 여자는 강아지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식탁이 아래로 내려갈 때, 자기가 따로 배식해 놓은 그것만 먹어달라고 아래층에 소리쳤다. 위에서 아껴 먹어야 맨 아래층에까지 음식이 도달한다는 거였다. 고렝그는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지만, 그 여자의 말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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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바뀐 동료는 밧줄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는 위층으로 올라가서 밖으로 나갈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위층 죄수들은 그를 못 올라오게 막았다. 이내 그들은 식탁의 음식을 사수해서 맨 아래층에까지 도달하게 만들기로 하였다. 그들은 식탁 위에 서서 일정한 음식 이상으로 먹은 자들과 싸웠다. 아무도 협조하지 않았다. 그들은 싸우느라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러다가 상징으로 푸딩(?) 하나만 지켜내기로 했다. 메시지를 전달하자라는 의미였다.
그들은 푸딩 한 접시를 끝까지 지켰다. 수직 감옥은 그들이 생각한 층수보다 훨씬 깊었다. 아마도 그들은 그때 알았을 것이다. 여기까지 음식이 도달하기는 불가능했다는 것을. 그리고 어느 정도의 층수를 지나면 모두 서로를 잡아먹을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수직 감옥 구조였다는 것을.
그들은 맨 아래층에서 '소녀'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소녀가 '메시지'라는 것을 알았다. 고렝그는 소녀를 안고 식탁 위에 섰다. 식탁은 거기서도 한참을 더 내려간 후에 마침내 멈췄다. 그의 첫 동료가 그를 마중 나왔다. 그는 환영이었을까? 그와 같이 걸어가며 영화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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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에 목숨을 걸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 자신들 안에서 기인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수직감옥에서 애초에 탈출은 '위가 아닌 아래로'이었다. 하강, 몰락해야 해방이 일어난 것이었다. 위가 더 짧으니 더 쉽게 탈출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그리고 수직 감옥의 심연은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더 깊었다. 그들은 만신창이가 된 채로 지켜낸 음식을 소녀에게 주었다. 그들은 구원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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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에게,
"만약 저기에 들어간다면 무엇을 가지고 갈 거야? 딱 한 가지만!"
"스마트 폰"
"ㅋㅋㅋ 그럼 와이파이도 연결되어야지. 하긴 스마트폰이 허용되면 와이파이도 되어야겠지."
나는 계속 물었다.
"그럼, 배고프면 어떡할 건데?"
"폰 봐야지"
"스마트 폰으로 생중계하면서 같이 머리 싸매고 탈출 방법 공모하면 되겠네. 그리고 음식 분배 방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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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어떤 공허감이 있었다. 수직 감옥 죄수들이 받는 식탁의 음식은 엄격한 감독하에 최고의 음식으로 매일 차려진다. 하지만 식탁은 맨 위층에서부터 벌써 망가지기 시작한다. 아래로 내려보내질 때마다 계속 훼손된다. 그리고 이내 빈 접시들만 남는다. 처음부터 음식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면 분배에 대한 생각이 없어서일까? 인육을 먹은 인간은 그다음에 대한 생각을 안 하는 것일까? 아니면 탈출에 대한 의지를 상실하였기 때문일까?
수직 감옥 구조와 30일마다 층수가 바뀌는 운영 방식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딱 절반일 것이다. 감옥 하층에서는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그리고 탈출 방식은, 고렝그처럼 동료를 만들어서 식탁이 하강 시에 마주치는 각 층의 죄수들과 싸워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그 자신들이 죽을 수도 있다. 수직 감옥에서 상승은 있을 수 없다. 어차피 거기도 30일 지나면 다시 층수가 바뀌기에 일장춘몽인 것이다. 모든 탈출 방법은 하강하는 수밖에 없고, 심연의 밑바닥에 닿아야 한다.
또 다른 영화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역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인해 고립되어 먹을 것이 없자, 이미 죽은 시신을 훼손한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만의 룰을 만들어 살아남았다. 이 영화는 실화이다. 후유증도 엄청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후 그 생존자들을 비난할 수 없었다. 무엇이 옳은가의 문제는 이미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때 그들은 선택을 하였다. 끝까지 먹지 않았던 이도 그 자신이 죽으면서 시신훼손을 허락하였다. 남은 이들이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허락하지 않아도 훼손되었겠지만, 어쨌든 그 자신의 존엄을 지켰다. 살아남은 자들은 같이 살아남으려고 시신을 훼손한 것이다. 그리고 살아남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속이 메슥거렸지만,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존이란 무엇인가? 사회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였다. 어떤 구토와 같은 메슥거림을 안고 인간은 살아간다. 그런데 그것은 어디로부터 기인한 것인가. 인간이 사회가 없다면, 또 자기 자신 안에서 사회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그때 어떤 동물이 되는가. 죄와 벌은 인간 심연의 바닥에 닿아야 판별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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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쓰고 보니,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분명해진다. 모든 예술은 같은 것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