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마당과 맞닿은 하늘
부석사에 우리가 언제 왔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익숙한 듯 낯선듯한 그 기억을 더듬다가, 이내 현실 기억인지 꿈인지 모호해졌다.
그 자신의 기억이 진짜인지 아닌지 신뢰할 수 없는 때가 있다. 부석사에 대한 우리의 기억이 그랬다. 둘이서 이야기하면서 우리가 정말 부석사에 다녀온 적이 있을까?를 회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이 모호한 기억을 다시 업그레이드하기로 하였다. 한때는 많은 사찰들을 다녔었고 시간이 지나자 그 사찰들에 대한 기억은 한데 뒤엉켜 있었다.
너무 유명한 사찰이라 다녀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우리는 자문자답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나는 분명 배흘림기둥을 만져본 기억 한 조각이 늘 있었다.
주차장에서 일주문까지 걸어가는 동안, 절집 가는 길의 산책 아닌 약간의 고행이 깃든 완만한 오르막길에서 그래도 걸을만하다고 생각했다.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상을 보았다. 왠지 반가운 마음도 일었다. 걷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사천왕상 발 밑을 찍었다. 어떤 카타르시스가 일렁이는 것도 같았다. 아주 예전에는 다소 무서운 느낌을 주었는데, 이 해학적인 사천왕상의 이미지들과 발밑에 깔려 소리치는 인간 군상의 표정에서, 그동안 많이 단련되었나 보다 싶었다. 살아온 시간들이 많은 것을 무화시켰나 보다. 웃으며 지나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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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이어진 길, 돌계단과 누각, 북소리와 목어는 또 얼마나 멀리멀리 퍼질 것인가. 북소리가 둥둥 귓전에 울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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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계속 상승하는 길, 안양루에 오르는 "누하진입(樓下進入)"구조를 지닌 계단을 올랐다. 누군가 안양루에 걸린 시조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누하진입 구조는, 누각 아래로 들어간다는 뜻이라고 한다.
"안양루 밑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천장(안양루 바닥)에 시야가 가려지면서 고개를 숙이거나 몸을 낮추며 들어가게 된다. 부처님의 진신이 모셔져 있는 탑이나 서방극락세계를 뜻하는 무량수전에 몸을 낮춰 겸손함을 저절로 보이게 되는 구조다."
안양루 아래로 나 있는 길로 진입하면 갑자기 안양루 마룻바닥이 천장으로 변한다. 천장에 머리에 닿을듯한 착각에 의해 움찔하게 되면서 주의를 다시 환기시킨다. 하늘을 향해 열려 있고 높이 오르기만 하던 길이 어느 순간 낮아지는 구조이다. 이 구조가 사람을 눌러주는 효과를 주는 것 같다. 그와 동시에 사람에게 아늑한 느낌을 준다. 천장이 낮은 방 같은 공간으로 화하면서 사방 시야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때 그 자신을 보라는 수렴의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마음도 정갈하게 가다듬고 심호흡한 후 발끝만 보고 계단을 오르면, 바로 그때 눈앞이 환해지면서 광대한 세계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전경을 더 환히 드러내려고 누각 아래로 길을 만들어 잠시 시야를 차단한 것은 아닐까. 그 순간의 기쁨이 바로 환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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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무량수전' 앞마당에 당도했다. 한 조각의 기억인 배흘림기둥을 보았다. 이제 진짜 기억으로 현현했다. 무수한 사람들의 손길에 의해 배가 약간은 납작해진 배흘림기둥이었다. 배가 약간 납작해진 이유는 사람들에게 다 퍼주었기 때문이다. 그 쓰다 듦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스르륵 마음의 안식을 얻었겠는가.
조사당으로 가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석사를 의상대사가 창건했는지, 조사당은 의상대사를 모시는 공간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몇 년 전에 차 관련 자료를 모으면서, 의상대사에 대해서 한참 몰두한 적이 있었다. 시간이란 것은 원래 그런 것인지..., 이내 다른 것에 몰두하게 되면서 그 몰입은 저만치 깊숙하게 숨었다. 어느 시간대는 내가 원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에만 몰입하게 놓아두지 않는 것이 또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뜻하지 않게 부석사에서 의상대사를 다시 조우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잃어버린 기억은 부석사였는데, 이곳에서 다시 되돌아온 기억은 의상대사였다.
조사당 축대에서 자라는 '선비화'는 골담초이다. "의상대사가 자신이 사용하는 지팡이를 꽂아 놓았는데, 그 지팡이에서 싹이 돋아 다시 되살아난 것"이라 한다. 『택리지(擇里志)』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입적할 때 “내가 여기를 떠난 뒤 이 지팡이에서 반드시 가지와 잎이 날 것이다. 이 나무가 말라죽지 않으면 내가 죽지 않으리라.” 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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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당을 내려와 무량수전 앞을 다시 지나면서, 배흘림기둥을 받치고 있는 석축을 보았다. 사람들이 법당으로 들어가는 곳과 거의 수평 상태로 있었다. 이 풍경에서도 어떤 사건의 기시감이 지나고 있었다.
'무량수전' 현판 글씨가 어딘지 모르게 낯익었다. 봉은사 '판전'의 추사체와 유사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전殿'자가 그렇게 다가왔다.
무량수전 현판의 서체 유형은 "안진경체(顔眞卿體)로 공민왕이 썼다고 알려져 있다."고 한다. 나는 '전'자의 모양이 판전의 '전'자와 겹쳐졌다. 분명 전체 글자의 형상은 다르지만 붓의 획이 가는 모양에서 어떤 유사성이 느껴졌다. 이렇게 비슷해 보이는데, 나만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부석浮石, 선묘 낭자 설화 및 부석사 창건 설화와 연관이 깊은 바윗돌이다. 선묘 낭자는 용으로 화하여 의상대사를 보호하였다. 의상대사가 절을 창건할 곳에 도둑 무리 500명이 이미 살고 있었다. 선묘 용은 공중에 뜬 큰 바위로 화하여 도둑 무리를 위협하여 몰아냈다. 절 이름이 '부석사浮石寺'가 된 연유이다. 부석사의 무량수전無量壽殿 뒤에는 부석浮石이라는 큰 바위가 있다. 그 바위에는 '부석'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
과연 돌이 위태하게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다. 조금만 어긋나면 내려앉을 것 같은데도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에도 여전히 '부석' 그 상태로 있다. 무량수전 앞마당 아래에는 용모양의 바위가 부석 바위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부석이 '떠있는 돌'이라는 의미는 아마도 부석이 용의 머리 부분에 해당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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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아름다운 작은 길, 관음전 가는 길의 갈림길에서 멈춰 섰다. 포토타임이다. 푸른 숲과 어우러진 돌길과 낮은 기와 담장이 만드는 풍경 그늘이 시원했다. 바람이 살랑이는 풍경은 무량수전 앞마당에서 바라본 풍경과는 대조적이었다.
하늘과 세상이라는 거대한 세계가 앞마당 안에 들어와 있는 전경에서 작은 오솔길로 이어진 동선은 부석사의 운치를 더해 주었다.
넓적한 돌바닥 길을 다시 걸어 내려오면서 이번엔 앞 정강이가 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안 걸었으면, 고작 그 정도 오르고 내려온다고 앞 정강이에 통증을 느낄까! 싶었다. 오르락내리락하며 걷지 않고 평지만 걸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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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는 길에 칡즙을 사서 마셨다. 시원했다. 갈증엔 칡즙이지! 하면서! 그는 내가 마시라고 하니까 억지로 마셨다. 입에는 써도 갈증엔 좋을 것이다.
한낮의 뙤약볕 속에서도 사람들은 부석사에 오르고 있었다. 여전히 오래된 공간의 오래된 설화는 묘한 마력으로서의 이끌림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모두 사람이 해낸 일에 대한 결과이다.
#나_이제_부석사에_대한_기억_업그레이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