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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란도 Jun 02. 2024

차한잔의 독락과 독백

차맛어때_2024_제다실습차


어느덧 6월 1일이다. 작년과 올해는 봄날 그간의 패턴보다 기이하게 바쁘다는 느낌을 주었다. 어떤 것에 몰입되어 일상의 루틴이 그렇게 형성되면, 어떤 것은 상대적으로 그 자리에서 벗어나게 되는 듯하다.


3월 말에 쓰던 글이 노트북을 켜니 그 상태 그대로 있었다. 저장되었기에 망정이지, 끄지 않은 상태 그대로 노트북을 덮었었나 보다. 두 달여 만에 노트북을 펼치니, 갑자기 어느 시간 대는 어느 시간 대와 같이 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문득 들었다.


어느 때에는 어느 것에 집중하게 되고, 또 어느 때에는 어느  것에 집중해야 하고 그렇게 어떤 시간 대가 나뉘어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것은 의지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떤 패턴, 그러니까 계절과 밀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떤 궤도를 벗어나게 되는 것은 지금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의 일련의 과정들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삶에서 우선순위에 대해 늘 생각한다. 이것은 그 자신이 어떤 것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선구 된 방향성에 의해서일 것이다.


마주치고 싶으면 미리 그럴만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삶의 시계는 계속 돌아가기 때문에 마주치기 어렵다. 마주치려면 사전 작업이 있어야 한다. 저녁놀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침부터 오후까지 계속 뜨겁게 태양이 대지를 달궜기 때문이라고 <지적 생활의 즐거움>에서 말했다.


예전에 약속은 우선순위가 되어야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떤 약속들이 이루어졌다면 그 우선순위를 지키고자 각자가 애를 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들이 느슨해지고 또 다른 궤도에 들어섰다면, 이미 사전에 어떤 다른 일들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두 달 만에 노트북에서 쓰던 글 속으로 다시 들어가려니 쉽지가 않다. 글도 하나의 세계이며 어떤 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 안에서 구축한 세계가 있다. 연결을 해제하고  나오는 것도 힘들고 스트레스받는 일이지만, 다시 연결하여 그 속으로 들어가는 일 역시 힘들고 스트레스받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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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시음을 하면서 어떤 환상과 직관이 스치고 갔었다. 허밍이었다. 그러니 차시음은 나에게 어떤 것을 상기시킴과 동시에 어떤 분위기 잡힘을 동시에 지각하게 한 것이다.


햇녹차 향이 그윽하였다. 1조 2조 3조 녹차의 향을 맡았다.  어떤 기대감에 설레었다. 차를 우리고 맛보는 과정에서 녹차는 정말 봄과 여름에 어울리는 차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였다. 이 싱그러움과 은근한 매혹적인 향을 어디에서 맡을 것인가.


이번 제다에는 참여하지 못하였다. 대신 성의만 뒤늦게 표시하였다. 차를 받아 들고 나니 만감이 교차하였다. 이쁘게 차곡차곡 담긴 차를 바라보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참여하여 정성껏 만든 차를 이리 편하게 택배로 받아서 마시려니, 더 차향이 풍부하게 다가오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5월 중순의 찻잎으로 차맛이 이 정도이면 말 다한 것이다. 5월 중순의 찻잎이 아무리 부드럽다고 하여도, 찻잎은 이미 짙은 녹색을 향하고 있다. 찻잎의 색상도 다소 색소침착 상태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찻잎 상태는 만든 시기와 무관하지 않을 수 없으니 그 점을 고려해야 한다.


탕빛은 유백색보다는 연녹빛에 가까웠다. 1조 2조 3조 차맛이 거의 균일하다고 느껴졌다. 제다 시간과 공정을 모두 엇비슷하게 맞추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올해 차는 작년보다 일주일 늦춰진 날에 제다실습으로 만들었다. 찻잎에서, 그것도 5월에 일주일의 시간차는 큰 것이다. 시간 상으로 보면 중작에 가까운 찻잎이다. 이 시기 바로 며칠 상간으로 대작이다. 찻잎은 태양빛을 머금고 자라니, 차로 만들어보면 그 찻잎이 그 시기를 이미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제다실습에서는 어느 시기에 차를 만들든 간에 모두가 똑같은 공력으로 정성껏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세월이 축적됨에 따라 차를 다루는 숙련도 역시 축적된다. 물론 느리고 천천히 축적되는 것은 어찌할 수는 없다. 일 년에 한 번씩 제다실습 때만 차를 만들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관념 속에서 차를 만들고 차를 시음하면서 이론상으로 완성해 가면서 다음 해에 다시 반복한다.


5월 중순의 찻잎으로 만든 차라는 것을 감안해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녹차의 장점이 잘 드러나 있는 차들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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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차는 작년에 이어 올해 역시 다시 만들었는데, 맛은 부드럽고 향은 은은하였다. 이제 우리나라에서 다시 황차를 제대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울림님과 통화로 황차 만들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으나 올해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지는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들만 알 것이다.


발효차는 작년보다 더 부드럽고 향이 풍부했다. 탕색도 맑았다. 맛은 상큼하지만 또 가벼운 맛은 아니었고 단맛이 풍부했다. 발효차는 정말 이제 손색이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전에 맛본 중국 홍차 중에서, 기문홍차류의 한 종은 거의 한국 발효차와 맛과 향 그리고 엽저 상태도 비슷했다. 그 홍차를 보고는, 원래 홍차는 한국 발효차 맛과 비슷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 발효차들 맛이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다. 아마도 손 기술이나 제다에 대한 감각들이 더 축적되었기에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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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 번 하는 제다와 5~6월에 있는 차행사들을 모두 제칠 정도로 나의 시간은 또 다른 궤도에서 바쁘게 지나갔다. 어쩌면 나에게는 이러한 시간이 숨 고르기하는 시간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나만의 시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정돈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해 본다. 그런데 정돈인지 아니면 더 많은 무게인지는 아직 나도 잘 모르겠다.


차 시음 이야기에 여러 시간 대가 겹쳐진다. 아마도 차의 시간 대는 모든 것이 망라되는 시간 대여서 그렇다고 보이며, 그 시간 대에서 아직 정돈하지 못한 것이 남아 있기에 그렇다고 보인다. 나는 어찌 되었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문득 뚝 멈추고 또 다른 시간 대를 살다가 다시 접속하는 이런 반복적인 패턴 위에 놓여 있다. 그렇게 가 보는 거지 어쩌겠는가.


향긋한 차 한 잔의 여유가 마냥 좋은 토요일 오후다.



Daum  카페 차맛어때 2024 제다실습 차/ 녹차, 발효차, 황차, 한빚제다원 녹차


먼저 1차 시음, 녹차 2g씩 소형 개완으로 우리다














차는 이렇게 대체로 맑은 거품이 인다. 그런 차가 좋은 차이다



2024  발효차
2024 발효차
2024  발효차
2024 발효차
2024 발효차


2024 제다 차 녹차 (2차 시음 중의 한 사진
2024 제다 차 녹차 (2차 시음 중의 한 사진
2024 제다 차 녹차 (2차 시음 중의 한 사진
2024 제다 차 녹차 (2차 시음 중의 한 사진
2024 제다 차 녹차 (2차 시음 중의 한 사진
2024 제다 차 녹차 (2차 시음 중의 한 사진
2024 제다 차 녹차 (2차 시음 중의 한 사진
2024 제다 차 녹차 (2차 시음 중의 한 사진
2024 제다 차 녹차 (2차 시음 중의 한 사진
2024 제다 차 녹차 (2차 시음 중의 한 사진
2024 제다 차 녹차 (2차 시음 중의 한 사진
차는 따를 때 이렇게 맑은 거품이 난다. 그런 차가 좋은 차이다
2024 제다 차 녹차 (2차 시음 중의 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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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시음 #한빛다 #글쓰기도_제_시간이_있는듯다 #우선순위는_지금에서_결정되는게아니라_이미_그_이전에_결정되는듯 #인생의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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