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법
열역학 법칙들에 대해 영국의 물리학자 찰스 퍼시 스노(C. P. Snow)는 도박에 비유한 바 있다.
0법칙 : 당신은 도박을 해야만 한다.(You have to play the game)
1법칙 : 당신은 이길 수 없다.(You cannot win)
2법칙 : 당신은 본전도 못 찾는다.(You cannot break even)
3법칙 : 도박은 끝나지 않는다.(You cannot get out of the game) (나무위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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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각)
4법칙은 빠졌네! 찰스 퍼시 스노의 생각을 내가 다시 재배열하였다.
0법칙 : 당신은 게임을 해야만 한다.
1법칙 : 당신은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
2법칙 : 당신은 게임에서 본전도 못 찾는다.
3법칙 :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남는 에너지(열 에너지)가 있다. => 선택의 기로
4법칙 : 당신은 게임을 새로 설계해야 한다.
이 세상을 게임 장이라고 본다면, 오징어 게임 안의 세계관을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 안에서 체험하게 된다.
찰스 퍼시 스노의 생각에 비춰보면 우리는 지구라는 생태계 안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또한 빠져나간다 해도 갈 곳도 없고 오라는 다른 별도 없다. 결국 언제나 다시 제3법칙으로 되돌이표를 찍게 된다.
어떤 법칙이 가장 먼저 선행될까? '열평형' , '에너지 보존', '엔트로피 증가와 감소' , '0으로 수렴될 뿐 0에 도달할 수 없다' , '밀도는 압력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에서 무엇이 먼저일까?
지금 여기서 무엇이 먼저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 다섯 가지 법칙은 항상 그 앞에 어떤 전제가 있어야 진행되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열평형에 도달하려면 엔트로피 증가가 먼저 있어야 하고, 엔트로피가 증가하려면 열 에너지가 보존되어야 한다. 열 에너지가 보존되려면 남는 에너지까지 포함해야 한다. 남는 에너지는 밀도 차이에 의해서다. 열평형이 깨지려면 밀도의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이 밀도의 흐름은 압력차에 의한 것인데 이것은 엔트로피 감소가 있어야 한다. 결국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은 구조다.
하지만 엔트로피가 감소하려면 최초의 힘이 가해져야 한다. 이것이 아마 빅뱅일 것이다. 리셋된 것이다. 엔트로피가 다시 낮아지고 독립되어 안정화되면 운동하므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빅뱅에 의하여 우주 안의 엔트로피는 계속 높아진다. 무질서도가 증가하여 다시 열평형 상태가 되면 움직임이 멈춘다.
그 절대 정적의 상태를 깨뜨리려면 어디선가 압력이 높아져야 한다. 이 압력에 의해 그 진공 상태가 폭발하면 다시 엔트로피가 낮아진다··· 이 반복적 형태를 시뮬레이션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다. 이 압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이 ' 남는 에너지'이 본래적 용도가 아닐까?
어떤 고립계, 도박장에서 빠져나가는 법은? 2법칙으로 엔트로피는 고립계에서 계속 증가한다. 3법칙 안에 해당하는 남는 에너지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2법칙의 무질서도 증가, 즉 열 에너지를 어떻게 그 고립계 안에서 없앨 것인가? 1법칙으로 열평형에 도달하여 0법칙으로 아무도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없는 상태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텅 빈 상태에서 다시 창조력(생멍력)이 차오르는 것에 대해서, 내가 다시 재정의 해보자면 이러하다.
밀도를 느끼는 것이 에너지 상태를 가늠하는 것이다. 제4법칙을 적용하자면, 기존의 도박판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박판을 설계해야만 한다.
감정을 접고 냉철하게 말한다면, 성기훈이 죽은 이유는 남는 에너지인 열 에너지를 다시 그 판에서 기웃거리는 것으로 해소하려 했기 때문이다. 성기훈이 다시 게임하러 간 것과 도박판을 다시 찾는 도박꾼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성기훈은 자기 게임을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감독에게도 오징어 게임이 자체적으로 준 남는 에너지는 있다. 아마도 그 판 자체를 해소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는 1부 리뷰에서 새 판을 짜서 기존에 나와 있는 영웅들과 연계시키거나 새로운 세계와 연결하기를 바랐다. 다시 찾아가서 성기훈이 그 판을 전복시키는 일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최자는 바깥으로 연결된 세계이고 참가자는 닫힌계에 갇혔다. 이 상태에서는 오직 엔트로피가 증가할 뿐이다.
참가자들은 더 투여할 에너지가 없다. 자체적으로 증가된 열 에너지를 그들 안에서 해소하는 길 밖에는. 그런데 돈에 대한 갈망과 살고자 하는 욕구가 충돌한다. 하지만 여기서 성기훈과 149번(강애심 분)만이 살고자 하는 욕구를 버렸다. 성기훈은 그 게임 장에 대한 분노와 그곳에서 죽은 이들에 대한 연민과 죄의식으로 이미 세상의 다른 것에는 흥미를 잃었기 때문에 죽음도 불사하고 다시 뛰어든 것이고, 어머니는 아들(007번, 양동근 분)에 대한 연민에 의해서 죽음을 불사하고 뛰어든 것이다. 그 둘 행위의 공통점은 가장 약한 고리를 보호한 것이다. 222번(조유리 분)의 번호를 이어받은 새로운 222번이라는 새 생명을 살리는 것으로서만이 그 행위의 정당성을 담보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오징어 게임 3부가 열린 결말로 끝나서 전 세계 곳곳의 지하철과 골목길에서 딱지치고 있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 역시 남는 에너지다. 이때의 남는 에너지는 똑같이 '남는 에너지'이지만 사용자의 용도가 다르다. 주최자의 남는 에너지와 참가자들의 남는 에너지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열 에너지일지라도, 주최자의 열 에너지와 참가자들의 열 에너지는 물질적으로 '남는 에너지'인 돈이 있고 없고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돈의 총량 역시 제1법칙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죽고 구원받고 다시 남는 에너지를 해소하고···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차차로 어떤 움직임이 열평형에 도달하면? 무수히 많은 게임 1등들이 배출된다면, 무의미 상태로 갈 것이다. 여기서 무의미 상태는 서로 간섭이 일어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이 무의미 상태에서는 게임 역시 반드시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떤 합의점을 찾을 것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게임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한 시대 안에서 다른 시대, 즉 미래를 여기에서 재단하기 때문에 영원히 현실 상태가 고착될 것이란 망념에 빠진다.
그러나 환경은 늘 변하고 조건도 바뀐다. 다시 모든 것은 어느 정도의 엔트로피가 낮아진 상태로 간다. 어느 정도의 리셋이 있는 것이다.
결국 열평형상태로 간다면 사람들은 또 다른 에너지를 투입할 것이다. 한 게임에 모든 것을 걸지는 않을 것이다. 또 다른 게임에도 참가해야 할 테니 말이다. 단 하나일 때만 공포이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 그것은 더 이상 공포가 아니며, 무시해도 되는 상태가 된다. 무감각 상태로 간다.
결국 게임이 불법 도박과 다를 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목숨을 건 도박과 쥐어짠 돈을 끌어오는 도박과 무엇이 다른가? 단지 목숨의 유예기간의 차이뿐.
진실은 그것이다. 감독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빠져들지 말고 마이너스된 창의를 해라. 남는 에너지를 다시 그것에 이입하지 마라. 재창조하는 것에 남는 에너지를 사용하라. 열 에너지에 감정이입하지 말고 열 에너지를 되살리는 것에 또 다른 헛심을 쓰지 마라. 게임을 설계하고 규칙을 바꾸어라. 창의적으로 예술적으로 살아라.
어쩌면 그나마 그 게임 안에서 성기훈이 남는 에너지를 스스로 자기 안에서 통제하였기에 갓난아이를 살릴 수 있었는지도. 성기훈의 희생으로 영화는 영화에 머물지 않고 현실에 줄을 잇는다. 현실을 이야기함으로써 영화적 몰입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우리는 지난 6개월 동안 더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비현실적인 경험을 하였으므로 영화와 현실의 구분은 이미 무의미해진 상태다. 요즘 영화가 삶에 미치는 영향이 약해진 이유다. 그래서 줄곧 애니메이션만 보게 되는 것 같다. 남는 에너지 해소법의 한 가지다. 현실적 행위에 몰입이 떨어진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남는 에너지를 창의적으로 사용해야지, 나에게 집중해야지 하면서도 아직 내가 내 곁에서 겉돌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4법칙을 생각하는 이유는 아무리 우주나 지구나 인간사가 제3법칙으로 결국은 회귀한다고 하여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살아야지 별 수 있나? 그렇다면 4법칙으로 그 자신이 인생을 설계하는 것뿐이다. 밀도의 법칙만이 순환의 고리를 그나마 끊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징어게임3 #열역학법칙